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이 추진한 선거제 개편안,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이번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이 국회 내 투쟁을 벌이면서 수일간 여야 충돌이 벌어졌다. 언론이 이 같은 상황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중계식 보도와 단순 갈등 전달식 보도로 정치혐오를 조장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남은 건 자극적인 말 뿐이다.

지난 22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원내대표가 선거제 개편안, 공수처법 등을 패스트트랙에 태우기로 합의하면서 국회는 본격적인 패스트트랙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여야 4당은 양당제를 조장하는 승자독식형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시정하자는 취지에서 50% 연동률을 적용한 '준연동제'로 합의했다. 완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아니지만 비례성과 대표성이 강화되고, 양당제의 관성이 완화돼 소수정당의 의회진출을 기대할 수 있는 제도의 변화인 만큼 국회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제기된다.

여야 4당은 공수처법에서는 기소권 부여의 범위에 대한 합의 끝에 검사·판사·경무관급 이상 경찰 수사에 한해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기소권을 독점해온 검찰의 권한을 분산한다는 측면에서 검찰 개혁에 한 발 접근한 안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한국당이 국회 내에서 극한 투쟁을 벌이면서 선거제 개편안, 공수처법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은 한 때 난항을 겪기도 했다. 한국당은 선거제 개편안을 "좌파 독재", 검찰에 대한 견제기능을 강화한 공수처법을 "국민 사찰"이라고 비난했다. 언론은 이들의 발언의 진위를 따지기보다 여과 없이 전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충돌에만 주목했다. 패스트트랙 보도 과정에서 언론이 본질을 제대로 국민에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회에서 벌어진 여야의 갈등 상황만 부각시키며, 정작 본질인 패스트트랙 지정이 추진된 이유, 법안에 대한 평가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조선일보를 보면 이러한 보도 경향이 잘 나타난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4일 바른미래당의 사개특위 사보임이 벌어진 시점부터 "막장", "동물국회"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여야의 갈등 상황 부각에 매진하는 모습이었다. 조선일보는 4월 25일자 1면 <꼼수·몸싸움·봉쇄 '패스트트랙 막장'> 기사 게재를 시작으로 4월 30일까지 국회소식을 전하는 지면의 제목을 '패스트트랙 막장'으로 정했다.

▲25일자 조선일보 1면.

패스트트랙 관련 조선일보의 보도를 살펴보면 4월 26일자 지면에 <팩스로 교체, 병상서 결재, 이메일로 제출 '전례없는 작전'>, 27일자 지면에는 <'인간띠 봉쇄' 허 찌른 전자발의…한국당 "입법 쿠데타 결사저지">, <쇠망치 국회…끝모를 대치>, 29일자 지면에는 <與 "유야무야 안끝내" 또 고발…野 "갈비뼈 골절" 맞고발>, 30일자 지면에는 <사개·정개특위실 막히자…與, 문체·정무위 회의실서 기습 표결> 기사를 게재했다. 주로 국회에서 벌어진 갈등상황에만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신문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뉴스통신사들에 대해서는 속보에 집착한 '따옴표 저널리즘'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관련 정치인들의 발언을 전하는 데 급급했다는 평가다. 정치인들이 발언을 하면 독자들에게 취재를 통해 발언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함께 제공해야 하는데,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방송사들은 자극적인 발언을 골라내 영상에 담으면서 일부 정치인들의 확성기 역할을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한 빠루 등 특정 사물에 주목하거나, 여야 국회의원들이 충돌하는 모습과 같은 자극적인 장면을 반복 재생하듯 보여주는 식의 중계식 보도에 그쳤다는 평가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는 "정파간의 이해가 엇갈리면서 국회가 갈등을 빚은 것은 맞지만, 이걸 중계하듯이 보도해 국회가 싸움질이나 하는 것으로 비춰지게 한 것은 언론이 책임을 제대로 못한 것"이라며 "주장이 얼마나 타당하고 근거가 무엇인지를 보도해 시청자와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 기준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정당의 대표나 원내대표의 발언을 그대로 가져와서 보도하고 끝나는 건 보도가 아니다"라며 "자극적인 언어와 장면만 난무하는 기사를 만드는 것은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언론은 시청자와 독자가 사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기사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많은 언론이 기계적 균형이란 외피를 걸치고 누가 잘못됐는지를 보여주지 않고 갈등만 보여주면서 본질을 전하는 걸 회피했다"며 "사실관계 파악에 대해선 제대로 얘기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어떤 정치인이 비논리적인 얘기를 하면 이런 것을 판단해 알려주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보도 행태가 '정치 혐오'를 불러온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이번 패스트트랙 보도를 보면서 정치혐오를 갖게 된 시민들도 상당히 많을 것"이라며 "언론이 본질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국회가 또 저런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지면 정치혐오만 갖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법안이 어떤 것인지가 중요했다"며 "그런데 패스트트랙 보도를 보면 지정하느냐 마느냐, 혹은 강행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만 얘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흔히 말하는 대로 본질은 사라지고 외견의 모습만 전달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것 자체가 정치 혐오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혐오가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처리에 어려움으로 나타날 수 있다. 김서중 교수는 "패스트트랙과 관련된 정치혐오적 기억이 법안 자체의 이미지로 남아있을 수 있다"며 "사회적으로 오랫동안 요구돼 만들어진 법안들이 잘못된 언론보도로 인해 부정적 이미지로 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뉴스 소비 환경 변화에 따른 파편적 뉴스 소비의 문제를 드러냈다. 뉴스 소비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과거에는 신문이라고 하면 지면으로 보기 때문에 스트레이트가 깔리고 피처가 붙거나 사설, 분석이 붙어서 한 눈에 상황과 분석을 볼 수 있었다"며 "그러나 포털 중심의 뉴스 소비가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뉴스를 파편적으로 접하게 됐고, 독자와 시청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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