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편하고 만만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무척이나 힘들고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시도입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있었던 무한도전의 모든 도전 중에서도 가장 골머리를 앓았을 아이템일지도 모르겠네요. 1년 동안 무려 12회에 걸쳐서, 매월 그 달에 걸맞은 각기 다른 컨셉으로 달력에 들어갈 사진촬영을 진행하고 그 속에서 각 멤버별에게도 다른 역할을 부여해서 진행하는 무한도전의 2010년 달력모델 프로젝트는 제작진에게나 시청자들에게나 은근한 끈기와 집중, 그리고 창조력과 차별화을 요구하는 숙제입니다. 귀찮고, 손이 많이 가고, 엄청난 사전 준비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지만 그 성과는 큰 차이를 보기 힘든 작업이죠.

이런 어려움은 이미 볼 것은 다 본 것 같은데도 아직도 10월부터 12월의 촬영 방송분이 남아있다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미 정해진, 컨셉을 결정하고 사진 촬영을 진행한 뒤에 그 결과물을 3~4명의 심사위원이 채점한다는 기본 틀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고정된 공식 하에서 어떻게 해서든 차별성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쉽지 않은 머리굴리기가 남습니다. 매번, 매주 새롭다는 막강한 이점을 가진 무한도전에서 매번 본 것 같은 장면들이 이어진다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문제거든요. 어설픈 연극을 시도하기도 하고, 2인 1조의 팀도 구성해보고, 촬영 컷을 50회로 제한하거나 한복의 미를 살리는 등의 시도들은 이런 고민의 결과물이겠죠.

그런데 정작 계속 이어지는 달력모델 프로젝트를 보면서 저절로 눈이 가는 것은 그들이 수행하는 과제 그 자체가 아닙니다. 인상적인 시도들도 많았고 그 결과물 역시도 깜짝 놀랄 정도의 멋진 사진들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사진 모델로서의 모습이 아니란 것이죠. 오히려 제가 더더욱 재미있게 느끼는 이번 프로젝트의 포인트는 촬영에 임하는 멤버들 본연의 모습, 혹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나 프로그램에 융화되어 가는 과정의 변화입니다. 다른 글에서도 몇 차례 강조한 바가 있지만 저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핵심은 그들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것을 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은 1년간 꾸준하게 진행되는, 그리고 그 틀이 비교적 고정되어 있는 달력모델 프로젝트이기에 가능한 결과입니다. 몇 달 간의 변화를 짧은 시간에 접하고 있자면 무한도전 내에서의 구도와 영향력, 혹은 그들의 그동안의 활동을 통해 얻은 인한 성장과 차이를 확연하게 발견할 수 있거든요. 1월만 해도 무한도전의 가장 핵심적인 축이었던 박명수의 침체된 모습을 가을 촬영에서 만난다든지, 초반에는 어색하기만 했던 길과 하하가 조금씩 무한도전에 녹아들어가는 것을 확인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확연한 변화는 무도의 최강 콤비로 거듭나고 있는 유재석과 정형돈의 결합입니다. 언제나 박명수에게 고정되어 있던 1인자 유재석의 파트너 자리에 조금씩 정형돈이 끼어들면서 생기는 새로운 경우의 수이죠. 기대에 비해 느린 성장 속도를 보이다가 근래 레슬링 특집을 거치며 미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정형돈의 괄목상대가 만든, 그리고 은근히 잘 어울리는 아이디어 뱅크로서의 만남이 무한도전에 다른 색깔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박명수가 주춤하고,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하하나 길이 아직도 제짝찾기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 현재로서는 가장 안정적이고 잘 어울리는 콤비에요.

이번 달력모델 선발대회 방송분만 봐도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을 구상하기 보다는 사진작가를 비롯한 주위의 조언에 의지하거나 자기 분량이나 승부 욕심으로 전체를 둘러보지 못하는 다른 두 팀과는 달리, 유재석-정형돈 조합은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거기에 맞추어 적절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팀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개인 촬영에서도, 평가를 위한 스튜디오 녹화분에서도 맥이 끊기는 것을 방지하고 호흡을 조절해주는 연결다리 역할은 이 두 사람의 몫이죠. 성실하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두 기둥의 만남. 현재 우리 두 사람이 무한도전을 이끌고 있다는 정형돈의 당당한 발언은 허세가 아니라 사실이에요.

저는 무한도전 만의 이런 구도의 변화가 무척이나 재미있습니다. 지금은 유재석-강호동 조합이 강세이지만 언제 또 다른 사람간의 기대하지 못했던 콤비가 나올 수도 있고, 침체되어 있는 멤버가 또 어떤 도전에서 반전과 반등을 보일지 모를 일이죠. 그들만의 개성이 예전 캐릭터와 맞물리며 색다른 색깔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계속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도전하는 것은 단지 그들이 하고 있는 도전뿐만이 아니라는 것이죠. 6~7명의 멤버가 5년간의 시간동안 보여주고도 아직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 다는 것. 어쩌면 이런 식의 알콩달콩한 발전과 변화야말로 무한도전이 계속해서 사랑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기도 하구요. 한복 디자이너님의 지적처럼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무한도전의 감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 아니겠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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