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대회에서 많은 메달을 따내는 종목을 두고 우리는 효자 종목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번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효자 종목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만큼 이 종목들은 많은 메달을 따내 선전을 펼쳤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응원과 격려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종목들이 더 많은 게 사실입니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어도 몇몇 종목에만 편중돼있다시피 한 특성 때문에 모든 선수들이 주목받고 응원을 받는 것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메달을 따고도 이렇다 할 주목도 받지 못하고, 심지어 선수가 직접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려 자랑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한 종목에서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춰 메달을 따내고도 그 종목이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로 조용하게 묻히는 현실은 참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특히 경기 규칙조차 생소한 비올림픽 종목 가운데서는 '이런 종목에 한국 선수가 출전했나'하고 여겨졌을 만큼 철저히 무관심 속에 대회를 치른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정말로 한국 스포츠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따낸 메달 가운데 소중하지 않은 메달은 단 하나도 없었고 그 가운데서도 비인기, 비올림픽 스포츠 종목들의 선전은 한국 스포츠의 힘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도 남았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새로운 희망, 그리고 조용한 감동을 선사한 비올림픽,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활약상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지난 19일, 중간 결산으로 정리했던 ('무관심으로 가려진 한국 메달, 어떤 것이 있나)'에 이어 아시안게임 최종 결산으로 우리 선수들의 활약상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따낸 종목은 사격으로 모두 13개의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그 다음으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따낸 종목은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정답은 바로 8개 금메달을 따낸 볼링이었습니다. 황선옥이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4관왕에 오른 것을 비롯해 최복음이 3관왕에 오르는 등 다관왕이 잇달아 배출됐을 정도로 한국 볼링의 선전은 이번 아시안게임 최대 수확이자 쾌거였습니다. 원래 한국 볼링은 아시안게임을 비롯해 세계 대회에서 강한 면모를 과시해 왔는데요. 레저 스포츠로는 어느 정도 각광을 받는다 해도 엘리트 스포츠로서는 비올림픽 종목이라는 이유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해 다소 묻힌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 볼링 4관왕 황선옥 ⓒ연합뉴스
사실 한국 볼링은 이번 대회에 절박한 심정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이 42개 종목에서 35개 종목으로 줄어드는데 7개 퇴출 종목 가운데 하나로 볼링이 거론돼 이번 대회를 통해 뭔가를 보여주기를 바랐습니다. 비록 경기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있어 잠시 파문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선수들은 최고의 기량으로 8개의 금메달을 휩쓸며 아시아 볼링 최강국의 면모를 과시하고 대회를 마쳤습니다.

인라인 롤러의 선전도 대단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첫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던 인라인 롤러는 모두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따내며 선전을 펼쳤습니다. 특히 인라인 롤러 스타 우효숙과 기대주 안이슬이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어 눈길을 끌었는데요. 우효숙은 금메달을 따낸 뒤 자신을 어렸을 때부터 키워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습니다. 감동 속에서 값진 메달을 따낸 인라인 롤러 선수들의 희망 질주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정구의 아시아 최강 지키기도 빼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소 대회보다 상대적으로 다소 떨어지는 감은 있었지만 금메달 2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를 따내며 대만, 일본을 근소한 차로 따돌리고 정구 최강국 자리를 지켜냈습니다. 도하 아시안게임 때 여자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던 김경련이 혼합 복식에서 지용민과 짝을 이뤄 2회 연속 금메달을 따냈고, 이요한이 남자 단식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전 종목에서 고르게 메달을 따낸 것이 무엇보다 돋보였습니다.

▲ 아시안게임 정구 혼합복식 지용민.김경련 정구 금메달 ⓒ연합뉴스
올림픽 종목임에도 국제 수준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한 승마, 근대 5종의 선전도 눈에 띄었습니다. 승마에서는 막내 황영식이 2관왕에 올랐고, 효자 종목으로의 발전가능성을 서서히 넘보고 있는 근대 5종에서는 남자 단체전 금메달 뿐 아니라 여자 단체전에서도 기대하지 않았던 은메달이 나와 선전했습니다. 다양한 종목을 소화해야 하는 근대 5종에서 모든 선수들이 메달을 목에 걸었고, 승마 역시 새로운 기대주로 꼽힌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서 많은 희망을 찾을 수 있었던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이었습니다.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값진 메달을 따낸 선수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국제 대회에서 처음 메달을 획득한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동메달리스트 장윤정과 아시안게임 사상 첫 메달을 따낸 리듬체조 손연재 등이 해당 종목에서 큰 족적을 남기며 이번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또 1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연습과 훈련을 해온 드래곤보트 팀은 배 아래 따개비가 붙어 제대로 배를 몰지 못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첫 동메달을 따내는 기적을 보여줬습니다.

그밖에도 중국의 텃세 속에서 은메달 7개, 동메달 3개를 획득한 댄스 스포츠, 대진 불운으로 준결승에서 일본에 져 또다시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동메달 획득에 성공하며 연속 메달 행진을 이어간 남자 럭비, 동남아시아에서 하는 스포츠라 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대등한 실력을 겨루며 선전한 남녀 세팍타크로, 일본, 중국 전통 스포츠라는 이유로 홀대받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어느 정도 한풀이를 한 우슈, 공수도, 초등학생 선수로서 많이 긴장했을 텐데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 체스 국가대표 선수들까지 모든 종목 선수들 한명한명이 우리 국가대표였고, 저마다 좋은 활약으로 이번 대회를 밝게 빛냈습니다.

그 가운데서 메달 획득에 연연하지 않고 단 1승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한 여자 럭비팀이 선사한 감동은 참 값지고 눈부셨습니다. 지난해 6월 대한럭비협회의 선발전을 통해 '급조'된 여자 럭비대표팀이 출범한 가운데 단 5개월 동안 힘든 훈련을 소화한 선수들은 1승을 위해 달리고 또 달렸지만 결국 전패로 대회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싱가포르와의 5-8위 결정전에서 첫 득점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이번 대회에서 15득점 239실점을 기록하며 패배의 아픔보다는 내일의 희망을 안고 활기차게 도전을 마쳤습니다. 마치 서울대 야구부의 눈물겨운 1승 도전이 떠오를 만큼 여자 럭비의 감동적인 투혼과 열정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만큼 돋보이는 면이 많았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관심을 받았다고 하지만 또다시 이들의 활약상, 감동적인 투혼이 순식간에 묻힐 가능성은 큽니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서 묵묵하게 도전을 이어가는 이 선수들의 활약상이 묻히는 것은 참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습니다. 보다 많은 선수들이 많은 지원과 관심 속에서 더 이름을 알리고,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서 대한민국 스포츠가 더 많은 종목에서 경쟁력을 보여주고 많은 선수들의 희망을 살리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저마다 사연을 안고 운동으로 새로운 희망, 꿈을 키우며 마침내 아시아 종합 대회에까지 이름을 떨칠 기회를 얻으며 마음껏 기량을 발휘한 모든 대한민국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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