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보고 중국의 강세에 '질렸다'고 느낀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홈 이점에다 엄청난 인프라를 통한 탄탄한 역량을 앞세워 중국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199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금76개)의 격차를 무려 123개 차로 따돌리고 역대 최고 성적으로 종합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거의 모든 종목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줬고, 홈 이점을 앞세워 강세 종목에서 싹쓸이하다시피 하면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또 한 번 중국 스포츠의 위용을 마음껏 과시했습니다. 중국의 종합 1위는 지난 1982년 뉴델리 대회 이후 8회 연속 이어진 기록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두고 '광저우 중국 체전'이었다는 우스갯소리도 할 정도였습니다. 워낙 중국의 강세가 뚜렷했던 만큼, 특히 중국 강세 종목에서 뻔한 결과들이 잇달아 나오다보니 별 재미가 없었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래서 아시안게임이 좀 더 재미있어지려면 중국을 어느 정도 견제할 만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며, 이 때문에 우슈, 드래곤 보트 같은 '중국 색깔이 강하게 들어간' 종목들을 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독주를 막는 것은 아시안게임 흥행 뿐 아니라 아시아 스포츠의 고른 발전을 위해서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사실 물리적으로, 어떤 조치를 통해서 중국의 독주를 막는 것은 어렵습니다. 중국의 독주를 막을 만한 종목수 축소, 출전 선수 제한을 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중국의 반발을 살 뿐 아니라 출전국 전체적으로도 영향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이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 광저우 아시안게임 축구 3-4위전에서 한국을 상대해 골을 넣은 이란 선수들 ⓒ연합뉴스
결국 각 출전국들의 경기력을 키우고, 더 높은 수준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권의 경쟁력 향상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처지는 중동 국가들의 경쟁력 향상이 더욱 필요해 보입니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아시아 스포츠의 고른 발전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동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한 발전이 아니라 중동 국가들의 분발을 통한 균형 잡힌 변화와 발전이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중동 국가들이 눈에 보일 만큼 경기력 면에서 큰 발전을 이루기에 한계가 있기는 합니다. 거의 모든 종목에 출전하는 상위권 동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중동 국가들은 그럴 만한 역량을 투입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이슬람 율법에 따라 여성의 스포츠 참여를 엄격히 금하는 나라들이 있는데다 인구수나 스포츠 인프라 역시 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빈약한 면이 많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고른 향상과 발전을 이루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번 대회 몇몇 종목에서 중동 국가들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모습들을 보여줬습니다.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투자하고 노력한다면 조금이나마 아시안게임 판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나타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돋보이는 성적을 낸 국가는 바로 이란입니다. 이란은 모두 20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고 대만, 카자흐스탄 등을 제치고 종합 4위에 오르는 성과를 냈습니다. 특히 이란은 레슬링, 태권도, 우슈 등 투기 종목에서 많은 메달을 거머쥐며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고, 모두 16개 종목에 걸쳐 메달을 획득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몇몇 종목에 전략적으로 투자한 결과, 중국, 한국을 따돌리고 금메달을 획득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보여줬고, 농구나 핸드볼, 배구 등 구기 종목에서도 선전을 거듭하며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이번 대회를 마쳤습니다.

10위권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카타르 등 11-20위에 오른 중동 국가들의 일부 종목 선전도 눈에 띄었습니다. 아프리카 선수들을 귀화시켜 출전한 육상에서 일부 강세를 드러냈고, 투기 종목, 사격 등에서 비교적 괜찮은 성적을 내며 입상하기도 했습니다. 선수 규모 면이나 전체적인 기량 면에서 1-3위에 오른 중국, 한국, 일본에 비해 다소 떨어지기는 해도 이렇게 일부 종목에서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며 아시아 정상을 차지한 종목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확실히 중동 국가들이 전에 비해 상당히 진일보한 성적을 내고 있기는 합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때 15위 내에 든 중동 국가가 이란(7위), 쿠웨이트(14위)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3개 국가로 늘어났으면서 전체 메달 수에서도 눈에 띌 만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시아 스포츠 전체의 성장 측면에서 놓고 보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중동 국가들의 선전이 한국 스포츠의 메달 획득에 적지 않은 불똥이 튀는 것은 경계해야 하는 일이 아닐 수 없지만 한국 입장에서도 오히려 또다른 자극제가 돼서 강국들의 경기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면 더없이 좋은 현상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진정한 아시안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국가들 뿐 아니라 중동 국가들의 선전도 필요한데 그래도 10년 사이에 어느 정도 변화가 있는 것은 주목할 일입니다.

이러한 중동 스포츠의 변화에 큰 힘을 실을 수 있는 비결을 꼽는다면 바로 중동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 할 수 있는 '오일 머니'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돈을 풀어 스포츠에 많은 투자를 한다면 의외로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고 경쟁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스포츠가 돈과 연관돼서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조금 씁쓸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아시아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서 중동 스포츠의 발전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자발적이고 집중적인 투자가 뒷받침돼야 하는 건 필요충분조건이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중동 축구가 동아시아권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거나 때로는 더 나은 모습을 자랑했듯이 전체 스포츠에서도 중동의 약진은 중동에게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동아시아 스포츠에도 자극제가 돼 전체적으로 양적, 질적인 발전을 이루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특정 국가의 독주를 물리적인 힘이 아닌 자연스러운 변화로 조금씩 누그러뜨리고, 더 재미있고 경쟁력 있는 종합 국제 대회 아시안게임을 만들기 위한 동-서아시아 각 국의 노력은 결국 아시아 스포츠 발전, 향상에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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