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에서 제니퍼 애니스톤이 연기한 캐시는 연애를 하기엔 여러모로 불편하다고 느끼며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갖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캐시는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남자를 택해 정자를 기증받기로 하고 인공수정의 성공을 기원하는 파티를 엽니다. 이 자리에 캐시의 절친인 월리도 참여하여 그녀의 결정을 응원하지만 속으론 그리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은근히 캐시를 마음에 두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도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인공수정을 한 후에 다른 도시로 이사 가는 캐시를 그냥 떠나보내고 맙니다.

세월이 흘러 캐시와 재회하게 된 월리는 과거에 인공수정을 통해 나은 남자아이도 함께 만납니다. 그런데 어랍쇼? 어딘지 모르게 이 소년은 자기와 닮은 구석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이답지 않게 냉소적인 말투하며 무심한 표정 그리고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 월리의 분신으로 느껴질 만큼 쏙 빼닮았습니다. 심지어 생물학적인 아버지는 싫어하고 월리를 더 잘 따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궁금하던 월리는 그제서야 옛 기억이 차츰 떠올라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데... 도대체 그날 밤에 월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마 <스위치>를 관람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대다수가 제니퍼 애니스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지 않을까 합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장르의 형태는 그녀의 주요 활동무대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만약 누군가 제니퍼 애니스톤의 연기를 기대하고 본다면 이 영화에 실망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앞의 문장에서 굳이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장르의 형태"라고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스위치>는 로맨틱 코미디라고 부르기는 좀 애매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절대 로맨틱 코미디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것만으로 영화에 실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고, 제니퍼 애니스톤의 비중 자체가 굉장히 적습니다.

우선 <에브리바디 올라잇>에서도 레즈비언 커플이 그랬지만, 문화적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소재는 일단 차치하기로 합시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가벼운 코미디를 지향하고 있고 있습니다. 고로 싱글 여성으로서 연애에 대해 가지는 입장이나 그로 인해 인공수정을 택하게 되는 배경 따위에는 무게를 두지 않는 건 일면 당연합니다. 그렇다 보니 캐시는 영화의 이야기에서 거의 배제된 상태로 진행이 됩니다. 그녀는 그저 뜻한 바가 있어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았고 세월이 흘러 다시 돌아와 월리로 하여금 "네가 얘 아빠다"라는 것을 상기케 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역할에 불과합니다.

이렇듯 제니퍼 애니스톤의 비중이 극히 미미한 대신에 극의 다수는 가족과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 월리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그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 영화는 심심해도 제법 많이 심심합니다. 저는 제니퍼 애니스톤의 팬도 아닐 뿐더러 로맨틱 코미디를 애호하는 입장도 아니지만, <스위치>가 가진 애매모호하고 평이한 연출방향에 심히 실망했습니다.

이 영화는 택하고 있는 소재에 반해 극에 부여하고 있는 의미도 빈약하지만 무엇보다 일단 별다른 재미요소가 없습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이자 필수인 웃음마저 거의 얻을 수 없고, 그렇다고 말미에 딱히 감동을 준다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무래도 시나리오는 꽤 괜찮은데 연출에서 방향설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두 편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데, 어느 하나로 중지를 모으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결국엔 흐지부지하게 마무리되는 상황입니다. 코미디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닌 영화로 말이죠...

그나마 <스위치>를 수렁에서 건져 올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역배우인 토마스 로빈슨입니다. 제니퍼 애니스톤은 사실상 연출에 발목을 잡히면서 제 실력을 발휘할 여건이 되질 못했습니다. 제이슨 베이트만은 그럭저럭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지만 캐릭터 자체가 돋보이지 않다 보니 영화를 이끌고 가기엔 다소 부족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걸맞게 아이답지 않은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인 토마스 로빈슨의 역할이 <스위치>에서 가장 돋보입니다. 그마저 없었다면 이 영화의 현재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니, 두 명의 감독은 두고두고 감사해야 할 겁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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