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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여왕, 소름끼치는 덤덤함 보인 지하철 고백[블로그와] 탁발의 티비 읽기
탁발 | 승인 2010.12.07 07:12

역전의 여왕은 분명 내조의 여왕과 다른 드라마이다. 같은 작가에 김남주의 재출연 그리고 비슷한 환경으로 인해 내조의 여왕의 연장선에서 바라보게 되지만 갈수록 내조의 여왕은 없다. 오히려 이 드라마의 타이틀인 역전은 김남주보다 그 주변인인 목영철부장(김창완)과 소유경(강래연)에게서 더 절실하고 가슴에 와 닿는 전개를 보이고 있어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물론 역전의 여왕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야 두말할 것 없이 김남주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주 작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소시민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목소커플의 모습에서 진정한 역전의 주제를 찾게 된다. 김남주가 열연하고 있는 황태희는 비뚤어진 이기심에 포로가 된 한상무의 미움을 사 재능과 기회를 박탈된 상태이긴 하지만 그녀 역시도 과거 백여진(채정안)에게 그 못지않은 나쁜 상사였기 때문에 막상 역전에 성공했을 때에 줄 통쾌감을 좀 덜한 처지이다.

그렇지만 정말 못나고 그저 사람만 좋은 목부장과 소유경은 현실에서나 드라마에서 그리 대단한 성공은 하지 못하겠지만 그들의 존재와 소박한 히스토리가 그들의 존재감을 주연급으로 키워주고 있다. 이미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중년의 만년부장 목영철과 소녀사장으로 모든 것을 양보하고 또 눈치를 봐야 했던 소유경은 모두 회사에서 구조조정 대상이다. 이에 대해서 황태희는 “회사에서 착한 사람은 일 잘하는 사람”이라며 이들에게 분발을 자극한다.

   
   
항상 남 앞에서 주눅 들고, 어깨를 움츠려야 하는 이 두 사람은 마침내 큰 용기를 내어 지하철 차량 안에서 상품 홍보가 아닌 자기의 아주 절실한 아픔을 털어놓게 된다. 평생을 사람 좋은 상사지만 유능한 부하직원을 길래내지 못한다는 황태희의 말에 목부장이 먼저 자리를 일어나 차량 한가운데에 섰다. 처음에는 누구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루 일과에 지친 퇴근길의 사람들에게 낯선 사람의 말에 쉽게 관심이 갈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가 간암 말기의 시한부 인생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만나러 가지 않고 자신의 죽음 후에 보험이라도 가족이 받게 하려고 모두에게 병을 속이고 회사를 다닌다는 말에 비로소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렇다. 사람들은 세상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서 모르거나 귀를 닫은 것이 아니다. 듣고도, 알고도 관심을 주지 않는 것뿐이었다. 자신 스스로 보잘 것 없는 인생이라고 고백하는 말에 차가운 지하철 형광등빛이 반사되어 목부장 역할을 하는 김창완의 실제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의 표정은 어떤 명배우의 반열에 올려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이었다.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 나 하나쯤 어떻게 돼도 세상은 자신이 속한 아주 작은 커뮤니티조차도 아무 지장 없이 돌아갈 것이라는 그 작은 존재감에 더욱 움츠려들게 된다. 그런 마음을 평생 인기인으로 지낸 김창완이 어찌 그리도 잘 표현해낼까 놀라울 뿐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던 영화 25시에서의 안소니 퀸의 마지막 표정과 오버랩되는 김창완의 지하철 자기 고백은 특히나 소심한 부하직원 소유경을 위한 용기였다는 점에서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런 목부장의 솔선수범에 용기를 얻은 소유경이 마침내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목부장이 섰던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회사 동료라고 할지라도 쉽게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우리 사회에 자기 아픔을 털어놓고, 또 그 고통을 덜어줄 친구가 희박해진 탓이다. 실제로 그다지 빼어난 미인도 아니고 이름도 없는 강래연이라는 연기자가 겪은 많은 시련과 아픔이 대사에 실려서인지 소유경의 고백은 공감과 연민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요즘 드라마가 잘 구현해내지 못하는 소소한 공감을 역전의 여왕은 목소 커플을 지하철에 세워서 거뜬히 끌어냈다. 특히 감추고 싶기도 하지만 알려지면 곤란한 일을 스스로 고백한 목부장의 모습은 슈퍼맨보다, 그 어떤 세계적인 봉사자들보다 더욱 믿음직스럽고 알고 싶은 사람으로 느껴지게 했다. 내가 사는 작은 경계 내에 저런 사람 하나쯤 있다면 사는 것이 특별히 나아지는 일은 없더라도 내 고통, 그의 고통 함께 듣고 말하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만 같았다. 이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역전의 여왕은 다른 무엇보다 목부장 김창완 때문에 애착이 간다. 거기에 소유경뿐만 아니라 특별기획팀의 모든 구조조정 대상들 역시 마찬가지다. 잘나기는커녕 언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파리목숨같은 그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역전을 기대하고 또 응원하게 된다. 황태의와 재벌 아들 구영식의 러브 스토리는 목부장의 존재감 앞에서 그 빛을 잃고 말았다. 목부장의 휴머니티에 역전의 여왕이 가진 본질적인 시선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좋다.

그리고 또 빠트릴 수 없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직원들과 술자리에서 아내에 대해서 말이 오갈 때 목부장은 "나이 들어가는 두려움을 잊게 해주는 게 뭔지 알아? 함께 늙어가는 즐거움이야"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그 깊은 의미를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곱씹을 말에 틀림없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탁발  treein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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