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안 게임이 시작되며 금메달은 연일 계속 쏟아지고 있습니다. 올림픽에서도 세계 10위 안에 드는 저력으로 스포츠 강대국으로서 위치를 잡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은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4회 연속 종합 2위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금메달보다 값졌던 왕기춘의 은메달

첫 날 사격부터 시작된 금 사냥은 압도적인 존재감인 중국을 제외하고 일본과 2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메달 수에서 밀리지만 금메달에 집중하는 대한민국이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재 상황이 마지막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구기 종목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나라보다 높은 대한민국에서, 쏟아지는 금메달 소식보다는 야구팀의 승리 소식과 축구 대표팀의 승전보는 언제나 우선적인 뉴스가 되곤 합니다. 중국 홈팀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8강에 오른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력은 칭찬받아 마땅할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조직력이 살아나며 여유 있는 경기를 풀어간 축구 대표팀이 이번에는 아시안 게임 금메달이라는 숙원을 이룰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과의 첫 경기 패배로 아쉬움을 곱씹었지만 이내 자신의 페이스를 찾으며 승승장구해 온 한국팀은 중국팀에게 다시 한번 지독한 공한증을 심어주며 우승 가능성을 높여주었습니다.

▲ 은메달을 받은 왕기춘 ⓒ연합뉴스
어제 경기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이는 은메달을 딴 왕기춘이었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갈비뼈 부상으로 금메달을 따지 못했던 그에게 이번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은 무척이나 중요했습니다. 지난 해 여성 폭행과 관련해 유도를 포기하기까지 하며 절치부심했던 그에게 이번 경기는 과거를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기 때문이지요. 예선전에 보여준 그의 실력은 역시 탁월했습니다.

강자들을 한판으로 이기며 결승에 오른 왕기춘은 라이벌 일본의 아키모토와 대결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개최되었던 세계선수권 4강전에서, 세계선수권 3연패의 야망을 좌절시켰던 아키모토와 결승에서 대결한다는 것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4강전에서 발목 부상을 당한 아키모토가 절룩거리며 결승에 임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에게 왕기춘이 승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 청년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유도의 다양한 기술들 중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발걸이를 하지 않고 오직 업어치기만 시도한 왕기춘은 상대의 약점을 승리로 이용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에게 스스로 패널티를 부여하고 공정한 경쟁을 시도한 왕기춘은 아쉽게 연장 종료 23초전에 석연찮은 판정으로 금메달을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챔피언이었습니다.

▲ 한국의 왕기춘이 일본의 아키모토 히로유키와의 결승전 연장에서 상대의 기습 공격을 허용해 패한 뒤 허탈한 표정으로 주심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에서는 금메달을 딴 선수들에 집중하는 사이, 일본 언론으로 인해 왕기춘의 스포츠맨십이 돋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팀에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얻은 금메달 소식에, 왕기춘을 깎아내리기 바쁜 일본 언론으로 인해 궁지에 몰릴 수도 있었던 왕기춘은 부상 입은 상대를 굳이 부상부위를 건드려 이기고 싶지 않았다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왕기춘은 금메달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정당당하고, 공정한 대결을 원했습니다. 수비 일변도임에도 불구하고 지도하나 받지 않은 상대방에 대해서 어떤 억울함도 표시하지 않고 자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고 다음 대회에서도 꼭 우승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왕기춘의 다짐은 진짜 사나이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비겁하고 거짓으로 일관하면서 공정한 사회를 외치는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과연 왕기춘의 이런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오직 금메달만이 의미 있다고 외치는 이들에게 왕기춘의 은메달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그 어느 나라보다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가 확연한 대한민국에서 금메달이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도 정당한 대결로 은메달을 목에 건 왕기춘은 스포츠맨십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설명해주었습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 아마추어리즘이 사라지고 상업성과 국가주의만 남은 상황에서 왕기춘이 보여준 순수한 스포츠 정신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목적을 위해 온갖 술수를 부리고 이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만이 살아남는 게 미덕이라도 되는 듯 찬양하는 사회에서 왕기춘이 보여준 당당한 패배는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왕기춘처럼 당당한 패배로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도록 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당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공정한 경기를 위해 스스로에게 핸디캡을 부여하고 경기에 임한 왕기춘은 우리 시대 진정한 챔피언이었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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