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회를 남긴 상황에서 지우와 진이는 화해의 손을 내밉니다. 이미 한 차례 정치인 양영준에게 배신을 당한 그들은 다시 한 번 그와 만납니다. 우리시대 정치인의 단면을 보여주는 양영준은 대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냉혹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뿐입니다. 대권 주자 양영준이 <도망자>에서 중요해진 이유는 그 안에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골치 아픈 유권자들이 세상을 바꾼다

마지막으로 믿고 싶었던 양회장의 아들 양영준은 양회장을 능가하는 절대 악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사설 감옥 같은 별장에 감금하고, 기자 회견을 통해 모든 사실을 밝히겠다는 진이와 지우를 깡패들을 동원하여 궁지로 몰아 부친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진짜 정치인이었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모든 것을 그대로 믿을 수 없게 된 진이는 기지를 발휘하여 죽음 직전에서 벗어나지만 그들은 여전히 위기 속에 갇혀 있습니다. 양회장의 지시를 따르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린 경찰 조직원들과 경찰에서 쫓겨나 정의를 찾아가는 도수와 윤형사는 믿기 어려운 공권력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경찰을 통해 목숨을 구하고 스스로 잉여의 몸이 되어버린 진이와 지우는 기지를 발휘해 병원을 탈출합니다. 한없이 무지하고 무능한 중간 관리자 백반장의 모습은 최근의 공권력의 무능을 보면 실제 존재하는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외국으로 잠시 나가 있기를 원하는 아들의 청을 거부하지 못한 양회장은 자신이 외국이 아닌 은밀한 장소로 가고 있음을 알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듯 기고만장했던 그가 다름 아닌 아들에 의해 유배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권력의 마력을 깨닫게 됩니다.

'마약보다도 중독성이 강한 권력욕'은 천륜이라는 부자 관계마저 우습게 만들었습니다. 청와대 경제팀의 고급 관료였던 그가 대권에 나서며 꿈을 이룬다면 자연스럽게 부자 관계는 회복될 것이란 기대는 아들의 전화 한통으로 끝나버립니다.

선거가 끝날 때까지가 아니라 집권을 마칠 때까지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말에 양회장은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하나만 더 엎어 놓으면 완성될 수 있었던 그의 권력은 마지막 한 단계를 완성해줄 아들로 인해 괴멸해 버렸으니 말이지요.

나쁜 권력과 손잡은 이들로 인해 경찰에서 쫓겨나야만 했던 도수와 윤형사는 경찰 조직의 말단인 형사들과 진실을 찾기 위한 수사를 진행합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밖에 없는 수사는 잘못하면 목숨까지 내놔야 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권력과 한 몸이 되어버린 공권력은 권력층의 잘못에 눈감고 그 영양분을 섭취하고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권력 관계를 정리하고 바꿔놓을 수 있는 존재가 말단 형사와 쫓겨난 전직 형사라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 필요한 존재들과 방법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것은 누구일까? 라는 질문에 작가는 그 동력과 힘은 우리에게서 나온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도망자>는 줄기차게 정의가 무엇이고 그 정의를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드러난 표피는 단순히 금괴를 손에 넣기 위한 무리들의 대결 정도로 보이지만, 이면을 살펴보면 금괴가 아닌 그 안에 숨겨진 사연에 집중하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부정을 통해 만들어진 정의는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듯, 피로 만든 권력은 다시 피로 돌아온다는 단순한 정의를 <도망자>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권력을 손에 쥐었던 양회장이 믿었던 아들에 의해 사설 감옥에 갇히는 모습은 권력에 미친 이들의 말로가 어떤 모습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MB를 지키는 경호원들을 위해 100억 원의 세금을 사용하겠다는 그들은 양회장을 감옥 같은 별장에 보내는 것과 유사하기까지 합니다.

외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감시받고 살아야 하는 그들은 가장 비싼 사설 감옥에 갇혀 사는 불쌍한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죽는 그날까지 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 탐욕스런 권력자들의 말로는 새로운 권력의 집착으로 잉태되려 합니다.

탐욕으로 일군 독재자의 피를 이어받아 더욱 더러운 독재자가 되어가는 경제 관료 출신 양영준은 <도망자>가 우리 시대 권력 풍자의 정점에 위치해 있음을 알게 해줍니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겠지요.

"사과는 현실이 되고 현실은 미래를 결정한다"

다른 것 모두 필요 없고 진솔한 사과만을 원한다는 진이에게 양영준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양영준이 아버지의 극한 범죄를 모두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볍게 무시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잘못을 시인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자승자박이 되어 그렇게 탐하던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정의가 실현되고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세상을 자신의 탐욕을 위해 저버린 권력자 양영준의 모습은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 그 더러운 탐욕으로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우리사회의 권력자들을 모질게 풍자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탐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양영준은 진이에게 국내에 있어도 넌 나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며 "골치 아픈 유권자"라는 표현을 합니다. 권력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다름 아닌 '골치 아픈 유권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왜 그렇게 '생각 없는 유권자'에 머물러야 했는지 반성하게 합니다.

조폭과 자본이 함께 해 만들어낸 더러운 권력의 상징 양영준은 <도망자>가 숨겨왔던 절대 악 멜기덱일 것입니다. 양영준이라는 특정 인물이 아닌 탐욕으로 점철된 권력자들 모두가 거대한 멜기덱 조직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검은 권력이 바로 멜기덱이라는 말이 되겠지요.

지우와 진이가 밝힐 수 없는 진실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마지막 보루를 '언론'이라고 했지만 과연 우리 시대 언론이 그런 희망이 되고 있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 언론은 권력의 시녀로 대중들의 귀와 눈을 멀게 하는 일등공신이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마지막 파티를 준비하는 그들이 과연 절대 악을 물리치고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추노>에서도 그랬듯 현실은 암흑이지만 떠오르는 태양처럼 희망만은 거두지 말고 살자고 이야기할까요? 마지막 한 회가 중요하고 기대되는 이유는 그 안에 모든 가치가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양영준을 통해 멜기덱이라는 악의 조직을 넌지시 건네는 <도망자>는 리얼하고 의미 있게 현실을 풍자하는 드라마였습니다. <동이>에서도 나왔던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을 정작 권력을 가진 자들만이 부정하는 현실은 가장 웃기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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