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태안 기름유출 사고현장에서 복구활동을 했던 자원봉사자 120만 명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밀기로 했다.”

오늘자(18일) 중앙일보 사회면에 보도된 내용이다. 행자부의 설명은 이렇다. “국내외 자원봉사자들이 인종과 국적을 초월해 한마음으로 복구활동에 참여하면서 절망이 기적으로 바뀌었고, 자원봉사자들의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을 전 세계 시민과 공유하자는 취지다.”

태안 주민들에게 시급한 것은 생계자금 지원이다

▲ 중앙일보 1월18일자 10면.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행자부,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다. 현재 태안 주민들에게 시급한 것은 자원봉사의 손길보다는 생활고를 덜어줄 수 있는 긴급 생계자금 지원과 같은 현실적인 방안들이다. 자원봉사자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하는 ‘따위’의 언론플레이를 할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 태안의 상황을 한번 살펴보자. 많은 언론이 보도한 대로 전국적으로 자원봉사의 물결이 넘치고 있기 때문에 태안 주민들이 행복해 하고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미 태안 주민 2명이 기름 유출 피해에 따른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데 이어 바다 생물의 집단 폐사 등 2차 피해가 현실화되면서 이 지역 어민들이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는 등 태안 민심이 악화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사고 발생 이후 태안 주민들에게 보상비 지급이 안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자(18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긴급 구호기금과 국민성금을 합쳐 총 590억원이 걷혔는데도 돈이 풀리지 않는 것은, 해양수산부가 ‘지원금을 지급하면 국제기구의 보상 규모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해양수산부의 이 같은 해명은 17일 “정부 위로금과 보상액은 관계가 없다”는 윌럼 오스터빈 국제유류오염보상기구(IOPC) 사무국장의 발언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노벨상에도 없는 ‘노벨환경상’을 추천해서 뭘 어쩌자는 얘기일까

▲ 한국일보 1월18일자 12면.
태안 주민들에게 구호기금과 성금을 배분할 태안군 역시 우왕좌왕하기는 마찬가지다. 분배 기준과 방식을 정하지 못해 아직까지 구체적인 지급방식을 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 정부 역시 지방자치단체에만 맡겨놓은 채 사실상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행자부의 노벨상 추천을 한심하다고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지 주민들이 기름 유출 피해에 따른 생계난과 불안 등을 이기지 못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데도 행자부는 ‘한가하게’ 노벨상 추천 운운하고 있는 현실. 더 한심한 것은 행자부가 추진하는 노벨상 분야에 환경 부문은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을 나중에 인지한 행자부는 ‘보도자료에서 과장된 표현을 사용했다’며 뒤늦게 사태수습에 나서는 해프닝까지 연출했다. 참고로 노벨상은 생리의학 물리학 화학 문학 경제학 평화상 등 6개 부문으로만 구성된다.

태안 주민들이 18일 2만명 정도가 참가하는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지 않을까.

정부와 삼성중공업 측에 더 이상의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하는 것 역시 이 같은 점을 고려해서다. 하지만 정부와 삼성은 여전히 보상금 지급이라는 핵심 문제 앞에서는 상당히 미온적이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와 삼성에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해야 할 언론 역시 ‘자원봉사자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

언론에게 당부한다. 잠시 자원봉사에 대한 ‘찬사’는 접자. 태안의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서 현지 주민들의 ‘삶과 생존’의 문제를 걱정하는 쪽으로 보도 방향을 전환하자. 그것이 태안을 살리는 길이고, 그것이 태안 주민을 진정으로 돕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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