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원 소녀'라고 불렸던 정다래(전남수영연맹)는 아시안게임 개막 전부터 '광저우 아시안게임 5대 얼짱'이라는 이름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큰 키에 예쁜 외모 등이 부각되면서 언론은 이를 비교적 크게 다뤘고, 일반 팬들 역시 그녀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통상 갑작스럽게 관심을 받다 보면 그에 대한 부담 때문에 자신이 갖고 있던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며 고개를 떨궜던 경우가 적지 않았기에 아직 19살로 어린 정다래가 감당해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 많았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다래는 이번 대회에서 3번의 실패를 딛고 마침내 금메달을 목에 거는 데 성공하며 '얼짱'이 아닌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습니다. 그동안의 고생이 많이 생각났는지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을 때는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안은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 들어 많은 사람들을 흐뭇하게 했습니다. 그야말로 진정한 수영 스타로 떠오른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평영 50, 100m 등에서 잇달아 4위에 머물러 200m에서 과연 메달권 성적을 낼 수 있을지 기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는 수영대표팀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기껏해야 동메달 정도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을 만큼 쟁쟁한 경쟁자들도 많았고 그만큼 힘든 종목이 바로 평영 200m였습니다. 하지만 정다래는 한 번 선두로 자리잡은 뒤 끝까지 스피드, 영법이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일본, 중국 선수들의 맹추격을 뿌리치고 2분25초02의 기록으로 골인했습니다. 자신의 기록(2분24초20)에는 0.82초 모자랐지만 마지막까지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한 끝에 이뤄낼 수 있었던 값진 우승이었습니다. 그리고 '얼짱으로 주목받는다'는 소리를 단 번에 잠재우며 진정한 수영 스타로서 해야 할 일을 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다래의 금메달은 한국 여자 수영 역사에 있어 상당한 의미를 가져다줬다는 면에서 값어치가 있었습니다. 1982년 86년 '아시아의 인어'라는 찬사까지 들었던 최윤희 이후 스타성 있는 선수가 발굴됐다는 점은 무엇보다 돋보이는 성과였습니다. 1998년 조희연 이후 12년 만에 나온 금메달, 평영에서 처음 나온 금메달이라는 것도 값어치가 있지만 박태환에게만 의존해왔던 한국 수영에 새로운 여자 스타가 탄생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2009 세계선수권 준결승 진출을 통해 경쟁력을 확인한 만큼 좀 더 단점을 보완하고 체계적으로 육성하기만 한다면 정다래가 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서 메달을 따내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면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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