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취재파일 4321>이 지난 5일 보도한 동성애 관련 보도를 두고 ‘동성애 폄하’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동성애자인 이송희일 감독은 트위터에서 ‘노골적으로 호모포비아를 드러낸 것 같다’고 비난했습니다.

뒤늦게 저도 그 날 방송분을 찾아봤습니다. 우려했던 것만큼 동성애 혐오를 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이날 방송을 보고 비판했지만, 동성애자들을 비난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은 아닌 듯 보였습니다. 나름대로 동성애 인권단체의 입장도 취재하고, 동성애 인식 설문조사도 진행하는 등 균형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많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이번 방송은 전체적으로 수준 이하였습니다. 동성애를 다루는 방식이 ‘동성애’를 ‘호기심 천국’처럼 다루던 90년대 수준에 정체되어 있다고 할까요.

▲ KBS <취재파일 4321> 화면 캡처
불쌍하거나 더럽게만 비춰진 동성애

방송 내용은 대충 이러했습니다. 매우 불쌍해 보이는 동성애자들이 먼저 나옵니다.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 당해서 학교를 그만 둔 청소년 동성애자. 한 방송에서 커밍아웃 했다가 인신 공격을 당한 동성애자 박우식씨가 나옵니다.

이어서 보수 기독교 단체에서 내고 있는 ‘동성애 반대’ 신문광고를 소개해주고 광고에 실린 동성애자들의 일탈한 성문화를 취재합니다.

찜질방(동성애 파트너를 찾는 업소)이라고 불리는 곳이 다소 선정적으로 나온 뒤 동성애자에서 이성애자로 전환한 분들의 입장이 나옵니다. 이 분들은 뭔가 더러운(?) 성문화를 즐겼다가 깨끗한(?) 이성애자가 된 것처럼 비쳐집니다.

이어 군형법 92조 폐지를 둘러싼 논란과 차별금지법 입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소개한 뒤, “해묵은 찬반논쟁으로 끝나면 동성애는 그들만의 문제로 끝난다”는 애매한 마지막 멘트로 방송이 끝납니다.

동성애 ‘혐오’를 논리적 ‘주장’으로 이해해버린 보도

타 언론사의 보도를 두고 같은 기자 입장에서 뭐라 입장을 밝히는 게 매우 조심스럽습니다만, 이번 방송은 매우 안타까웠다고 용기 있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언론이 성소수자를 다루는 방식이 좀 달라져야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번 KBS <취재 파일>의 동성애 보도가 수준이하였던 것은,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다뤘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성애 논란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데서 비롯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 동성애 논란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하고 있는데 KBS 보도는 여기에 집중하지 않고 동성애 반대론자의 주장을 ‘논리적인 주장’으로 승격시켜버렸습니다. 공공연한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바성연(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 연합)등의 주장은 언론이 다루어줄만한 가치를 지닌 내용이 아닙니다. 그들의 광고 내용을 살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성애=에이즈’, ‘동성애가 병처럼 전염된다’는 식의 의학적으로 맞지도 않은 주장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 며느리가 남자가 될 수 있다’거나 ‘군대가면 동성애자 된다’는 공포를 조장합니다. 이건 논리가 아니지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입니다.

혐오와 증오는 논리라고 볼 수 없습니다. 어린 아이가 부리는 이유없는 짜증과 비슷한 종류의 감정일 뿐입니다. 이번 KBS <취재 파일>의 보도는, 이런 ‘혐오’를 ‘논리’로 이해하고 동성애 문제를 ‘찬반 문제’로 다뤘다는 점에서 그 문제가 비롯됩니다. ‘틀림’의 영역을 ‘다름’의 영역으로 다루는 실수를 범했다고 할까요.

▲ KBS <취재파일 4321> 화면 캡처
부적절했던 ‘게이 찜질방’ 보도

특히 이번 방송에서 부적절했던 점은 ‘게이 찜질방’에 대한 취재입니다. 게이 찜질방은 제가 알고 있기로는 일부 동성애자들이 쉽게 성 파트너를 찾기 위해 이용하는 퇴폐업소입니다. 명백히 불법입니다만, 이성애자들의 집창촌처럼 그냥 사회적으로 묵인되고 있는 곳이지요.

