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괴에 얽힌 사건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요구했습니다. 탐욕으로 점철된 권력자에 대항하는 진실과 정의를 찾고자 하는 그들이 이젠 도망자에서 더 이상은 도망자이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반격을 준비하는 그들에게 대통령 후보이자 절대 악인 양두희의 아들 양영준은 어떤 의미일까요?

작가는 왜 대통령을 희망으로 보는가?

16회에서 <도망자>는 마지막 반격을 위한 호흡 고르기에 들어갔습니다. 수없이 많은 고민과 갈등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진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정의를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라져가는 정의를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 그들은 자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금괴를 빼앗긴 도반장은 미련 없이 필리핀을 떠나 서울로 돌아옵니다. 그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서를 찾아 스스로 자수를 선택합니다. 절차를 따라 법정에 올라 양회장과 경찰 조직의 커넥션을 그대로 진술하겠다는 도반장의 이야기에 놀라 풀어주는 반장의 모습은 권력에 기생하는 중간 권력 구도의 음습한 냄새를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작가는 16회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화두들을 스스럼없이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첫 회부터 꾸준하게 거대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던 작가는 회를 거듭하며 권력의 문제를 자신의 시각에서 명료하게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형사라는 직업을 잃으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시청자에게 알린 윤형사 윤소란과 허수아비 반장인 백남정 사이의 대화에서는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합니다.

"평생 이렇게 사세요. 포기하면 할수록 행복해진데요"
"그런데요. 죽는 순간 다 생각 난데요. 그동안 포기했던 모든 것들이요. 그래서 슬프데요"
"고개 못 숙이고 사는 사람들 비웃지 마세요. 평생 아웃사이더로 살아도 죽을 때는 행복하니까요"

윤형사는 정의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철저하게 망가진 상사에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하지요. 포기하면 행복해진다는 말은 저항하지 않고 독재에 순응하면 행복하다는 말이지요.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지 못하고 권력자들이 던져준 달콤한 사탕을 입에 물고 있으면 행복한 듯하지만 죽을 때 모든 것이 생각나 슬프다는 말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지요.

잘못을 잘못이라 이야기하고 거짓과 부정에 당당하게 맞서는 것은 힘겨운 삶일 수밖에는 없지만, 결국 죽는 순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죽을 수 있다는 말은 우리에게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지우에게서 금괴를 가져와 결자해지를 위해 진이는 과감하게 경찰서로 찾아갑니다. 양두희의 끄나풀인 과장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모든 것을 걸고 마지막 승부를 하려는 진이와 이를 통해 모두를 죽이려는 양회장간의 대결은 점점 급박하게 흘러갑니다.

살인이 가장 쉽다는 킬러를 약속 장소에 잠입시키고 진이와 카이, 지우를 한꺼번에 처리하려는 그들의 전략이 그대로 성공할 거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마지막 승부인 만큼 서로에게 날카로운 칼을 겨누는 그들이 어떤 식으로 드라마틱한 결론을 이끌어 나갈지는 다음 주면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할 듯합니다.

카이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가 천인공노할 살인마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 양영준은 아버지를 만납니다. 진이를 죽이려는 양회장을 멈출 수 있게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는 아들 양영준 의원 밖에는 없음을 알고 있는 카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집권 이후의 부당거래 자료를 건네줍니다.

정치인의 허튼 소리인지 본심인지 드라마 상에서 명확하지 않았던 양의원은 아버지인 양회장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부당한 방법을 통해 이권을 나눠주는 행위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발언은 신념이었음을 알게 해주지요.

카이가 건넨 해상 위락시설과 해상 카지노 건설과 관련된 은밀한 거래 사실을 언론에 알리려 한다는 말에 나라를 위해 좋은 일 하는 것인데 언론이 알아도 된다는 양회장의 말은 엄청난 괴리감으로 다가옵니다.

양의원 : 이권 개입에 특혜입니다.
양회장 : 이 정도 이권은 개입해도 되고 이 정도 특혜는 줘도 돼.

형님 정치를 하는 현 정권에 양회장이라는 존재는 의미하는 바가 크지요. 아들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모든 권력을 가지려는 양회장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권력층들의 모습을 비유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진이 가족을 모두 죽인 사실에 대해서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 말하는 양회장은 진정 우리시대 권력자의 모습입니다.

양회장 : 권력이란 말이다 아무도 믿지 않아야 쟁취할 수 있고, 아무도 믿지 말아야 지킬 수가 있는 것이야. 양의원 : 그리고 아버지. 제 정치 철학에는 말입니다. 이권과 특혜는 없습니다. 정도와 원칙만 있어요. 이런 건 아버지 세대가 했던 정치고, 이건 저희 세대가 해나갈 정치입니다.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명예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권력을 바란다면 저 후보 출마 포기하겠습니다.

권력을 얻어서 더 큰 탐욕을 채워나가려는 아버지에 맞서 이권과 특혜는 있을 수 없고 정도와 원칙만 있는 정치를 행사하겠다는 양의원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카이가 건넨 문건에 나온 이권과 특혜를 찢어버리는 행위 자체를 자신들 세대가 해나갈 정치라고 이야기하는 양의원은 모습은 우리가 지향하고 꿈꾸는 정치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정치는 권력이 아닌 명예라는 말은 알면서도 잊고 혹은 알지만 지키지 못하는 진실입니다. 권력을 탐하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닌 정치를 통해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다수를 위해 봉사하는 역할이라 이야기하는 양의원의 모습은 작가가 대중의 마음을 담아 <도망자>에서 드러낸 소신이자 드라마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도반장이 윤형사와 만나 우리가 수사를 해보자며 하던 이야기 속에서는 하위 계급의 국가 공무원이 지켜야 할 정도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범인을 잡아 복직해 진짜 형사처럼 일해보자는 말 속에는 정도와 원칙에서 벗어나 권력의 시녀가 되어버린 국가 조직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아니기에 가능한 진짜 수사를 할 수 있다는 도반장의 이야기는 씁쓸하지요.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경찰은 오히려 범인을 비호하고 경찰에서 쫓겨나서야 진정한 수사를 할 수 있다는 말은 권력 앞에 한 없이 나약한 존재들에 대한 풍자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낡은 정치 속에 갇혀 피로 만든 권력에 취해 있는 양회장과의 마지막 승부를 앞둔 그들은 나약하지만 강력한 힘을 낼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촛불이 하나만 켜져 있으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그 힘이 모이면 강력한 외침으로 변할 수도 있음을 우린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권력으로 국가 조직마저 장악하고 있는 양회장에 맞서, 나약하기만 한 대중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로 양회장에 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절대적인 열세일 수밖에 없는 그들이 과연 거대 권력을 무너트릴 수 있을까요?

<도망자>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양의원의 존재를 명확하게 정립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대물>에서 강직한 여성 대통령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4대강을 통해 대운하를 성사시키고 그 위에 해상 카지노와 위락 시설을 들이려는 권력자를 빗대어 비웃고 풍자하는 <도망자>는 그래서 의미 있고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작가가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양의원을 강직하고 정도와 원칙을 위해서는 타락한 아버지도 버릴 수 있는 존재로 설정한 것은 현 정권에 대한 심판이 절실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요구하는 대중의 욕구가 16회에서 흥미로운 대사들에 투영된 <도망자>는 그 어떤 정치 드라마보다 훌륭하게 현실 정치를 풍자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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