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러분들은 제주도에 왜 가십니까? EBS <다큐 시선- 제주가 사라진다>의 리뷰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할 듯하다. 사람들은 왜, 하고많은 대한민국의 관광 명소 가운데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제주에 가는 걸까? 길이 잘 뚫려 있어서? 잘 발달된 휴양지가 많아서? 들고 나는 공항이 편리해서? 이런 질문들 중에 여러분들이 제주에 가는 이유가 있나요?

삼나무 베어내는 비자림로 확장공사, 그 궁극에는

EBS 1TV <다큐 시선> ‘제주도가 사라진다’ 편

'나무 자르지 마세요, 우리가 사랑하는 숲이예요'라는 숲 지키미들의 몸을 던지는 절규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라 칭해지는 27.3km에 달하는 비자림로 확장 공사를 위해 40~50년 된 삼나무들이 잘려나가고 있다. 바로 이 '논란'의 현장이 지금 제주가 앓고 있는 몸살의 현주소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를 지나고 싶어 제주로 몰려가는데, 정작 제주에서는 그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삼나무를 베어내고 도로를 확장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비자림로 확장 공사의 궁극에는 바로 제주 제 2공항이 있다. 국내선 여객수송 1위의 현 제주 공항, 하지만 시설 규모로는 국내 7개 공항 중 5위, 공항 시설 능력 과포화 상태. 이에 원희룡 제주 지사를 비롯한 국토부는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일대에 제 2의 제주공항을 만들기로 발표하였다. 하지만 제주 제 2공항 발표는 곧 이를 둘러싼 제주 시민들 사이의 찬성과 반대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의 시작이었다.

독자봉

정상 동편 전망대에 올라서면
온평, 난산, 수산, 일출봉, 저멀리 우도까지 지척이다.
언제나 제 자리에 있었고 언제나 제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을
내 눈 속에 깊이 박아두었다.
오름 뒤편 공동묘지에 아버지를 묻었다.
마을 사람들은 독자봉 건너에 저승이 있다는 것을 안다.
오늘따라 유난히 맑고 높은 고향 하늘이다 -강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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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 '난산리', 이 작고 아담한 마을에는 300여 가구의 사람들이 산다. 난산리를 비롯한 주변 5개 마을은 제주 제 2공항이 들어서면 청사와 활주로로 인한 소음과 분진 피해를 입을 곳들이다.

이 가구 중에 원희룡 지사에게 달걀 세례를 퍼부은 김경배 씨가 산다. 평범한 굴삭기 기사였던 그.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성산일출봉을 닮은 조형물까지 만들어가며 가꾼 그의 터전. 그저 지금처럼만 사는 것이 꿈인 그는 '공항 건설'과 함께 없어질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42일간의 단식을 했다. 그의 부모 세대들이라고 다를까. 당신들은 돌아가시면 그만이라면서도, 공항이 들어서면 나고 자란 삶의 터전이었던 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시름에 절로 한숨이 나오시는 어르신들.

공항 아래 용암동굴, 과연 안전성은?

EBS 1TV <다큐 시선> ‘제주도가 사라진다’ 편

제주의 생명인 오름, 대수산봉을 비롯한 10개의 오름들도 제주 제 2공항을 비롯한 난개발에 존망의 기로에 놓였다. 오름만이 아니다. 신공항 예정지에는 서궁굴 등 용암동굴들이 이미 밝혀진 것 외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세계자연유산으로 권고되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산굴은 보존해야 할 곳이지만 신공항이 만들어지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오름이나 숲 등의 훼손과 다르게 용암동굴은 또 다른 면에서 문제가 있다. 문화재적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수많은 비행기가 날고 드는 공항 아래 동굴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건 안정성과 경제성 면에서도 생각해 볼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질 파악을 위한 시추 작업을 동반한 정밀지반조사를 해야 하지만 어쩐 일인지 2003년 문헌에 의거한 채 사업비를 전액 반납, 의혹을 남긴다.