KBS <취재파일> 제작진은 ‘바성연’의 주장도 검증해보아야 하고, 동성애를 마냥 미화할 순 없는 것이니 당연히 이런 것도 취재해서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취재원칙으로 보자면, 언뜻 타당해보이는 이 주장은 문제가 있습니다. ‘게이 찜질방’은 분명 문제가 있는 곳이지만 이곳에 대한 취재는 ‘일탈한 일부 동성애자’들에 대한 보도를 위해 따로 해야 하는 것이지, 동성애에 대해 전반적인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 프로그램에서 취재할 만한 곳은 아닙니다. 짧게 말하면, 다른 ‘야마’를 갖고 다른 프로그램에서 방영했어야 하는 내용입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성소수자들이 ‘이성애’를 제대로 이해해 보자며 이성애자 사회를 취재했다고 칩시다.(잘 모르시겠지만 성소수자들은 ‘e-buddy’나 ‘Get’과 같은 매거진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성애 전반을 해부한다’며 청량리와 용산 근처의 집창촌을 취재해 보여줬다고 칩시다. 이것도 이성애의 일부라며 소개합니다. 이 보도를 이성애자들이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뭐 이런 형편없는 보도가 다 있어? 이게 이성애의 본질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런 걸 취재해서 보여주나?’

당장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물론, 성소수자들은 저런 보도를 안 할 겁니다. 이들은 이성애를 있는 그대로의 ‘성애’(sexuality)로 바라볼 뿐이지, 일부 일탈한 성행위를 하는 이성애자의 모습을 두고 이성애 자체를 평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이성애자들만 동성애자를 저런 식으로 보도하려 듭니다. 한심한 노릇입니다.

▲ 보수 기독교 단체의‘동성애 반대’신문 광고
동성애 혐오론자들의 거짓 선전을 알아채지 못한 보도

저도 얼마 전 동성애 반대 광고를 내는 분들을 취재해 기사로 전해드린 적 있습니다. <취재파일>에 소개된 동성애자에서 이성애자로 전향한 이요나 목사도 제가 만나 인터뷰 한 분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의 주장이 얼마나 해악적인 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해 전해드린 기사입니다.

‘동성애 반대’ 광고 진짜 목표는 ‘차별금지법’ 저지?
‘동성애 반대’ 이요나 목사 “나도 동성애자였다”

검증을 잘 하는 언론이라면, 바른성문화를위한연합(바성연)과 같은 단체의 논리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절대 무비판적으로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논리들이 많습니다. 위에 거론 했듯이 동성애에 대한 거짓 정보를 퍼뜨리고 있고, 또 하나 우려스러운 건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거짓 선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무부가 입법발의 하려는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의 차별을 금지시키기 위한 법’ 이지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사람을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닌데 이들은 마치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를 반대할 수 없게 되고 징역을 살게 된다’고 호도하고 있습니다. 명백히 거짓 선전이지요. 법무부와 법학 교수들을 상대로 조금만 취재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취재했던 법무부 관계자도 이분들의 거짓 선동에 매우 곤란해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취재 파일>은 이들의 과장된 주장을 얼마나 검증했을까요. 전혀 없었습니다. 언론이 이 분들의 잘못된 논리를 검증하고 지적해주어도 부족한데 무비판적으로 방송에서 소개해주면 안되겠지요. 이런 보도는 되레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논란만 증폭시킵니다.

이제 언론이 ‘호모포비즘’은 걸러내자

글을 마치면서, 앞으로 동성애 문제를 다룰 언론인 동지들께 진지하게 제안합니다.

더 이상 동성애 혐오론자들(호모포비아)의 주장을 논리의 영역으로 다루지 맙시다. 동성애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갖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나,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거나 해코지하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언론은 동성애 혐오론자들의 문제점을 파악해서 비판해줘야 합니다. 동성애 혐오론자들의 문제를 언론이 제대로 짚어주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동성애 갈등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KBS 제작진 중 한 분은 제 블로그글을 보고 전화를 걸어와 “악의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진심으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게 더 문제입니다. ‘성애’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없이 만들어진 한 편의 보도가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몰랐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의 ‘펜’은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의 ‘칼’과 똑같습니다. 우리 언론이 더 이상 성소수자들에게 무례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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