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뭘까? 내가 눈이 높아진 걸까, 아니면 대학가요제 수준이 낮아진 걸까? 늦은 시간 그래도 오랜만에 인내를 가지고 지켜본 대학가요제가 안겨준 감정은 실망, 그리고 당혹스러움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아마 EX의 잘부탁드립니다가 마지막 히트상품이었던 것 같군요.)별다른 화제를 만들지도, 특별한 인재를 발굴하지도 못하고 조용히 끝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어쩌면 하고 새로운 스타와 재능이 발견될까, 예전의 명성에 기대어 보게 되지만 돌아오는 것은 올해와 같은 역시나 하는 허탈함과 안타까움뿐이에요. 아니. 올해는 그 실망이 더 심하군요.

MBC로서는 이전보다 엄청난 지원과 관심을 기울였던 대회입니다. 소속 방송사인 MBC Everyone에서 케이블 프로그램을 따로 마련해서 그들의 선별과정부터 개개인에 대한 세세한 소개까지 세심하게 전달했고, 출전을 앞두고 유명 음악인들의 멘토를 받으며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도 공개했습니다. 특별히 비스트와 연계해서 새로운 자작곡의 로고송을 만드는 성의를 보여주었죠. 잘나가는 가수들로 꾸며진 대대적인 축하공연이나 화려한 무대 역시도 대학가요제를 향한 MBC의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모로 올해 대학가요제는 슈퍼스타K 시즌2의 성공을 상당히 의식한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대회였어요.

하지만 정작 대회에 참가한 이들의 수준과 그들의 음악은 그냥 안타까운, 유치하거나 너무 뻔해서 참가자들의 추억 만들기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습니다. 다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식상한 멜로디, 완성도가 떨어지는 유치한 가사들, 안타까운 가창력과 안무, 어설픔을 공통점으로 하는 밋밋한 노래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가요계의 풍토도, 가수나 뮤지션이 만들어지는 배경도 지금과는 다른, 대학가요제가 잘나가던 시절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대회에 나온 이들에게서 어떤 패기나 신선함, 새로움은 전혀 발견되지 못했어요.

확실히 가수를 지망하는 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유명 기획사의 오디션을 지원하며 자신의 재능을 계발합니다. 혹은 인디계에서 밑바닥부터 고생하거나 각종 행사를 전전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추구하며 좁지만 가치 있는 길을 걸어가고 있죠. 일찍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개발하고, 전문적인 음악적 재능의 조기 계발이 당연하게 되어 버린 요즘 학업과 가수의 길을 병행하는 것, 혹은 뒤늦게 음악의 길에 몸을 담다가 대학가요제를 통해 성공을 이루는 늦깎이 신데렐라 같은 성공담은 확실히 지금의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럼 대학생들의 실력이나 재능이 그동안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슈퍼스타K의 성공이 증명한 것처럼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그동안 조명받지 못하고 발굴되지 못했을 뿐이지 가수의 꿈을 꾸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고 그들은 모두 어떻게든 기회를 부여받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을 통해 주목받았던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학가요제의 참가 범주에 들어가는 이들도 적지 않아요. 하지만 이들은 대학가요제가 아닌 슈퍼스타K의 문을 두드렸어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왜 이들이 대학가요제가 아닌 다른 길을 선호하는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죠.

대학가요제는 몹시나 제한이 많은 까다로운 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곡, 작사까지 모두 순수 창작곡이어야만 하고, 대학생이라는 특정한 신분을 참가 자격으로 못박고 있죠. 가수로서의 재능과 함께 적합한 곡을 스스로 만드는 능력 역시나 갖추고 있어야 하고, 특정한 시기, 신분의 테두리 내에서만 머물러 폭넓은 재능의 발견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그냥 잠깐의 화제에만 오를 뿐 대회에서의 수상이 가수로서의 길을 확실히 보장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제한이 대학가요제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젊음과 청춘의 열정과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그런 기대는 이젠 옛날 말이 되어 버렸어요. 대학생들이 그동안 갑자기 음악 바보가 되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대학가요제는 이제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기엔 매력도 부족하고, 기준도 어울리지 않고, 방식도 적합하지 못해요.

그러니 이젠 그냥 대학생들끼리의 소소한 장기자랑이 되어버린 대학가요제에 지금의 거창한 무대와 화려한 포장은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밖에요. 참가자들과는 정반대의 성공경로를 통해 데뷔한 아이돌들의 무대가 대학가요제에 어울릴 리가 없죠. 마치 일반인을 대상으로 새로운 스타를 뽑는다면서 아이돌들의 공연으로 범벅을 해버린 위대한 탄생처럼 말이죠. 심정에 닿지 않은 예전 대학가요제 곡들을 어색하게 부르는 아이돌들의 무대보다 차라리 대학가요제 시절의 감성을 간직한 이적과 홍대에서 출발한 슈프림팀의 합동공연이 훨씬 더 강렬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겁니다. 대학가요제는 확실히 무언가의 단절, 결핍, 상실로 인해 그 생명력과 활기를 잃어버렸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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