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틀 만에 정상적인 경기를 펼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 가운데서도 그들은 프로였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기어이 좋은 경기를 펼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축구사에 손꼽을 만한 명장면을 만들어내며 '유종의 미'를 거뒀습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이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3-4위전에서 이란과 맞붙어 후반 32분까지 1-3으로 끌려가다 박주영의 골을 시작으로 추격의 고삐를 잡아당긴 끝에 지동원의 연속 헤딩 2골에 힘입어 4-3 대역전승을 거두고 3위에 올랐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이틀 전 아랍에미리트(UAE)와의 준결승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을 내주고 패한 아픔을 딛고 한국 축구의 힘을 보여주며 아름다운 마무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줬습니다.

▲ 역전골 순간 ⓒ연합뉴스
사실 정말 힘든 싸움이었습니다. 이틀 전 패배에 대한 충격 탓에 선수들이 과연 제대로 경기를 펼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 상대가 아시안게임에서만큼은 유독 약했던 이란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심판이 중동(이라크) 심판이어서 이란에 유리한 판정을 내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이 같은 걱정들은 모두 사실로 나타났고, 경기 내내 한국 선수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과 맞닥뜨리면서 악전고투를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연달아 3골을 내주고 무너지며 '또다시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하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수들은 전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패기에다 포기하지 않는 투혼 정신을 제대로 발휘하면서 후반 막판 초인적인 힘을 내고 따라붙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다 끝났다'라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선수들은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끈질기고 악착같은 플레이가 나타나면서 기적을 보여줬습니다. 박주영의 화끈한 골을 시작으로 자신감을 찾은 홍명보호는 마침내 후반 42분과 43분 지동원의 연속 헤딩골로 패배의 위기에서 완전하게 벗어나며 역전에 성공했고, 너도 나도 얼싸안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던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값진 동메달을 따내며 자랑스럽게 시상대에 올라섰습니다.

경기를 이긴 것도 이긴 것이지만 이번 경기 승리가 참 높게 평가받는 것은 그동안 많이 찾아볼 수 없었던 한국 축구 특유의 간절함, 투혼 정신이 모처럼 제대로 나타났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최근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그랬고 패색이 짙으면 쉽게 포기하고 마는 특성이 있었던 터라 "예전보다 대표팀 경기가 재미없어졌다"라는 평들을 많이 받았던 한국 축구였습니다만 오랜만에 승리에 대한 간절함을 진심으로 느꼈을 만큼 빼어난 플레이를 보여주고 승리까지 챙기면서 축구팬들을 모처럼 신나게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시안게임 3위가 대외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성적일 수 있어도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 두 번 다시 중동팀에 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를 펼치고 승리를 거둔 것 자체가 상당히 가치 있고 의미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극복하기 힘든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프로답게 잘 극복해내고 승리를 챙긴 것도 의미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개인의 축구 선수 생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번 대회였기에 준결승전 패배에 대한 충격이 상당히 오래 가고, 이로 인한 후유증이 상당할 것이라는 예상은 외부에서 보는 사람이나 내부 코칭스태프에서도 느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부적인 어려움에다 이란의 짜증나는 침대 축구, 중동 심판의 황당한 판정 등 외부적인 어려움까지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에서 경기를 펼쳤고, 경기는 후반 15분 정도를 남겨놓고 1-3으로 지고 있는 상황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의 포기하지 않는 정신은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지녔고, 모든 악조건을 극복해내면서 역전승의 거두는 힘이 됐습니다. 선수들 중 상당수가 프로 무대에서 이미 뛰고 있으면서 지도자나 선배들로부터 배우고 잠재적으로 갖고 있던 그 힘을 한꺼번에 발산해 내며 기적과 같은 경기를 펼친 것은 많은 사람들에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습니다.

▲ 남자축구 값진 동메달 ⓒ연합뉴스
사실 홍명보호에 이번 아시안게임은 거의 첫 번째 실패나 다름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2009년에 출범해서 몇 차례 패배가 있기는 했어도 목표 의식을 갖고 치른 대회에서는 U-20 월드컵 당시 8강 목표를 이룬 경력이 있었던 만큼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 이번 아시안게임이 '가혹한 첫 좌절'로 받아들여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좌절을 새로운 희망으로 빠른 시간 내에 바꾸면서 '유종의 미'를 거둔 것은 이들이 새로운 능력과 상당한 잠재력을 보여주고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 축구를 다시 보게 할 정도로 참 좋은 경기를 펼치고 이번 대회를 마무리한 셈이 됐습니다.

선수들에게도 저마다 잠재력을 갖고 무럭무럭 성장하는 시점에서 정말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 그리고 추억을 안고 이번 대회를 마치게 돼서 의미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월드컵 2회 출전, 유럽 무대에서 뛰고 있는 박주영조차도 경기를 마치고 이례적으로 눈물을 흘리며 홍명보 감독과 부둥켜안고, 인터뷰에서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번 대회를 통해 알았다"는 걸 보면 선수들의 느낌이 어느 정도인 지 짐작이 갈 겁니다.

아무튼 홍명보호는 아쉬움 속에서도 값진 여러 가지 의미를 얻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마쳤습니다. '한국 축구의 미래'라고 불릴 만큼 그야말로 최고의 기대주들이 대거 동원된 이번 대회에서 원하는 성적에 미치지 못한 대신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얻고 대회를 마무리했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이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가는 가운데 정말 값어치 있는 경험을 '득템'한 홍명보호가 더 큰 꿈과 포부를 안고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많은 축구팬들은 기대하고 주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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