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 1950년 6.25, 1980년 5.18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 역사들이다. 하지만 2019년에 이른 우리는 여전히 저 사건들에서 놓여나지 못한 채 '과거사 해결'의 숙제를 안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역사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지만 해석 이전에, 그 해석에 따른 해결과 단죄 이전에 상식적인 반성과 결자해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짐을 안고 있는 전직 대통령은, 고령의 나이와 알츠하이머란 병명을 핑계로 여전히 과거를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그뿐인가. 우리 현대사를 이끌었던 주역들 중 상당수는 자신들의 떳떳하지 못한 과거사에 대해 저 전직 대통령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갖은 핑계로 자신의 과거를 합리화하거나, 심지어 몽니를 부리며 오리발을 내밀거나 배짱을 부린다.

그런 선대의 부도덕하고 비겁한 태도들은 줄곧 우리 사회가 과거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었고, 우리를 과거에 묶어 두고 있다. 바로 그런 선대들에게 보여주고픈 영화가 있다. 90살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굽은 등과 휘청휘청한 걸음걸이로, 하지만 강단 있게 보여준, 그가 살아온 삶에 대한 단호한 마침표 <라스트 미션>이다.

87세 노인의 라스트 미션

영화 <라스트 미션> 스틸 이미지

나이 87세, 얼 스톤은 파산을 했다. 평생 집밖으로 떠돌며 말 그대로 꽃에 미쳐 살았다. 아니 꽃을 핑계로 가족 대신, 자신의 명망과 사람들의 환호에 정신이 팔려 살았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은 그가 무시했던 인터넷 거래를 융성하게 했고, 더 이상 그의 농장은 건재할 수 없었다. 압류된 농장에서 자신의 물건을 오래된 트럭에 싣고 이제야 가족들을 찾아 나선 얼. 하지만 그가 찾아간 그날이 손녀의 약혼식 날이었다는 것조차 그는 몰랐다.

얼은 평생을 가족에게 그렇게 살았다. 딸의 결혼식도, 가족에게 닥친 경제적인 어려움도 그는 알지 못했다. 그에겐 그보다 더 그를 미혹시키는 일들이 있었으니까. 뒤늦게 짐을 싣고 돌아온 그를 아내와 딸은 외면한다.

추레하게 뒤돌아서는 그에게 다가선 남자, 그는 평생 신호위반 딱지 한번 받은 적 없다는 얼에게 기묘한 제안을 한다. 바로 운전만 하면 된다는 것. 오갈 곳조차 없던 그에게 ‘단 한 번’이었던 제안은, 곧 그가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되찾게 해줄지도 모를 마법사 지니와 같은 것이 된다. 그만큼이나 오래된 트럭은 곧 최신 사양의 트럭이 되었고, 그의 트럭 트렁크는 익숙하게 물건(?)을 실어 나르기 시작한다.

영화 <라스트 미션> 스틸 이미지

그가 잠시 차를 비운 사이 놓인 두툼한 봉투로, 그는 화재로 전소한 재향군인회를 복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파티를 열고, 손녀딸의 미용학원 비용을 대는 등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복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87세 평생 동안 그랬듯, 여자와 술과 파티와 사람들로 다시 그의 삶을 북적이게 만든다. 그에게 물건을 배달하도록 만들었던 마약 거래상 우두머리의 파티도 그중 하나다. 처음엔 총을 들이밀고 윽박지르던 마약 카르텔 조직원, 그리고 그가 다시 살려낸 재향군인회 동료들, 그리고 그가 만난 여자들까지 얼을 다시 반긴다.

그러던 그에게 위기가 닥쳐온다. 노익장의 마약 배달꾼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여 종종 그가 벌이는 일탈조차 저들의 눈을 피하기에 외려 적절한 파열음이라 생각했던 마약 조직의 보스가 처단된 것.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그룹은 얼에게 오직 복종과 규율을 강요한다. 그런 위기의 순간 울린 전화, 평생 그로 인해 마음고생을 했던 아내,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에게 다시 마음을 열 것도 같던 아내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예정된 마약 배달이냐 가족이냐의 기로에서 그는 지금처럼 그래왔듯 '지금은 일이 있어서 안 된다'는 말을 전하고, 그 말에 유일하게 그의 편이었던 손녀딸마저 가슴에 담아왔던 말을 퍼붓는다. 하지만 조금 후 가족 앞에 나타난 얼, 이번에는 늦지 않고 아내의 마지막 길을 챙긴다. 그 덕에 딸도 마음을 연다. 그리고 뒤늦게 돌아가 잔뜩 얻어터진 그의 배달 길은 마지막 미션이 되고 만다.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아버지

