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 C. 혹은 가, 나, 다로 도배가 된 연예계의 뒷담화는 몇몇 신문의 기자님들이 선호하는 이야깃거리입니다. 양다리를 좋아하는 미모의 A양이 연하의 B군과 사귀는 도중에 중년의 C와 함께 있는 모습을 들켜서 곤욕을 치렀다든가, 술버릇이 안 좋은 가군의 추태 때문에 강남 모 주점에서 난동이 일어났다든가 하는 출처도 모호하고 누구인지 알 수도, 정확하게 밝힐 생각도 없는. 하지만 그냥 꾸미면 꾸미는 대로 기사를 남발할 수 있고, 독자들의 호기심을 바짝 자극할 수도 있는 꽤나 유용한 소재이죠.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낚시 기사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런 무책임한, 아니 기자들의 성의 없고 내용도 없는 기사들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철이 없는 낚시질이 연예인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습니다. 대충 언질만 달라며 호기심을 보이는 주위의 부추김 때문에, 어떻게든 자신의 이름 한 자, 출연한 작품 한 장면을 홍보해야 하는 다급한 사정을 벗어나려고, 혹은 그냥 아무런 생각이나 배려 없이 던진 말 한 마디들이 일파만파의 논란을 불러오는 것이죠. 점점 더 자극적이 되어가는 케이블 방송의 경쟁, 서서히 봉인이 풀리고 있는 1세대 아이돌들의 과거사들 같은 현상이 강요한 폭로 전쟁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동료들이 받을 피해, 상처 따위는 전혀 배려할 생각도 없이 털어놓는 이들의 이기적인 과거 팔아먹기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무엇보다도 비겁해요.

자신들은 정확히 누구를 지칭한 것도 아니고 단지 당시의 정황이나 대강의 윤곽만을 말했을 뿐이라고, 자기들 역시 피해자, 혹은 그들의 행위로 받은 상처를 가지고 있기에 폭로의 대상이 되어도 싸다고 변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주위의 말들과 부추김, 녹화 분위기에 휩쓸려서 툭하고 내던진 실수라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문제가 많은 낚시질이에요. 이런 식의 모호함과 익명성 때문에 훨씬 더 많은 폐해와 문제들이 방송 이후에도 여진으로 남아서 엉뚱한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한 때 마성의 여자라고 불리기도 했던 미모의 연예인. 한때 자신과 교제했을 때는 무명이었지만 지금은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눈이 큰 남자 배우. 미용실에서 자신의 부탁을 거절했다는 30대의 잘나가는 여자 연예인 등등. 이런 모호한 규정들은 과연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아내는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유사한 조건을 가진 이들의 실명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이런저런 것들을 따져보면 이 남자가 확실하다. 어쩐지 그 여자가 그럴 줄 알았다. 내가 소문을 들어서 아는데 그 말이 맞다 하는 그야말로 ~카더라의 연발인 무책임한 주홍글씨들이죠.

하지만 정작 네티즌들에게 지목받은 당사자들은 이런 불특정 다수들에 의한 낙인에 대해 그것을 부인하기도 그렇고 인정하기도 뭐한 애매한 위치에서 그냥 욕만 먹을 뿐입니다. 게다가 동료 연예인의 입에서 흘러나왔기에 기자들의 출처 불명의 카더라 통신들보다 그 힘은 더욱 강력하구요. 이런 소문들 역시도 시간과 함께 사라지겠거니 하며 넘기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억울하게도 한 번 찍힌 낙인은 그들의 활동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붙으며 하나의 추한 그림자로 남아버리죠. 이전의 수많은 이들이 힘들어했던 것처럼, 이런 어설픈 낚시질 때문에 루머가 만들어지고 엉뚱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어요.

이런 수군거림 역시도 연예인으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아픔 중 하나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정당화나 아픔의 인정, 혹은 강요의 출처가 무책임한 발언으로 엉뚱한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동료 연예인들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과연 자신들이 이런 식으로 처신하고 과거를 팔아먹으면서 연예인들의 인권을, 개인 사생활을 보호해 달라고 호소할 수 있을까요? 그들의 철없는 폭로는 어떤 말로도 정당화하기 힘든, 그야말로 자기 얼굴에 똥칠하기, 도에 넘은 낚시질일 뿐입니다.

정말로 그 사람의 행동이 나쁜 짓이었고, 그것을 고발할 양이라면 차라리 그냥 실명을 밝히고 사죄를 요구하든지, 아픔을 호소하든지 하는 게 훨씬 더 당연하고 정당합니다. 그렇게 상대방이 저지른 과거의 추함을 털어놓았다면 그 발언의 책임도, 파장도, 당사자의 대응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괜히 엉뚱한 사람이 피해볼 일도 없구요. 하지만 이들이 그렇게 폭로를 반복하는 이유는 그런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비겁한 익명성과 모호함 뒤에 숨어서 과거야 어찌 되었든 관심 한번 받아보려고, 이슈를 만들어서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픈 마음뿐입니다. 주위의 시선과 편견 때문에, 이상한 루머나 손가락질 때문에 연예인 하기가 힘들고 괴롭다고 흔히들 말하곤 하지만, 그들이 손가락질하는 네티즌이나 기자들을 탓하기 전에 이렇게 폭로나 하고 다니는, 그들의 철없는 동료들이나 그런 폭로를 부추기는 프로그램들부터 단속하고 자제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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