드라마 팬들을 열광시켰던 많은 화제의 키스신이 존재한다. 최근의 키스신 중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이병헌, 김태희의 사탕키스가 될 것이다. 그런 탓에 드라마 작가와 감독들은 유별난 키스신을 짜내기에 골머리를 썩힐 것이 분명하다. 배우 입장에서도 기왕 하는 키스 화제가 되기를 바라겠지만 그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키스신은 많은 남녀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유도하기 때문에 그것 하나만 성공해도 드라마 몰입도와 만족도는 매우 높아질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키스도 아니고, 그 흔한 포옹도 아니고 그저 세 발짝 나눠걷는 것만으로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한 역전의 여왕 박시후의 대시도 대단히 감각적인 장면으로 지난주 지하철 고백 이후 또 하나의 레전드급 장면을 만들었다. 보통은 걸으면서 하는 말은 집중도가 떨어지고 산만해서 사랑을 고백하는 방법으로는 적절하지 못하다. 그러나 18회 마지막을 대단히 집중시킨 구영식의 세 걸음 대시는 그 어떤 키스보다 더 더 떨리고 짜릿한 로맨스를 만들어냈다.

2차 프리젠테이션에서 한상무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전남편 봉준수의 간곡한 설득으로 특별기획팀에게 꼭 필요했던 모델 신윤주는 극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기업이 채택하기에는 분명한 수익구조를 약속하기 어려웠던 특기팀의 프로젝트는 결국 개발기획팀에 밀려 두 번째 고배를 마시게 됐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한상무는 황태희 때문에 신윤주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놓치게 됐다면서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회사를 떠나라고 재촉한다.

일도 일이고, 한상무도 한상무지만 황태희는 자기 가정이 깨진 것에서 그 모든 것들과 정면으로 맞부딪혀 싸울 힘과 의지를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황태희는 구용식에게 그간의 신세를 갚겠다며 저녁을 사면서 회사를 그만 두겠다는 말을 한다. 이에 당황한 구용식은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 황태희를 벽으로 거칠게 밀어붙이고 마치 키스라도 할 것처럼 가까이 다가선다.

이 장면에서 흥미로운 것은 김남주의 움츠려드는 연기가 대단히 자연스럽게 디테일했다는 점이다. 실제 나이도, 극중 나이도 많은 아줌마 김남주지만 한참 연하의 꼬픈남 박시후 혹은 구용식이 밀착해올 때는 연기건 진심이건 긴장하게 되는 것 같다. 순전히 연기라도 칭찬해줄 섬세한 연기였고, 실제의 감정이 노출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 연하의 꼬픈남도 대단한 선수임에 분명하다.

갑자기 익숙한 키스의 대형으로 마주선 상태에서 황태희가 “뭐 하시는 거예요?”하고 하나마나 한 질문을 하자 구용식은 “뭐 할 것 같아요?”한다. 이쯤 되면 반드시 이어지는 것이 따귀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키스다. 여자 입장에서도 예의상 때릴 준비도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키스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구용식은 그러고 그냥 베르테르의 표정으로 돌아서고 만다. 그리고 돌아선 채로 “이런 갑과 을도 있습니까?”한다. 키스한 것보다 더 사람 미치게 하는 행동과 대사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거리 애정행각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진짜 일이 터질 것만 같은 폭발적인 김장감과 키스를 한 것만큼 아니 그 이상 짜릿한 장면은 18회가 끝날 즈음 나왔다. 봉준수로부터 황태희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듣고는 오히려 더 발끈해서 위험한 수준까지 간 구용식은 그날 밤 황태희 아파트 주변에서 멍한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게 한다면 드라마가 아니다. 현실에서는 백날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을 여자지만 갑자기 맥주가 고파진 황태희는 편의점으로 가다가 벽에 기댄 구용식을 발견하고 놀란다.

그런 황태희에게 구용식은 한 걸음에 한 마디씩 점층수법으로 다가선다. 건들거리듯 혹은 비틀거리는 것처럼 황태희에게 다가서는 구용식은 묘한 화법으로 고백의 분위기를 가져간다. 그만 두세요. 그럼 이제 갑과 을 관계 아닌 거죠? 그럼 이제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죠. 이 세 마디를 통해서 그가 그동안 태희에게 가졌던 ‘사랑해선 안 될’ 이유를 털어내고 있었다. 봉준수의 적극적인 협박과 황태희 퇴사가 가져다준 구용식의 위기의식이 불러온 저돌적 행위기에 분명 위험한 도발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다음 주에도 키스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부터 이 둘은 틈만 나면 키스의 전조를 울렸다. 그렇지만 변수가 전혀 없지는 않다. 황태희는 다시 재결합하자는 봉준수의 간절한 구애도 냉정하게 거절했고, 전 시어머니에게도 그런 뜻을 완고하게 밝혔다. 물론 그래놓고 변하는 것이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전작이 가정은 소중하다는 전통적 가치를 고수했는데 그것을 또 반복하기에는 작가라면 불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말이야 작가에게 맡겨 두고 이 둘이 되건 안 되건 이런 장면 후에 또 아무 일 없지는 말기 바랄 뿐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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