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총이 하루 만에 개원연기를 철회했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볼모로 교육당국의 백기투항을 노렸으나 한유총의 개원연기 투쟁은 일일천하로 막을 내리고 만 것이다. 학부모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서울시교육청은 한유총의 법인 인가를 취소키로 확정했다. 민심과 교육당국의 양면 공세를 온몸으로 받은 한유총은 한 발짝 물러섰다. 그렇다고 유치원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어서 국회에 머무르고 있는 유치원3법의 통과가 다급한 상황이다.

얼마 전 대규모 집회를 통해 세를 과시하기도 했던 한유총이 이처럼 성과를 거두지도 못하고 물러서게 된 배경은 당연히 민심의 이반 때문이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볼모로 삼았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할 수 없었다. 스스로 준법투쟁이라고 개원연기를 포장했지만 한유총의 주장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이덕선 한국유치원단체총연합회(한유총) 이사장이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유총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치원 개학연기와 관련 정부의 대응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입지가 좁아진 한유총의 무리한 투쟁에 사립유치원들이 대거 이탈한 부분도 눈여겨봐야 한다. 애초 한유총은 이번 개원연기에 동참한 유치원이 1500여개에 달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으나 실제로는 훨씬 적은 239곳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221곳에서는 자체 돌봄을 실시해 개원연기로 인한 심각한 보육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처럼 한유총의 강경책이 통하지 않은 배경에는 교육당국의 불타협 의지와 학부모들의 분노가 작용했다. 한유총의 핵심지역이라 할 수 있는 용인시에서 지난 3일 열린 한유총 규탄집회는 비록 200여명의 크지 않은 규모였으나 학부모들이 직접 나선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아이들을 맡기지 못하면 당장 맞벌이 부부들은 심각한 곤란을 겪게 되어 한유총의 강경책에 숨을 죽일 것이라는 판단이 틀린 것이다. 그 결과 개원연기에 동참하면서도 최소한 돌봄이라도 하겠다고 돌아서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학부모들은 한유총을 규탄하는 것뿐이 아니었다. 곳곳의 유치원 학부모들의 집단소송 움직임이 보도되고 있다.

또한 교육당국의 대처도 신속하고 엄정했다. 보육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일부 언론의 겁주기에 흔들리지 않고 한유총에 대한 법인 허가 취소, 개학을 연기한 유치원 고발, 공정거래위원회 신고 등 힘 있는 조치들을 잇달아 단행했다. 5일까지 개원을 하지 않을 경우 검찰 고발도 하겠다는 발표를 단순한 엄포로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립유치원 개학연기 사태에 용인시 학부모 100여명이 3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아이들을 볼모로 하는 사립유치원들은 각성하라"며 "유아교육 농단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당국이 한유총의 겁박에 흔들리지 않고 강경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은 민심에서 나왔다. 교육부가 발표한 2월 27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3%가 에듀파인 도입에 찬성했다. 또한 유치원3법 개정에도 비슷하게 81%이 찬성했다. 결정적으로 한유총이 주장하는 에듀파인이 사유재산을 침해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73.7%가 동의하지 않았다. 이 정도 민심이라면 교육당국의 강경책에 힘을 싣기에 충분했다.

한유총이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투쟁의 볼모로 삼은 것은 결정적 패착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이 법인허가를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공함은 물론이고, 가뜩이나 부정적인 여론에 기름을 끼얹은 형국이다. 비록 하루 만에 한유총의 개원연기가 철회됐지만 학부모들이 겪었을 혼란과 고통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분노로 각인될 것이다.

이 분노의 크기에 대해서 정치권도 방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지난 대선에서 잘나가던 안철수 후보가 유치원 관련 논란에 크게 흔들렸던 것을 그새 잊은 것이다. 정치인들은 잘 잊어먹지만 시민들은 그렇지 않다. 두 달 넘게 문을 닫았던 국회가 열린다고 한다. 유치원3법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감시에 두려움을 가져야 할 것이다. 불붙은 시민들의 분노는 한유총을 넘어 국회를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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