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 축구의 나라라는 건 이른바 '축알못'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 스페인에서 한국인들로만 구성된 '외인구단'이 승승장구하고 있다면? 이 믿을 수 없는 일을 실제 이루어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스페인 7부 리그 소속인 ‘꿈 fc’가 그 주인공이다. 이 신기한 스페인의 외인구단을 이영표 선수가 소개한다.

7부 리그? 공식적으로 3부 리그까지 운영되는 한국 축구가 인프라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7부 리그라니. 하지만 축구 선수만 80만 명, 우리나라의 40배인 스페인은 7부 리그까지 지역 주민의 호응을 받으며 활성화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축구하면 유명한 지역이 카스티야 라만차, 그곳의 작은 도시 이에스까스의 7부 리그 팀 ‘꿈 fc’는 현재 7부 리그 1위를 질주 중이다.

꿈을 찾아 스페인으로 온 한국인들

MBC 스페셜 ‘다시 꿈은 이뤄진다 -스페인 외인구단 꿈 fc’ 편

그런데 이 이에스까스 Qum(꿈) fc의 선수 구성이 19명 전원 한국인이다. 감독과 코치진만 스페인인이다. 선수들이 연습을 하고 있는 운동장, 페드로 벨라스코 감독은 말한다. 선수들의 강점이 한국어, 상대가 못 알아들으니 시합 도중 얼마든지 서로 소통하라고. 이렇듯 전원 한국인인 이들은 '축구를 하고 싶다'는 꿈 하나를 따라 만리타국 스페인까지 왔다.

2017년 여름 올라온 SNS 공지, '꿈을 이루고 싶은 분, 다시 도전하고 싶은 분'이란 문구 하나로 모여든 선수들. 구혁균 선수는 치킨 집 주방에서 닭을 튀기다 왔다. 고현철 선수는 브라질 유소년 리그 출신이다. 21살 원승현은 신부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과 꿈 fc란 선택의 기로에 놓였었다. 26살의 구성은은 축구를 좋아했지만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이 없다. 25살 허준호는 프로로 활동했지만 경기에 나서본 적이 없다. 한국이라면 애초에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을 법한 사람들.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거미줄을 뚫기 힘든 이들이 자신의 꿈을 인정해준 이역만리 스페인 이에스까스로 날아와 뛰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무모한 도전을 벌인 사람은 누굴까? 선수들이 운동하는 곳 한편의 작은 방, 태극기가 덩그러니 달린 그곳에 작은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이는 46살의 김대호 씨. 그는 폭발물 전문가로 한때 토목 현장을 누볐던 사람이다. 축구라고는 남들 다 그렇듯이 국가 대표 경기나 보던, 알고 있는 축구 상식이라 봐야 '오프사이드' 정도였던 그가 이 구단을 이끄는 구단주이다.

스페인 유소년 1부 리그에서 활약 중인 아들. 스페인에는 18세 이하 미성년의 경우 스페인의 체류 시 부모 중 한 사람이 케어를 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회계사인 아내 대신 아들을 케어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온 김대호 씨는, 자신의 아들처럼 한국의 젊은이들이 부푼 꿈을 안고 스페인에 왔지만 낯선 이국땅에서의 적응 문제로 자신의 꿈을 접게 되는 사례를 빈번하게 접하게 된다.

같은 한국인들끼리 어울려 지내면 적응이 좀 더 쉽지 않을까라고 해법을 떠올리게 된 김대오씨. 딸의 평가처럼 대책 없이 긍정적이고 무모했던 그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낯선 스페인 땅에 한국인 외인 구단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의 노후 자금은 이제 선수들의 용돈과 숙식비, 훈련비가 되고 있는 중이다.

전설의 시작

MBC 스페셜 ‘다시 꿈은 이뤄진다 -스페인 외인구단 꿈 fc’ 편

'공정한 기회, 정직한 결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꿈fc는 축구에 대한 열정만으로 똘똘 뭉친, 하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던 한국의 19명 젊은이들을 이곳으로 불러왔고 함께 합숙하며 지금 그들에게는 가장 높은 봉우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얼차려 등 군기잡기에 익숙했던 선수들, 납조끼를 입고 새벽부터 구보를 했던 선수들, 중앙 수비수로 칭찬보다는 욕먹는 게 일상이었던 선수들, 잔부상에 시달리다 결국 큰 부상으로 선수 생활에 위기를 맞았던 선수들. 이들은 스페인 1급 지도자 자격증을 가진, '축구는 선수들의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선수들이 훈련에만 집중하도록 해주는 감독과 코치진의, 한국과는 다른 '케어'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갔다.

그저 운동만 하는 게 아니다. 스페인 어학원도 빠질 수 없는 이들의 일과다. 스페인 유소년 아이들을 만나 그들이 축구를 매개로 꿈을 이루는 방식에 대해 접하기도 한다. '축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끝이 아니다. 맘껏 드리블하라. 공을 빼앗기면 다시 뺏으면 된다. 한 골을 먹으면 한 골을 넣으면 된다'는, 축구란 꿈을 찾아온 이들에게 역설적으로 축구만을 바라보는 꿈은 위험하다며 인생에는 사랑도 가족도 여러 가지 다른 꿈이 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그런 새로운 사고방식들이 그간 이들을 짓눌렀던 축구, 혹은 꿈에 대한 강압적 의식을 해제하자 이들은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MBC 스페셜 ‘다시 꿈은 이뤄진다 -스페인 외인구단 꿈 fc’ 편

나날이 승승장구, 7부 리그 기간 마지막 경기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말 그대로 스페인의 ‘공포의 외인 구단’이다. 아직도 인조잔디 구장용 축구화가 따로 없어 가혹하게 실격을 당하지만 원정 경기의 일방적 홈팀 응원이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위축시키지 않는다. 그 결과 7부 리그 1, 2위를 다투고 6부 리그 승격을 결정지었다. 4부 리그의 팀들이 '스카웃'할 인재를 물색하는 팀. 이제는 이에스까스 사람 누구나 알아보고 격려해주는 팀. 예의 바르다며 선수도 동네 사람들도 칭찬해 주는 팀. 자칭 '국뽕' 김대호 구단주의 말처럼 이곳 스페인의 한국 대표팀인 이들은 현재 승승장구 중이다. 4부 리그까지 참여할 수 있는 스페인 국왕 컵 참가란 팀의 목표가 어쩌면 멀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역만리 스페인에서 19명 선수들이 일궈내고 있는 기적들,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왜 젊은이들의 꿈이 여의치 않은가를 점검해 주는 시간이 된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돈과 학벌과 지연과 인맥이 없으면 무엇인가를 시도해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 '공정한 기회, 정직한 결과'라는 저 단순한 문구가 왜 한국이 아니라 스페인 작은 도시에서 가능한 것인가를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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