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제작사와 이번에 주말드라마를 새로 계약하는데 편당 1억원 수준이던 제작비를 1억3천만원까지 달라고 한다. 스타급 작가인 A씨의 작가료가 회당 1천5백만원이나 더 뛰었고, 역시 유명 PD인 B씨의 연출료도 회당 750만원에서 1천만원으로 올랐다는 것이다. 작가와 연출료 인상분만 따져도 1750만원이다. 60분짜리 주말연속극은 미니시리즈에 비해 야외촬영도 적고 한류 스타도 많이 쓰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드는데도 이 정도다. 이것을 70분짜리 미니시리즈로 환산하면 최소 1억7천만원에서 1억8천만원은 줘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요즘 웬만큼 잘 나가는 스타들은 회당 2천만원을 요구하고 한류 스타급 연기자들은 5천만원 이상은 줘야한다."

한 지상파 방송사 PD가 말하는 2008년도 드라마 제작비 현실이다. TV드라마의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른바 스타 배우와 작가에게 쏠리는 편중 현상도 점점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태왕사신기>는 모두 430억원의 제작비가 투여됐고 주연배우 배용준씨의 출연료는 회당 1억원으로 알려져있다. 물론 기타 부가사업권 등을 반영하면 실질 출연료는 2억원에 육박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소문이다.

출연료 비중 40~50% 넘어서…주연급에 집중

최근 드라마 제작비에서 배우들의 총 출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40~50%를 넘어섰고 특히 주연급 스타 1~2명의 출연료가 차지하는 비중도 20%를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체 제작비에서 스타의 출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은 비주연급과 나머지 연기자들, 제작 스태프에게 돌아가는 인건비 수준은 그만큼 열악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 한 지상파 방송사의 2000년, 2002년, 2005년도 주말드라마 3편의 총 제작비, 출연료, 주연 2인 출연료, 최고액 조연출연료, 하위 10명의 배우 평균 출연료, FD 인건비의 추이를 살펴본 조사에 따르면 (<표1> 방송위원회 보고서 '한국드라마 제작시스템의 현실과 발전방안 연구', 책임연구원 양문석) '스타 권력화'와 '제작비 편중 현상'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 <표1> A방송사 주말드라마 제작비 대비 요인 비교 (단위:천원), 출처:방송위원회 보고서 '한국드라마 제작시스템의 현실과 발전방안 연구'
자료에 따르면 A 방송사의 주말드라마 제작비는 2000년(회당 제작비 3천6백50만원)을 기준으로 할 때 2002년에는 5천2백51만6000원으로 44% 상승했고, 2005년에는 6천4백50만원으로 77% 상승했다. 만약 위에 제시한 사례처럼 2008년 주말드라마를 회당 1억3천만원으로 제작한다면 무려 350%가 상승하는 셈이다.

출연료 비중도 상당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2000년 총 출연료 2천18만4000원에서 2002년에는 2천8백46만7000원으로 41% 상승하더니 2005년에는 149%가 오른 5천19만원에 달했다.

주연급 출연료의 상승곡선은 더 가파르다. 2000년 당시 3백60만원이었던 주연 2명의 출연료는 2002년 42% 증가한 5백10만원을 기록했다가 2005년에는 261%가 상승한 1천3백만원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06년과 2007년을 거치면서 남녀 주연급 연기자들의 출연료는 이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지상파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른바 스타급 배우들을 주연으로 출연시키려면 회당 2천만원은 줘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5천만원 이상을 받는 연기자도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반면 주조연급이 아닌 배우들의 평균 출연료와 FD 인건비는 그 상승률이 저조하거나 아예 감소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하위 10명의 평균 출연료는 2002년 22만6천원으로 27% 상승했지만 2005년에는 14만3천원으로 오히려 32% 감소했다. FD의 인건비도 2002년 35만원으로 6%, 2005년 38만원으로 15% 상승에 그쳤다. 주연급 스타들이 받는 출연료와 그 상승폭에 비하면 말 그대로 '새발의 피'인 셈이다.

