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대한 열기가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서 K-리그에서는 성남 일화가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6강 플레이오프 챔피언십이 2경기 치러져 전북 현대, 성남 일화가 각각 경남 FC, 울산 현대를 꺾고 역전 우승을 향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리그 우승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K-리그에 대한 열기도 점차 뜨거워지고 있고,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에는 더욱 무르익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팀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성남 일화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경남 FC가 과연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낼지 관심이 많았습니다. 지난 4월, 구단 최초로 리그 선두에 올라섰고 한동안 이 자리를 오래 유지했던 만큼 과연 얼마나 저력 있는 팀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올라갈 수 있을지 관심을 가져봤습니다. 시-도민 구단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른 면 역시 남다른 기대감을 갖게 한 요소가 됐습니다.

하지만 경남은 아시안게임 대표로 차출된 에이스 윤빛가람, 김주영의 공백을 실감하면서 결국 전북에 0-2로 완패하고 또 다시 4강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지난 2007년 박항서 감독 체제에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도 4강에 오르지 못했기에 이번 시즌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컸지만 아쉽게 또다시 문턱을 넘지 못하며 고개를 떨궈야 했습니다.

비록 경남의 도전이 또다시 6강에서 멈춰서야 했습니다만 올 시즌 보여준 저력은 충분히 인상에 남았습니다. 변변한 스타 선수 없이도 똘똘 뭉친 조직력과 창의적인 축구로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경남은 오늘보다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저력을 보여주면서 올 시즌을 의미 있게 마쳤습니다.

▲ 경남 FC
사실 경남은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른 것조차도 참 신기할 만큼 많은 약점들이 있었고, 악재들이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병지를 제외하고는 이전까지 국가대표 경력을 가진 선수들이 없었고, 대부분 프로 경험들이 적은 선수들로 구성돼 전력이 처진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대부분이 조광래 감독이 부임한 뒤 키워진 젊은 선수들로 '조광래 유치원생'이라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는데 이 선수들로 뭔가를 이룰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그 때문에 중하위권에 맴돌 것이라는 예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목표가 우승'이라고 했을 때 다수의 사람들은 코웃음까지 쳤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사정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무명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낸 조광래 감독의 지도력은 시즌 초반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해 결코 지지 않는 팀이 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선수들은 매 경기마다 자신감 넘치고, 단순하게 이기는 것보다 창의적이고 화끈한 공격 축구로 중무장해서 경남 FC를 '축구 잘 하는 팀'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덕에 경남은 '돌풍의 팀'으로 바뀌었고, 4월말 마침내 K-리그 1위까지 오르는 쾌거를 이루면서 '공포의 팀'으로 올라섰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대의 반란이었고, 경남 축구는 그야말로 싱글벙글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거칠 것 없는 경남 축구에 대한 사람들의 주목도 높아졌습니다.

생각보다 선전이 오래 가자 경남이 정말로 우승할 것이라는 예상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 경남 입장에서는 상당한 타격이 가해지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바로 조광래 감독이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내정된 것입니다. 한국 축구 입장에서는 젊은 선수를 키우고 창의적인 축구를 구사할 줄 아는 조광래 감독의 내정을 반겼지만 경남은 그동안 팀을 이끌며 승승장구를 하던 사령탑을 잃게 된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는 조 감독의 국가대표 감독 내정 당일 그대로 나타났고, 전남과의 FA컵 경기에서 4-7로 대패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한동안 어수선한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고 그에 따라 순위도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령탑의 중도 교체가 악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3년 만에 6강 진출, 그리고 우승도 바라볼 수 있었던 상황에서 곤두박질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경남은 김귀화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올리고 분위기를 추스르는 데 힘썼고 선수들 역시 다시 힘을 내기 시작하면서 시즌 내내 3-5위권을 유지하는 성적을 냈습니다. 시즌 초반에 보여줬던 화끈한 맛은 다소 떨어졌다 할지라도 결코 지지 않으려는 의지, 그리고 주축 선수들의 꾸준한 경기력은 내내 이어졌고 결국 6위로 3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또다시 경남 입장에서 악재가 터졌습니다. 사실상 전력의 핵과 다름없는 윤빛가람, 김주영이 동시에 차출된 것입니다. 당초 김주영만 차출되기로 했지만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뛰고 있던 기성용의 차출이 불가되면서 대체 자원으로 윤빛가람이 낙점됐고, 선수의 미래를 위해 경남은 두 선수 모두를 내줘야 했습니다. 이들의 공백을 잘 대처하기 위해 팀 내부적으로 다양한 노력을 펼쳤지만 결국 공백을 완전하게 메우는 데는 실패했고 목표했던 우승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습니다.

국가대표팀과 연관된 일련의 일들이 결국 경남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됐습니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경남은 꿋꿋하게 6강 플레이오프에 올랐고 마지막까지 자신들이 유지해온 틀을 잃지 않으려 하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감독대행 체제로 바뀐 이후 다시 추스르고는 본래의 스타일을 유지하려 많은 노력을 펼쳤고, 결국 그들이 1차적으로 원했던 6강 진입에 성공했습니다. 지난해 광주 상무가 초반에 1위를 달리고도 선수들의 잇달은 부상, 악재로 추락을 거듭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경남은 우승에 버금갈 만한 성과를 내고 올 시즌을 화려하게 마무리했다고 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팀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를 일이고, 지난 2007년 이후처럼 다시 추락할 가능성도 높기는 합니다. 그러나 올 시즌 보여준 스타일 그대로 내년에 좀 더 업그레이드돼서 기세를 이어간다면 그들이 넘지 못했던 6강 벽을 넘어 우승에도 도전해볼 만한 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무명 선수들로 하나의 팀을 만들어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려 하는 경남 FC의 도전을 주목하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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