또한 공역 문제도 걸린다. 군 비행기가 날고 드는 군 작전 지역과 맞닿아 있는 성산 지역. 하지만 이에 대해 제주시와 국토부는 이 지역의 군이 해군이라 문제가 되지 않으며, 조정 가능하다며 이해를 구한다. 심지어 최근 폭설에 잦아지는 기상 요인은 차치하고 바람, 강수, 강설량만으로 한 모호한 선정 기준, 거기에 타 지역 10년 치의 기준으로 성산의 7년 치 안개 일수를 퉁쳐 버린 기준 등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심지어 철새도래지도 주변에 있다. 제주 대표 해안습지인 하도리, 멸종 위기종인 저어새 2400마리 중 20여 마리가 해마다 겨울을 나는 곳. 당연히 '버드 스트라이크'가 예상되지만, 비행기는 200m 이상 날기 때문에 괜찮다는 안이한 대처로 우려를 사고 있다.

도대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안 걸리는 게 없는 성산읍, 그런데 왜 이곳이어야만 했을까. 이에 대해 신공항 반대 단체들 역시 의문을 제기한다. 애초 2012년 용역에서 유력한 예정지로 선정된 곳은 제주도 유일의 평야지대인 '신도'지역이었다. 사회적, 환경적으로 그나마 가장 유력했던 이곳이 2015년 돌연 '성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니, 환경 단체를 비롯한 반대하는 편에서는 왜 굳이 '새 공항'을 지어야 하냐고 반문한다. 왜 기존 공항 확장 안을 배제하느냐는 것이다.

신공항, 과연 필요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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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 원희룡 지사는 개인 유튜브인 '원더풀 tv'를 통해 2015년 국토부 타당성 용역을 토대로, '기존 공항 확장 대안은 바다 쪽으로 이어지는 활주로의 확장 공사로 인한 해양환경 파괴 문제 등, 거기에 과밀한 교통 체증 등의 여러 이유를 들어 불가능하다'고 답하고 있다.

이렇게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양측의 입장. 지난 4월 열린 기본계획수립 용역 보고회에서는 비행기의 바다 쪽 선행과 대수산봉을 절취하지 않겠다는 국토부의 입장이 발표되었지만, 양측의 갈등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반대 측의 거센 질문 세례에 보고회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종료되었다. 이런 갈등만 벌써 4년째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국내 최대 인원이 들고 난다는 제주 공항. 만약 제주 제 2의 공항이 만들어진다면 생산 유발 효과 8조 297억 원, 부가가치 효과 2조 5510억 원, 고용유발 효과 3만 6040명 등이 생긴다고 한국은행이 발표했다고 한다. 한반도, 중국대륙, 일본 등 주변 인구 1천만 이상 5개 도시, 500만 명 이상 13개 도시가 인접한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있는 동북아 요충지로서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타당성 조사를 현재 텅텅 비어있는 무안과 양양 공항은 안 했을까? 즉, 이러한 수요예측 자체가 '희망'에 근거한 고무줄 결과물일 수 있다고 반대 측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성수기에 잠깐 붐비는 제주공항을 개선하기 위해 또 하나의 공항을 만드는 것은, 마치 명절 때 경부고속도로가 붐빈다고 고속도로를 하나 더 만드는 것과 같지 않냐는 것이다. 요컨대 제주 제 2공항의 건설은 그저 공항을 또 하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제주가 사라지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우려한다.

제주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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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본질적으로는 지금 '개발 붐'에 있는 제주의 현주소에 대한 고민이다. 쓰레기 배출량이 한계에 이르러 필리핀으로 밀반출하다 돌려받게 되는 해프닝을 겪는가 하면, 무분별한 시설 개발로 하수처리가 용량을 초과하여 해녀들의 밭인 바닷속 돌이 오염되고 푸석푸석해져 풀조차 점점 줄어드는 등 해양 생태계가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다. 예래 지역 휴양형 주거단지는 4년째 방치되고 있다. 이렇게 제주 곳곳은 '관광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한정된 자원을 가진 ‘섬’이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조건을 가진 제주. 과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개발이 2~30년 후의 제주를 어떤 모습으로 바꾸게 될까. 개발을 원하는 사람들의 바람대로 더 좋은 시설을 갖춰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제주가 될지, 아니면 과잉 개발로 인해 또 하나의 무안, 양양 공항의 탄생이 될지, 일출봉과 우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보는 게 제주의 풍광이 아니라 비행기가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제주 공항이게 될지, 그도 아니면 사람들이 원한 건 힐링인데 더 이상 힐링 할 수 없어진, 그저 그렇게 뻔한 우리나라 여러 관광지들 중 하나가 되어버릴지. 제주 제 2공항 건설 문제는 바로 이런 미래 제주의 밑그림에 대한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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