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이 예산안 날치기 수순에 돌입한 가운데 8일 오전 국회 본청 중앙홀 앞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지원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대개의 문제의 원인은 외부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 해결책은 항상 내부에 있다. 문제는 쥐를 괴롭히는 고양이지 쥐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건 쥐다. 억울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어제 국회에서 여당은 일방적으로 예산안 및 각종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야당들은 온몸을 던져 막아내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맞다. 문제는 날치기를 한 여당에 있지만 그 날치기를 막아야 할 이들은 다름 아닌 야당들이다. 그러니 겉으로는 여당의 날치기에 대해서만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무능한 야당에 대해 그만큼 실망할 수 밖에 없다.

변명 거리는 많다. 의석수가 너무 적다는 점을 비롯하여 다양한 한계 조건들은 야당들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이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 해결책을 찾는 건 여당의 몫이 아니라 야당들이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야당들보고 합치라고 말한다. 어려운 논리도 아니다. 힘이 부족하니 서로 손을 잡으라는 것이다. 그것이 합당이든 연정이든 무엇이든 되도록 빠른 시일내에 적극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 국민들의 단순한 요구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야당들은 각자의 차이와 다름을 이야기하거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이유로 미적거린다. 그리고 그 와중에 야당들 스스로 ‘절대로 통과시켜서는 안된다’ ‘용납하지 않겠다’며 목소리 높여 외치던 그 법안이 날치기 통과됐다. 그것도 겨우 3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장담컨데 국민들 상당수는 결코 야당을 동정하지 않을 것이다. 현 정권과 여당을 비판할 망정 그렇다고 해서 야당들에게 고마움이나 미안함을 느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 또한 매우 간단한 이유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않으려는 쥐를 보며 연민이 느껴지는가? 아니면 짜증이 느껴지는가?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무능하고 행동하지 않는 야당보다는 무능하고 행동하는 여당에게 아마 국민들은 다시 표를 던질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나마-설사 그것이 잘못되었다 할지라도-뭐라도 하는 이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이를 어리석다고 말해선 안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곧 '존재하지 않음'이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에게 표를 던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여당의 실정이 반복되면 자신들에게 떡고물이 떨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그러나 모든 야당들이 속으로 계산하고 있는 더러운 속물근성 속에 빠져 있지 말고 이미 나온 해결책을 충실히 그리고 창조적으로 수행할 방법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건 현 정권에 대한 피로도는 3년에 불과하지만, 야권에 대한 피로도는 13년이 되었다는 것이며, 그 안엔 모든 야당들이 다 포함된다는 것이다. 억울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기회'가 주어진 것이기도 하니까….

EBS <지식채널e> 전 담당 프로듀서.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