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 동이의 어정쩡한 종영 이후 월화 드라마의 압도적인 강자 자리를 차지한 자이언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반공의 박정희를 거쳐 정의사회구현을 말하던 전두환 시대까지의 어두웠던 군사정권시대를 그리는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이른바 주류를 형성한 이들이 저질렀던 과오와 어두운 면에 묘한 정당화와 변명거리들을 던져주는 의도가 명백하게 보이기 때문이죠. 때로는 뻔뻔하게, 때로는 짐짓 모르는 척하며 그들의 삶을 미화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한숨밖에는 나오질 않아요.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나쁜 짓의 상징인, 암울했던 시대를 타고 권력에 편승해서 정치와 경제를 주름잡은 독재시대 천하의 악당 조필연을 향한 손가락질과 질타가 끊이질 않고, 그런 악에 대한 복수가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조필연을 제거하라는 것이 곧 정의이고 선인 것만 같고, 세 남매의 복수극이 곧바로 민주화와 정의 구현이라는 착각이 머리를 지배합니다. 하지만 과연 정말로 조필연만 나쁜 사람이었을까요? 복수를 꾀하는 이들, 조필연과 척을 두고 있는 이들의 행동들도 모두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이들 역시도 결국 대동소이한 수단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보조작, 정권과의 유착, 고문, 밀실합의, 협박과 폭력동원 등등. 선의 편이건 악의 무리이건 이 드라마 속 사람들이 동원하는 수단들이란 대동소이합니다. 누가 속고 속이느냐에 따라 전세가 뒤집히고, 그에 따른 또 다른 반격을 준비하는 음모와 술수의 대결. 결국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다들 목적이 다를 뿐이고 결국은 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막바지에 와서 이강모쪽 사람들의 행위에 서서히 정당성과 공정한 경쟁이란 수단을 안겨주고, 심지어 민주화의 투사로까지 변해 있지만 그동안 그들 역시도 복수를 위해 저질렀던 수많은 위법 행위와 범죄를 저질러왔음을 정당화하지는 못해요.

그냥 그때는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그 시대에는 다들 그렇게 살아 왔다는 친일파들이 반복하는 면죄부를 다시 한번 이 드라마에서 발견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악역 조필연을 꺾고 살아남은 이들은 마찬가지로 어두웠던 자신의 과거를 포장하면서 어떤 이는 굴지 기업의 회장님으로, 국가를 이끄는 정치인으로, 연예계를 주름잡는 대모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지금 한국 사회의 슬픈 단면이거든요. 자이언트가 시작될 때부터 걱정되었던, 이런 식의 주류들에 대한 묘한 편들기가 결국은 은근슬쩍 현실화되고, 그러면서도 시청자들의 수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 못내 꺼림칙합니다.

그런데 이런 꺼림칙함에도 무언가 통쾌한, 의외의, 재미난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드라마 인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매번 상황이 뒤바뀌는 음모극의 아슬아슬함, 시대에 의해 갈라지고 고통 받는 남녀들의 애처로운 사랑이야기 같은 소소한 소재거리들 말고도 묘한 비꼼, 혹은 비판을 담은 장면들을 가끔 발견하는 재미가 있거든요. 자신의 정적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 놓고도 태연하게 장례식에 참여하는 조필연의 뻔뻔한 모습이 바로 그것이죠.

굳이 누구의,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고인의 죽음에 울분에 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참석하고 그들의 원망과 분노의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조문을 하는 조필연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와 유사한 장면이 겹쳐 보이거든요. 그들 중 누군가가 조필연을 향해 고함이라도 지르며 달려 나가지 않을까 하며 재미나게 기다렸지만(그래서 어쩌면 조필연에게 고인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며 고소당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기다리기도 했어요 ㅎㅎ;) 그런 후련한 돌발행동은 너무 노골적으로 전달될까봐 제작진이 자제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어쩌면 자이언트라는 이 드라마가 현재 잘나가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놀리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이나 재해석을 하게 해준 짧은 장면이었습니다. 그만큼 좀 놀라운 화면 구성이기도 했구요. 너네가 아무리 떵떵거리며 위세를 부린다고 해도, 지금은 잘나간다며, 옛날일은 다 지난 것들이라는 고해성사를 한다고 해도 그들이 저지른 잘못과 과오들을 우린 다 기억하고 있다는 기록의 일부라고나 할까요? 그냥 드라마도 드라마로 즐기기 힘든, 너무나 유사해서 불쾌한, 혹은 그렇기에 통쾌하게 만드는 지금의 세상 돌아가는 꼴이 문제겠죠.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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