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가수 나나 무스쿠리(74)가 내한공연에 앞서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국에서 벌어진 상황과는 관련이 없는 그가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다.

▲ 경향신문 1월21일자 14면.
“예전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고, 태안의 원유 유출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심각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선 공연은 열지 못해 아쉽지만 수익금의 일부인 1만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 공연 수익금 가운데 일부인 1만달러를 원유 유출 사고를 겪은 충남 태안 지역의 생태계 복원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정부와 지자체·삼성중공업

그동안 태안 주민 3명이 목숨을 끊는 등 상황이 악화되는 동안 ‘수수방관’해 왔던 정부나 지자체, 삼성중공업 등의 태도와 정말 뚜렷이 비교가 된다.

정부가 내려 보낸 생계용 긴급지원금 300억원이 적다는 이유로 추가 지원을 요구하며 한 달 가까이 이 돈을 배분하지 않은 이완구 충남지사나, 상황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중앙정부 그리고 그동안 사과는 물론이고 보상대책과 관련해 무성의로 일관하고 있는 삼성중공업 관계자들 모두가 그의 ‘자세’를 본받아야 하는 이유다. 지금 중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거나 책임지려는 자세지, ‘누구 때문’이거나 ‘법적 책임’ 운운할 상황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자(21일) 조선만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선만평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권력에 약한 공무원의 ‘전형적인 자세’다. 5년 동안 ‘꿈쩍 않던’ 대불공단 내 전봇대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말 한마디로 없어진 ‘상황’과 태안 사태에 대한 언론의 지적에 대해서는 ‘닭 쫓던 개 쳐다보듯’ 대하는 공무원의 자세를 비교하면서 공무원의 이중적 처신을 비난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만평이 놓치고 있는 것 … 언론은 ‘태안 사태’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 조선일보 1월21일자 2면 '조선만평'.
일면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조선 만평이 놓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정확히 말해 타깃을 잘못 설정했다는 말이다. 이 당선인 말 한마디에 ‘군대처럼’ 움직이는 공무원의 처신을 비꼬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태안 현지 상황에 대한 언론의 지적을 공무원들이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부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지금까지 대다수 언론은 태안 사태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으며 특히 보상이나 책임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자원봉사자들의 활동만 주목한 채 ‘미화’하기에 바빴던 언론에 대한 현지 주민들의 반응이 어떤 지는 오늘자(21일) 경향신문에 실린 김진권 태안유류피해투쟁위원장 인터뷰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조선만평은 일종의 ‘왜곡보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공무원들이 태안 사태에 대해 소극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을까. 오늘자(21일) 한겨레 1면 <‘책임 떠넘기기’ … 태안 두 번 울렸다>의 다음과 같은 부분이 하나의 단서를 제공해준다.

이명박 당선인이 ‘태안사태’ 보상·책임 문제에 대해 한 마디 한다면

“기름유출 사고의 수습 방안을 놓고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사이의 책임 떠넘기기, 가해 기업의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자세가 계속되면서 주민들의 고통만 커지고 있다. 더욱이 정권교체기라는 특수 상황에서 ‘가는 권력’은 상황을 장악하고 관리할 힘이 없고, ‘오는 권력’은 현정부에 모든 것을 맡겨놓고 개입을 꺼리는 형편이다.”

▲ 한겨레 1월21일자 1면.
사실 ‘대불공단 내 전봇대 제거’는 일의 효율성 측면이 아니라 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많다. 21세기 한국의 공무원 사회가 여전히 권력자 말 한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것을 보여준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 ‘위험성’을 경계해야 할 일부 보수언론이 이를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며 크게 보도하고 있는 것 역시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 당선인이 태안 기름유출 보상·책임문제와 관련해 한 마디 한다면 일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는 권력’은 현정부에 모든 것을 맡겨놓고 개입을 꺼리는 형편”이라는 한겨레의 지적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네티즌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전봇대도 한 방(!)에 날린 당선인이라면 이 문제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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