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해서였습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인 황아무개(34)씨가 분신을 결심한 것은. 법원에서 “2년 이상 일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로 본다”고 판결했는데 그 법을 지키지 않는 현대차를 보고 억울해서 견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지난달 22일 얼굴과 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황씨는 병원 한 켠에서 숨죽인 목소리로 제게 말했습니다.

“한낱 비정규직 노동자인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이거(분신)라도 해서 공장안 동지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청계천 봉제공장에서 전태일씨가 “노동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지 40년. 황씨의 숨죽인 목소리에서 전태일씨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 지난달 20일 분신을 시도한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직원 황아무개씨가 병상에 누워 치료를 받고있다. ⓒ허재현 기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벌써 파업 17일차입니다. 현대차가 음식물과 난방을 차단한 바람에 500여명이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여전히 버티고 있습니다. 물론, 현대차도 손실액이 많습니다. 현대차는 지난 25일까지 1770억원의 생산손실액을 입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금쯤이면 2천억원은 넘었을 겁니다.

지난 2주 간 저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두루 만나보았습니다. 분신한 황씨. 공장안의 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들을 만나서 쓴 기사들이 <“‘시급 5000원’ 떠돌이만 9년…떳떳한 아빠이고 싶다”> 등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 분들이 요구하는 건 간단합니다. “법원의 판결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 노동자로 전환하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현대차는 “일부 소송을 건 노동자들에게만 해당하는 판결”이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오히려 이 파견법이 잘못 됐다며 헌법소원을 냈다가 기각 당했습니다.

여러분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현대차의 주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법대로 해결하면 간단한 것을 두고, 왜 이런 힘든 싸움을 서로 포기하지 않는 걸까요.

현대차 입장에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드는 비용이 일단 만만치 않습니다. 현대차의 추산으로는 1만 여명 정도의 현대차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드는 추가 비용이 2600억원 정도입니다.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 돈이 현대차가 감당 못할 액수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현대차 스스로도 그렇게 얘기하진 않습니다. 현대차의 지난 해 순이익만 2조 9천억원에 이르고 유보금만 8조원이거든요.

앞서 언급했듯이 현대차는 이번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2천억원 이상의 생산손실액이 발생했습니다. 이미 이 돈이면, 농성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도 남을텐데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현대차가 겉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사실 또 다른 속내가 있습니다. 선례를 남기게 된다는 재계의 우려가 현대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차가 이렇게 법대로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되면, 우리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노동계에는 ‘희망’이지만 재계에는 ‘재앙’이 될 수 있는 일이지요.

사실 하청업체 노동자를 활용하는 비율은 자동차 업계보다는 다른 업계가 훨씬 더 그 수준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상 이번 현대차 비정규직 농성은 재계와 노동계의 대리전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법대로 하면 될 간단한 일이 쉽게 마무리 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 현대차의 단전 조치로 500여명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울산 현대자동차 1공장 일부는 암흑 상태로 변했다. ⓒ노동과 세계 이명익 기자
그래서 그럴까요. 이번 파업에 대한 현대차의 흑색선전은 공장 안에서 지켜봤을 때 상상 그 이상입니다. 어떻게든 이번 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흔적이 보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번 투쟁을 ‘외부 세력에 의한 선동’이라고 비난하는 유인물이 공장 곳곳에 뿌려지고 있더군요. 공장 안에 들어와 있는 민주노총 교섭국장. 그러니까 정당한 교섭을 위해 들어와 있는 분들마저 외부 세력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현대차 비정규지회는 민주노총 직할 지회입니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외부 단체가 아니지요)

또, 비정규직을 도우려는 정규직 노조원들을 향해서는 ‘빨갱이 테러’를 벌이고 있기도 합니다. 이번 현대차 비정규직의 농성은 많은 정규직 노조원들이 돕고 있습니다. 우선 농성장 입구에서부터 회사 쪽 관리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보초를 서고 있지요. 이분들은 5분에 한번 씩 출처 불명의 문자메시지를 받습니다. 문자 내용은 ‘빨갱이보다 더 나쁜 놈’ ‘빨리 죽어라’ 등등 원색적인 내용들입니다. 증오와 멸시가 가득 담긴 살벌한 내용들이죠.

▲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을 돕고 있는 현대차의 한 정규직 노동자가 자신의 휴대폰에 도착한 문자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허재현 기자
또 비정규직의 농성을 돕고 있는 정규직 노조원들에게는 징계 압박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정규직 노조원들에게 “괜찮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냥 “하는 수 없지요” 하고 웃고 넘깁니다. 이런 협박 메시지를 받으면 회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도 있을텐데 이분들은 그냥 태연하게 웃고 넘기더군요. 마치 늘 있었던 일처럼 말이지요.

저도 공장 안에 며칠 있어 보았지만, 차가운 공기를 이불 삼아 맨 바닥에서 며칠 자다보면 온 몸이 욱신거립니다. 그렇다고 먹을 거라도 제대로 있나요. 정규직 노조원들이 눈치껏 넣어주는 빵과 라면이 이들 식사의 전부입니다. 환자들은 차고 넘칩니다. 그래도 농성장을 나가지 않습니다. 곳곳에서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그냥 앉아서 쉬는 게 치료의 전부입니다.

법원 판결 지키라고 분신하고 수 십 일간 농성까지 해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게다가 연평도 사태같은 불행한 일까지 터지면서 이들의 농성은 세상의 눈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노동자들에게 2010년 겨울은, 이번에도 춥고 외로운 계절이 되겠군요.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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