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시민구단으로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준우승을 차지한 인천 유나이티드의 장외룡 감독은 스타 선수 한 명 없는 팀을 체계적이고 혁신적인 운영으로 '승리하는 팀'으로 탈바꿈시키며 주목받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고, 패배 의식에 사로잡혔던 팀을 단숨에 정상급 팀으로 끌어올린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을 흥미롭게 했고, K-리그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장외룡 감독과 인천 구단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으로 선보였을 만큼 그 파급력이 상당했습니다.

5년이 지난 2010년, 이번에는 제주 유나이티드가 큰일을 저질렀습니다. 2006년 처음 연고 이전한 뒤 단 한번도 10위권 위로 튀어 올라서지 못했고, 지난해에는 포항 스틸러스에 홈에서 1-8로 대패하는 수모를 당했던 '만년 하위권팀' 제주가 환골탈태하며 준우승을 거두고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적이었기에 축구계에서는 제주의 선전을 놀라워하는 분위기고, 올 시즌 제주 첫 사령탑을 맡은 박경훈 감독에 대한 재조명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구자철, 홍정호, 김은중 등 주축 선수들에 대한 평가도 대부분 긍정적인 것이 주류를 이뤘고, 우승팀 서울 못지않은 강팀으로 거듭난 제주 축구의 밝은 미래를 확인할 수 있어 뜻 깊은 한 시즌을 보냈다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사실 올 시즌 제주의 선전에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올해 새롭게 사령탑을 맡은 박경훈 감독의 역할이 아주 컸다고 봅니다. 새 감독 체제로 선수들을 새롭게 영입하고 틀을 다시 짜면서 이번 시즌을 맞이한 제주는 시행착오를 거의 겪지 않고, 시즌 내내 상위권을 맴돌아 눈길을 끌었는데요. 7월까지 상위권을 줄곧 유지하다 8-10월 사이에 12경기 연속 무패를 달리며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팀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김은중, 김호준 등 이적생들의 활약도 돋보였지만 기량 좋은 이적생과 기존 선수들의 조화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해낸 박경훈 감독의 원활한 팀 운영과 활발한 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 박경훈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연합뉴스
솔직히 박경훈 감독에 대한 이미지가 이전까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었습니다. 2007년 U-17(17세 이하) 대표팀을 맡아 우리나라에서 열린 U-17 월드컵에 출전해 8강 이상의 성적을 노렸지만 예상 외의 부진을 거듭하며 1승 2패로 예선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개최국 자동 출전으로 약 2년에 걸쳐 팀을 운영해 비교적 시간도 많았고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팀을 이끌었던 박경훈 감독이었습니다만, 오히려 예선 탈락이라는 참담한 성적을 내며 많은 팬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박경훈 감독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실추되고 한동안 지도자로서 그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1986년과 1990년, 두 번의 월드컵 예선 경기에 모두 풀타임 출전한 이력을 갖고 있는 그의 이미지도 실추되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시행착오는 한 번이면 족한다고 생각했나요. 박경훈 감독은 2년 동안 전주대에서 축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하며 자신이 왜 실패했는지를 돌이켜보고 스스로 지도 방법을 터득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덕에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부임 직후, 최고 수준의 지도자 라이선스인 '프로패셔널 지도자 코스(P급 라이선스)'를 이수해 자격을 획득하는 등 '공부하는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새 도전에 임했습니다.

물론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자신의 전술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선수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더 중점을 둬서 선수 위주의 팀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선수의 자신감을 끌어올리고, 패배의식을 없애면서 '진정 이기는 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겠다는 것이 바로 박경훈 감독의 기본적인 축구 철학이었습니다.

박 감독의 철학, 의도는 그대로 맞아떨어졌습니다. 수원 삼성에서 잠시 정체기를 겪었던 중원 자원 박현범은 올해 그야말로 환골탈태하면서 조광래 국가대표팀 감독도 주목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월드컵 엔트리에 발탁되지 못해 오랫동안 후유증이 남을 뻔 했던 구자철은 후반기에 펄펄 날다시피 하면서 팀의 1-2위권 싸움을 벌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들 역시 어느 팀을 만나든 주눅 들지 않는 플레이로 제 몫을 다 하며 연속 경기 무패 행진에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중심을 제대로 잡아주는 선장이 제 몫을 다 하니 선수들은 그야말로 펄펄 날았고, 제주 축구가 오렌지 유니폼답게 '색깔 있는 축구'를 보여주며 완전하게 새로운 팀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비록 준우승이기는 했지만 제주는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한 준우승을 차지하며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수들과 이들을 잘 컨트롤한 박경훈 감독이 있었습니다. 박 감독 스스로도 부정적인 시선을 딛고 스스로 뭔가를 보여주면서 화려하게 옛 스타 플레이어 때 명성에 걸맞은 성적과 평가를 내는 데 성공하며 주목받았습니다. 남다른 패션 감각과 눈에 띄는 백발에 푸근한 미소까지 외형적으로도 인상적인 박경훈 감독의 내실 있는 진보는 앞으로 제주 축구와 프로 축구, 나아가 한국 축구에도 적지 않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축구를 선보인 박경훈 감독이 내년에는 제주 축구에 또 어떤 희망을 안겨다줄지 더 기대되고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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