그렇다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스타급 연기자들의 출연료 수준은 얼마나 될까? 한 지상파 방송사가 외주제작사의 지급금액을 추정한 2006년도 내부자료에 따르면 배용준, 이영애, 장동건, 이병헌씨 등 한류 스타들의 경우 회당 5천만원 이상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표2> 주연급 연기자 출연료 (외주제작사 지급금액 추정/단위:만원) 출처:A방송사 내부자료(2006)
손예진, 감우성, 송일국, 이정재, 김선아, 조인성, 박신양, 권상우, 하지원, 최지우, 송승헌씨 등은 회당 2500만원 이상을 받는 고액 연기자들이다. 고현정, 안재욱, 전도연, 에릭, 이서진, 한가인, 정지훈(비), 이나영, 문근영, 강동원, 김정은, 이요원씨 등도 회당 2000만원 이상을 받는 경우다. 결론적으로 현재 주말드라마를 비롯해 월화드라마, 수목드라마 등 각종 미니시리즈에 출연하는 주연급 스타 연기자들은 최소 1천만원 이상을 회당 출연료로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타급 주연 배우들이 회당 2천만원을 받을 경우 24부작 미니시리즈 한편에 출연하면서 모두 4억8천만원을 출연료로 받아가게 된다. 24부작 미니시리즈를 회당 1억5천만원에 제작한다고 하면 전체 36억원의 제작비 가운데 주연급 배우 2인이 차지하는 출연료는 9억6천만원으로 26%의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셈이다.

한류 스타, 대형 스타를 드라마에 기용해 시청률 면에서 인기를 얻고 해외수출 등의 부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스타의 기여와 공헌도를 반영해 결정되는 고액 출연료 자체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논리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스타배우, 스타작가, 스타연출가 위주…건강한 파트너십 고민할 때

그러나 문제는 드라마 제작사들이 스타급 연기자를 캐스팅하기 위해 출혈경쟁에 나서면서 스타의 몸값이 지나치게 부풀려지고 이것이 드라마 제작비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는 데 있다. 드라마의 제작 시스템 자체가 스타 배우, 스타 작가, 스타 연출가 위주의 생산구조로 변질되면 합리적인 제작시스템의 정착은 점점 요원해질 수 밖에 없다. 일부 스타급 배우들에게만 드라마 주연 기회가 주어지고 시청률와 인기에 영합하는 드라마가 범람한다면 콘텐츠의 완성도에 좋은 영향을 주기 어렵다.

스타의 출연료는 갈수록 폭등하고 대형 스타를 보유한 매니지먼트사와 제작사의 시장 잠식이 가속화하면서 드라마 산업의 위기론 역시 증폭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의 자체 드라마 제작은 점점 사라지고 역량있는 군소 외주제작사들도 설 자리를 잃게 되며 신인 배우와 작가를 발굴할 수 있는 단막극 시장도 갈수록 축소되는 것이 현실이다.

▲ 지난해 11월29일 발행된 MBC 방송경영인협회보.

실제로 김종학프로덕션이 제작한 <태왕사신기>의 경우 MBC는 방영권만 확보하고 저작권은 모두 제작사에 귀속된 사례인데 이에 대해 MBC 방송경영인협회는 △해외판매 기회수익 손실 △땜빵 프로그램과 텅빈 편성표 △채널 유통전략 포기 △자체제작능력 약화 등을 지적하기도 했다.

"MBC의 외주제작 의존을 고착화시키고 MBC의 자체제작 의욕을 무력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짙게 깔려있다.

드라마는 가장 많은 제작비와 제작기간, 인력이 투입되는 대형 콘텐츠다. 시청자들의 관심과 선호도 면에서도 드라마는 최고의 장르로 꼽힌다. 아시아에서 급속히 팽창한 '한류 열풍'의 진원지도 드라마였다. 그러나 드라마 산업의 위기, 스타 권력화, 제작시스템의 왜곡으로 표현되는 지금의 현실은 상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따라서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의 발전적인 관계 정립,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 시급하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스타 출연료 문제 역시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매니지먼트사가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이미 지상파 방송사는 죽어가는 자체제작 드라마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 2007년 <한성별곡>을 제외한 모든 월화·수목 미니시리즈를 외주제작으로 편성한 KBS의 경우 '자체제작 드라마 위기'를 타개할 방안으로 내부에 드라마기획팀을 신설하고 '드라마 펀드' 조성 사업에 나서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외주제작사들도 스타들의 출연료 '독식' 문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류의 불씨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드라마 콘텐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한류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제작시스템 자체가 변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상파방송사, 외주제작사, 매니지먼트사가 건강한 파트너십을 통해 합리적인 계약과 저작권 분배, 제작역량 강화, 스타의 출연료 독식을 해소하는 제작비 현실화, 비지니스 모델 구축 등을 함께 고민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다음 기사에서는 KBS 드라마기획팀 이강현 선임프로듀서와 외주제작사 '올리브나인' 김태원 드라마담당 부사장의 인터뷰가 차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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