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늘, 김성수 그리고 오지호. 이들은 비슷한 말을 했다. 오래 함께 야구란 것을 해온 탓인지 처음에는 참 달랐던 이들을 지난 일 년 반의 세월은 서로를 닮게 한 것 같다. 천무야 마지막을 위한 경기인 세 번째 전국대회 일차전에서 천무야는 처음으로 승리를 맛보았다. 다음날 열린 그 기세를 그대로 영체 짐네스틱스와의 경기에도 이어갈 듯이 보였다. 더군다나 사회인 야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김성수의 135m 대형 홈런까지 터진 경기라 더욱 그랬다.

그러나 불과 1분의 차이로 시간 촉진룰 적용을 받지 못해 5회에 들어간 양팀은 김성수의 멋진 홈런에도 불구하고 투수의 난조로 결국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방송이건 혹은 동네야구라 할지라도 운동에서 패배는 치명적이다. 스포츠 정신이 참가하고 즐기는 데 있다는 금언은 누구나 알지만 막상 승부에 들어선 선수가 되면 승리는 모든 것을 얻는 것이고 패배는 그 모든 것을 잃는 심정을 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천무야에게는 그런 감정의 만족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천무야 그들은 이기기 위해서 그라운드 위에서 온몸을 불사른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승리의 쾌감이란 것도 그들은 전혀 느낄 수 없는 상태였을 것이다. 이하늘, 김성수 그리고 천무야 모두는 눈물을 겨우 참으며 말했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겨서 한 게임이라도 더 천무야 팀과 야구를 하고 싶다고. 세상에 이토록 처절한 팀워크가 또 어디 있을까 싶은 말들이었다. 야구를 떠나 이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시합을 하는 팀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지 않고서는 정말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졌다. 그것도 다 이겼다고 생각하고 졌다. 심판의 오심이 결정적이었지만 오심도 시합의 일부라는 말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시간 촉진룰 1분을 남겨 놓고 어쩔 수 없이 5회 공격에 들어가 교체된 탁재훈의 행운과 재치 넘치는 진루와 교란 작전에 힘입어 날린 김성수의 2점 홈런을 치고도 졌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 없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결국 5회말 원아웃 주자 1루 상황에서 나온 유격수 방면 땅볼을 무난히 1루에서 아웃시켰다. 그러나 바로 전에서 오지호가 그랬듯이 영체팀 주자가 그 타구에 홈으로 파고들어 역전을 이룬 것이다.

1루수 이현배의 어깨가 좋지 않고, 부상으로 오래 동안 게임을 쉰 탓에 정확한 송구도 어려웠겠지만 사회인 야구기에 가능한 주루 플레이였다. 게임 내용만으로 보면 누가 더 잘 하고 못하고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 없는 짜릿한 1점 차 승부였다. 프로야구라 할지라도 이만큼 김장감 넘치고 오밀조밀한 내용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타선의 핵심 김성수, 오지호는 거의 전타석 안타를 쳤고, 야구에서는 없는 존재감 김현철은 1사 만루 상황에서 싹쓸이 3루타를 칠 정도로 천무야의 분발은 눈부셨다.

승부에서 졌고, 그래서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천무야의 준결승 진출은 대단히 어려워졌지만 그 누구도 나무랄 수 없는 패배였다. 세상에 단지 말로써만 존재할 것 같은 아름다운 패배. 그 말은 천무야의 두 번째 경기에 붙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록 졌지만 그들의 마음을 한 타석, 한 타석 따로 인터뷰를 따 시청자에게 그 마음을 전달한 편집도 대단히 훌륭했다. 진작 왜 이런 편집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경기 내용도, 천무야 선수들의 자세도 그리고 편집까지도 모두 최고였던 천무야 최고의 방송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 천무야가 준결승에 올라가기 위해서 아니 한 게임이라도 더 할 수 있으려면 더블헤더로 열린 평택팀을 상대로 반드시 이겨야 했다. 이기게 된다면 3팀이 모두 2승1패로 승률이 같기 때문에 승자승은 의미가 없어졌고, 오직 이긴 후에 따질 것은 득실차이였다. 천무야는 일차전에서 17대 10으로 큰 차이로 이긴 바가 있기 때문에 만일 평택팀을 이기기만 한다면 준결승에 올라갈 수 있는 유리한 발판을 이미 마련한 상태.

그러나 문제는 이미 투수진이 고갈됐다는 점이다. 이틀에 세 게임을 소화한다는 것은 직업적인 선수들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선수만큼이나 야구에 미쳐 있다고는 하더라도 천무야는 그저 아마추어 동호인일 뿐이다. 그 체력적 부담감은 태극마크를 단 국가대표만큼은 충분히 될 듯싶었다. 천무야가 믿을 것은 오로지 일타일생의 정신력 하나뿐이었다.

스스로 돕는 자는 하늘이 돕는다고 더블헤더 일차 경기에서 탁재훈을 주자로 두고 좌월 135m의 대형 투런홈런을 친 김성수는 평택팀을 맞아 1회말 똑같이 탁재훈을 1루에 두고 다시 2점 홈런을 기록했다. 사회인 야구에서는 정말 진기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2경기 연속 홈런이며 2연타석 홈런이다. 그 힘이 천무야를 승리로 이끌 것인지는 다음 주에 나머지 경기를 봐야 알 것이다.

이미 천무야의 전국대회 성적은 다 알려졌지만 이럴 때는 알고도 몰라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오직 한 게임이라도 더 함께 야구할 시간을 위해 이기고 싶다는 천무야 선수들의 마음에 조용히 마음을 얹는 일일 것이다. 머리는 이미 결과를 알지만 가슴은 전혀 모른 채 그날 먼지 날리는 그라운드에서 벅찬 심장으로 달렸던 천무야 선수들의 그 긴장과 초조함을 함께 나누고 싶다. 그들이 한 게임이라도 더 뛰고 싶듯이, 그들의 게임을 한 순간이라도 더 깊이 기억에 담고 싶어진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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