영화 <라스트 미션> 스틸 이미지

재판정에 선 얼, 나이 많은 그를 애써 변호하려던 변호사의 말을 막고 그는 'guilty'라 말한다. 체포되는 순간, 얼은 말한다. 돈으로 많은 것을 되돌리려 했지만 시간만은 그럴 수 없었다고. 흡사 이 장면은 스티브 맥퀸의 명작 <빠삐용>을 연상케 한다. 이유도 없이 수용소에 갇혀 자유를 향해 수도 없이 탈옥을 감행하던 빠삐용이 영화 엔딩에서야 알게 된 죄, 바로 시간을 낭비한 죄. 그 장면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버전이랄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분한 얼은 마약 배달로 돈을 벌어 많은 것을 되돌렸다. 트럭을 사고, 농장 압류를 풀고, 아마도 재판 후 손녀딸의 말을 빌면 농장도 예전처럼 되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마약 배달 여정 중에 만난 수사관과 마약 카르텔 동료에게 충고하듯, 정작 그 자신은 인생에서 다른 선택을 하거나 가족의 소중함을 실천하지 못했다. 심지어 돈이 그의 수중에 들어와서도 그가 돌려놓으려 했던 시간 속에, 당장의 파티걸보다 가족은 여전히 먼 미래의 몫처럼 보인다. 그의 말처럼 ‘그쪽 세대’, 즉 얼의 세대 남자들이 살아왔던 방식에서 얼 역시 벗어나질 못했던 것이다.

얼이 스스로에게 내린 'guilty'는 바로 이런, 자신의 세대에 대한 판결이다. 일에 정신이 팔려 한평생 밖으로 떠돌던 아버지, 뒤늦게 그걸 부당한 방법으로 되돌려 놓으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을 달리하지 못한 채 아내의 부음 즈음에서야 가족에게 돌아간 아버지. 그 세대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얼은 뒤늦었지만 용기를 낸다. 잘못된 것이라고.

영화 <라스트 미션> 포스터

영화는 그가 돈으로 사서 복구한 농장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건 체포의 순간, 돈으로 시간을 다시 살 수 없다는 그의 회한과 일맥상통한다. 제 아무리 그 농장이 화려하다 한들 마약 배달로 산 농장이다. 그가 돈으로 재향군인회를 되살렸다 한들, 이제 그곳을 채울 동료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 돌아가 마지막을 함께한 아내는 그를 용서했다. 그렇게 뒤늦게 나타난 그였지만, 아내와 딸의 소망은 그렇게 돌아온 아버지마저 용서할 만큼 소박했다. 하지만 그는 그 소박한 가족의 꿈을 평생 외면했다.

90세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등이 굽고 걸음걸이마저 휘청휘청한 노인이 되어 말하고자 한 <라스트 미션>은 마약 배달을 해서라도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려 했던 노력이었을까? 아니 그보다는 마지막 재판정에서 단호하게 말했던 'guilty'가 아니었을까. 노익장의 감독이 말한 건 자신의 세대가 살아왔던 방식에 대한 단정이자 속죄이다. 부도덕한 방식으로라도 되돌릴 수 없었던 흘러버린 시간에 대한 반성이다.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가 동상을 만들려 노력한 대신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처럼 기꺼이 자기 세대의 삶에 대해 통한의 반성을 했다면, 오늘의 우리 역사도 조금은 편안해지지 않았을까.

기꺼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들어간 감옥, 그는 거기서 편안하게 웃으며 꽃을 가꾼다. 마치 얼이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꽃은 어디든 핀다. 농장이든 감옥 안이든 어디든 무엇이 중요하랴. 한평생 꽃을 좋아했던 내가 꽃을 가꿀 수 있으면 된 거지’. 마치 우리 식으로 말하면 '무엇이 중한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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