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공관병 갑질 논란'의 당사자이자 인사 청탁, 금품 수수 등의 혐의를 받았던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공관병에 대한 갑질과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자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정권의 무리한 적폐청산이 '무죄'인 군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식의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김영란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 받고, 향응 수수와 공관병에 대한 갑질 사실이 인정된 박 전 대장 사건을 정권의 적폐청산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더럽혀진 군복의 명예… 적폐가 아닌 주류가 청산당하고 있다> 조선일보 5월 3일 종합 01면

앞서 지난 달 26일 서울고법 형사6부(오석준 부장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장에게 부정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박 전 대장은 2014년경 고철업자 A시에게 군 관련 사업의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760만원 상당의 향응을 받은 혐의, 제2작전사령관 재직 시절 모 중령으로부터 인사 청탁을 받고 이를 들어준 혐의 등으로 2017년 10월 구속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박 전 대장이 받았던 금품 중 180만원 상당과 김영란법을 유죄로 보고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180만원 상당의 금품 수수를 직무와 관련된 뇌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김영란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아울러 수원지검 형사1부(김욱준 부장검사)는 26일 박 전 대장에 대한 폭행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공관병 가혹행위 등의 고발사건에 대한 수사결과 혐의가 없어 불기소 처분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박 전 대장이 공관병에게 전자 팔찌를 채우고 텃밭 관리를 시키는 등 가혹한 지시를 일삼은 혐의, 공관병들에게 골프공을 줍게 하거나 곶감을 만들게 하는 등의 관계없는 일을 시킨 혐의 등에 대해 이 같은 박 전 대장의 지시가 가혹행위에 이르거나 사령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없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또 검찰은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박 전 대장의 부인 전 모씨에 대해 폭행과 감금 부분에 대한 혐의를 인정해 불구속 기소했다.

종합하면 박 전 대장이 공관병에 대한 갑질과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은 건 사실이나 김영란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 받았고, 공관병에 대한 부적절한 지시와 향응 수수는 사실로 드러났으며, 아내는 공관병 폭행·감금 혐의로 기소됐다.

공관병 갑질 논란' 당사자인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지난 달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보수언론들은 이 같은 결과에 일제히 정권의 무리한 수사로 박 전 대장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식의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일보는 3일 <"더럽혀진 군복의 명예… 적폐가 아닌 주류가 청산당하고 있다>, <"나는 국방부 지하 영창 갇히고…육참총장은 靑행정관이 부른다고 달려가"> 등 박 전 대장 인터뷰 기사를 통해 현 정권을 비판했다. 박 전 대장은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적폐 청산은 적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주류에 대한 청산이다", "국가 권력이 '육사 죽이기'를 하면서 현역 대장인 나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항소심 판결이 있었던 26일 <갑질의혹 이어 뇌물혐의 걸었지만… 박찬주, 뇌물도 무죄>, <文 "뿌리뽑으라"던 육군대장, 남은건 김영란법… 박찬주는 쓴웃음 지었다> 등의 기사를 썼다.

사설과 칼럼에서는 이 같은 맥락이 더 선명히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박찬주 전 대장 뇌물도 무죄, "국가권력의 린치" 어떻게 보상하나>(4월 29일), <'적폐 수사' 건건이 지시한 대통령이 "통제할 수 없다"니>(5월 3일) 등의 사설에서 박 전 대장의 일부 무죄를 언급하며 정권을 비판했다. 2일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은 칼럼 <거짓 대사 된 2년 전 文대통령 취임사>에서 박 전 대장에 대한 수사가 "용두사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고에 가까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때려잡기식 적폐청산에 경종 울린 박찬주 뇌물죄 항소심 무죄> 동아일보 4월 29일 칼럼 35면.

동아일보는 사설 <때려잡기식 적폐청산에 경종 울린 박찬주 뇌물죄 항소심 무죄>(4월 29일)에서 "박 전 대장 사례는 현 정부 초기 적폐청산이 몰아치기식으로 진행되면서 빚은 폐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기홍 동아일보 논설실장은 3일 칼럼 <왜 그토록 모질고 뻔뻔할까>에서 "박찬주 전 육군대장 사건의 경우 그렇게 탈탈털어 형사처벌하려다 무죄판결이라는 망신을 당하지 말고, 공관병 문제만 엄정히 책임을 물었다 한들, 군대 내 갑질문화와 군 지휘관들의 구태 개혁에 어떤 지장이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최상연 중앙일보 논설위원도 3일 칼럼 <'어쩌다 대통령'>에서 "적폐청산 대상이란 게 적폐(積弊)가 아닌 적패(敵牌·적의 무리)인 경우가 허다하다. 당장 무죄 판결 난 박찬주 전 육군대장,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그렇다"며 "박 전 대장은 '적군 포로로 잡힌 느낌'이라고 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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