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 제가 <데블>의 리뷰에서 썼던 글을 일부 인용하겠습니다.

「영화가 연극에 비해 가지는 장점 중 하나는 바로 공간의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한정된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극과 달리 영화는 각종 세트 혹은 야외에서의 촬영까지 감행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종종 이러한 자신의 태생적인 장점을 외면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 중략 - 이를테면 발상의 전환이 가미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위는 저예산 영화가 가지는 가장 뚜렷한 특징을 말한 것입니다. 어차피 제작비가 적은 만큼 오히려 그 점을 역으로 이용하여 폐쇄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죠. <큐브>와 <쏘우>뿐만 아니라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와 <데블>도 그랬습니다. 이들처럼 공간의 무제약성을 버린다면 결국 관건은 탄탄한 시나리오이고, 그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수입니다. 장소를 바꿔가며 찍을 수 있다는 것은 곧 그 자체로 이야기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과감하게 포기한다면 풍부한 이야기를 짜내기 위한 시름이 깊어지기 마련이죠.

<데블>이 개봉을 앞두고 있었을 때는 살짝 놀랐습니다. 어찌하여 저예산 영화로서 택하게 되는 한정된 공간을 엘리베이터로까지 좁힐 수 있었나 궁금할 따름이었어요. 덩달아 이번엔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와 이야기로 승부를 할지 기대가 크기도 했습니다. 물론 막상 관람하고 난 후에는 실망이 가득했습니다. <데블>은 저예산 영화가 가야 할 길을 엉성한 시나리오와 연출을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준 영화에 불과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똑같은 기대와 궁금증을 갖게 한 영화가 한 편 더 나왔습니다. 심지어 이 영화는 <베리드>라는 제목처럼 '관'을 배경 삼아 승부수이자 도박을 걸었습니다.

<베리드>의 제작소식을 접했을 때의 제 반응은 <데빌>과 동일했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놀랍고 깊은 의구심을 품게 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베이터야 여러 사람이 한데 모일 수 있지만 관은 보통 1인용이잖습니까. 그러니 <베리드>는 소재부터 저예산 영화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 장점으로 삼을 수 있는, '한정된 공간적 배경'을 가지고 궁극적인 실험을 한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 이 이상의 공간은 영화에서 앞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이나 <알라딘>의 지니를 주인공으로 삼는 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시사회에서 보신 분들에게 듣기 전에는 하나의 의구심을 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95분의 러닝타임을 채우기란 불가능하게 보였거든요. 저는 타 저예산 영화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주 무대는 관으로 가져가되 부수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다룰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예를 들어 <쏘우>처럼 회상씬을 넣는다던가 <데블>처럼 다른 공간에 있는 자들을 카메라에 담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이 영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관에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베리드>는 단 한번도 카메라를 바깥으로 끌어내지 않으며 말 그대로의 궁극적인 실험을 합니다.

놀랍게도 이 실험은 대성공입니다. 누운 위치를 바꾸는 것조차 안간힘을 써야 하는 좁디좁은 공간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영화가 완성된 것입니다. 러닝타임 내내 형체를 드러내는 배우라곤 고작 한 명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베리드>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 것일까요?

시나리오 작가인 크리스 스팔링은 이 물음에 대하여 문명의 이기인 휴대전화를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관에 갇힌 채로 깨어나는 폴 콘로이는 수시로 통화를 하면서 관객에게 때론 긴장감을, 때론 의도하지 않은 유머를 선사합니다. 휴대전화만 있다면 못하는 것이 없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소재가 있을까요? 아마 히치콕도 그 시절에는 이런 영화를 결코 만들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이야 휴대전화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죠. <베리드>가 관에 갇힌 남자를 가지고도 이만큼의 기지를 발휘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휴대전화 덕분입니다.

이처럼 통신기기를 활용해 극을 이끌어가는 시나리오가 훌륭한 건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모노 드라마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상대와의 대화만으로 알찬 구성을 조합했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또한 저승의 문턱에 누워있는 주인공의 다채로운 심리변화를 묘사하는 것에도 소홀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죽음의 5단계, 즉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의 감정이 95분의 러닝타임 안에 다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결코 과장되거나 비현실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관객들에게 작은 유머를 안겨주는 재치도 발군입니다.

아울러 정치적인 의미를 가미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관이 묻힌 곳이 이라크의 모처로 설정한 것을 감안하면 알 수 있지만, <베리드>는 9.11 이후에 벌어진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현실을 작게나마 항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관에 갇힌 주인공처럼 미국과 미국인들도 점점 공포에 사로잡혀 심리적으로 고립되고 있음을 묘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리드>는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연출면에서도 굉장히 뛰어난 영화입니다. 당연히 두 기둥이 공히 굳건하게 지붕을 떠받들고 있어 한 편의 성공적인 영화가 탄생했음은 분명한데, 그 중에서도 정말 대단한 역할을 한 사람은 감독인 로드리고 코르테스입니다. 포스터부터 히치콕의 유산이 엿보였듯이, 그는 감히 히치콕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습니다.

자, 한번 간단하게 생각을 해봅시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좁아졌다는 것은 이에 비례하여 카메라의 움직임이 엄청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리얼리티를 살려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숫제 카메라가 미동을 하지 않아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생하겠죠. 정신이 나가지 않은 다음에야 영화가 연극에 비해 가지는 장점을 또 한번 내던질 감독은 없지 않을까 합니다. 가뜩이나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카메라의 움직임마저 적다면 관객은 감독의 극단적인 실험에 기가 질려버릴 겁니다.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촬영감독인 에두아르드 그라우의 공도 치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은 극에 긴박감을 부여하고자 주인공의 심리변화와 전개에 맞춰 컷의 빠른 전환, 다양한 앵글 그리고 심지어 카메라 워크(!)까지 동원합니다. 공포영화를 보면 이런 방면에서 음악이 효과적으로 쓰이지만 <베리드>의 그것은 다소 미미한 편입니다. 뭐랄까, 자극적이기보다는 은근히 압박을 주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 부족함을 이 영화는 편집을 비롯한 연출과 풍부한 화면의 구성으로 훌륭하게 대체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히치콕이 <로프>에서 그랬던 것처럼 롱테이크의 극단을 시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욕심도 있습니다. 다분히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고 히치콕의 영향이 뚜렷한 영화인만큼 말이죠. 아쉽지만 차기작에서 한번 기대해볼까요?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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