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개인 날>, <간지들의 하루> 등을 연출한 이숙경 감독의 신작 <길모퉁이가게>는 서울 성산동에 위치한 작은 도시락 가게 ‘소풍가는 고양이’를 배경으로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지난해 열린 서울독립영화제 경쟁 부문에 상영되었던 <길모퉁이가게>는 28일 폐막한 인디다큐페스티발 2019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제도권 교육 밖에 있는 청(소)년들의 자립을 목적으로 설립한 ‘소풍가는 고양이’는 이윤보다 취약 계층에게 일자리 제공을 우위에 두고 운영되는 사회적 기업답게, 한 달 매출 400만 원 남짓의 적은 매출에도 불구하고 직원 6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이상적인 고용 형태를 취한다. 사업체를 이끄는 대표이사 씩씩이(당시 46세)를 제외하곤 대부분 직원들이 10~20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직원들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주문 물량만 받고 대표 포함 구성원들 간의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는 것 또한 ‘소풍가는 고양이’의 돋보이는 특징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길모퉁이가게> 스틸이미지

가난하지만 서로를 배려하며 안분지족하는 대안 공동체의 삶을 보여주는가 싶었던 <길모퉁이가게>는 ‘소풍가는 고양이’가 더 많은 청년들을 고용하기 위한 가게 확장에 돌입하며 예상치 못한 전환을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가게 확장과 함께 2015년 여름 메르스 사태로 매출이 급격히 줄어든 ‘소풍가는 고양이’는 직원 축소를 검토해야 하는 상황까지 맞는다. 그럼에도 인력 감축 대신 매출 확대라는 승부수를 띄운 씩씩이는 목표달성을 위해 40대 초반의 전문 조리사를 고용하고, 브랜드 로고를 바꾸는 등 분위기 쇄신을 위한 다양한 변화를 꾀한다.

매출을 늘리기 위한 씩씩이의 갖은 노력으로, ‘소풍가는 고양이’는 매출액이 4~5배 뛰어오른 고공성장을 거듭한다. 일반 기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10명 남짓 직원으로 운영되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과 이전 매출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수치이다. 그러나 직원 수는 매출 증가 전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줄어든 듯하다. 더군다나 확장 이전부터 함께해오던 직원 2명이 일신상의 이유로 가게를 그만두었지만, 그들을 대체할 인력 충원이 활발히 이뤄지지는 않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길모퉁이가게> 스틸이미지

이에 매출 증가로 인한 노동량의 증가는 고스란히 남아있는 직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물론 직원들에게 늘어난 매출과 노동 강도만큼의 경제적 보상이 돌아가기는 하지만, 직원들의 업무 스트레스는 매출 증가 이전보다 급격히 높아져간다. 애초 이윤을 목적으로 도시락 가게를 만든 것이 아니기에 스스로도 매출 확대의 부작용을 우려하던 씩씩이는 늘어난 주문량을 소화하기 위해 직원들을 재촉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기도 한다. 가게 확정 이전, 구성원들 간의 평등한 관계 개선을 위해 서로에게 폭언이나 욕설 발언 시 벌점스티커를 부과하기도 했던 ‘소풍가는 고양이’ 사업장엔 점점 짜증과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다.

매출 확대를 위한 효율적인 경영관리 체계 도입 덕분에, 한때 문 닫을 위기까지 처했던 ‘소풍가는 고양이’는 운영 안정화라는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직원들은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자신들의 업무를 스스로 정하며 여유롭게 일을 하지 못한다. 매출 증가와 함께 일의 능률과 생산성을 중시하게 된 ‘소풍가는 고양이’는 점점 일반기업의 외연을 닮아 가기 시작한다. 대표와 직원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만, 점점 늘어나는 도시락 생산량과 주문 독촉에서 오는 스트레스까지 막을 수는 없어 보인다.

다큐멘터리 영화 <길모퉁이가게> 스틸이미지

돈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지극히 회의적으로 들릴 수 있는 질문 앞에서, 그럼에도 감독은 보여주고자 한다. 작은 도시락 가게가 성장하는 동안 돈벌이와 인간다움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묻고자 한다. 돈의 위력 앞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여전히 막막하게 느껴지는 질문이지만, 이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조만간 <길모퉁이가게>를 극장에서 다시 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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