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명령’이라는 단체가 요즘 정치권에서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선거 때마다 사분오열해 제 각각 후보를 내고 있는 야권의 단일화를 주장하는 시민들의 모임이지요. 아시는 분들은 이미 많이들 알고 계실 겁니다. 배우 문성근씨가 ‘동’을 띄웠고 지난 8월 26일 시작한 이 운동에 벌써 3만 2천여명이 동참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올 연말까지 회원 5만명을 모을 계획이고 최종 목표는 백만명이라고 하더군요.

백만명은 어떤 규모의 숫자일까요. 현재 진보정당에서 돈을 내고 있는 진성 당원 수가 5만여명 안팎입니다. 민주당 등의 정당들이 수십만명의 정당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만 대부분 당비 내지 않는 종이당원들이지요. 이미 ‘국민의 명령’은 웬만한 진보정당의 규모를 갖췄고 만약 백만명 회원을 달성한다면 한국 사회를 크게 뒤흔들 수 있는 집단이 될 겁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민란군’이라고 부르더군요. 윗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민초’들이 스스로 움직인 것이니 그렇게 부를 만도 합니다. 들불 번지듯 번지고 있는 이 난은 정말 성공한 시민혁명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요.

궁금했습니다. 과연 될까. 이해관계가 복잡한 정치권을 과연 움직일 수 있을까. 그래서 이들을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백여년 전 동학 농민군이 관군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다 스러져간 충남 공주시 우금치 유적지에서 지난 13일 열린 ‘민란 콘서트’에 1천여명의 민란군이 모였습니다.

▲ 전국에서 찾아 온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회원 천 여명이 13일 저녁 충남 공주시 우금치 유적지에서 열린 민란콘서트를 바라 보고 있다. ⓒ이승완
민란군의 심정은 ‘답답함과 절박함’

“울화통이 터져서 뭔가는 해야겠기에 나왔어요”

천안에서 평범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가 이날 횃불을 들러 나온 김시경(43)씨의 말이었습니다. 이 분은 “국민들이 얼마나 (야권 단일화를) 원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알아서 단일화 해주기 바랐지만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정당들이 기득권을 놓지 못해 주저하는 모습을 보고, 지난 8월 재보궐 선거에서 결국 또 사분오열한 야당이 패배하는 것을 보고 답답했다” 합니다.

민란군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답답함’이었습니다.

어떤 민란군은 ‘절박함’이라고 답했습니다.

충남 아산시에서 주부로 살고 있는 김미경(37)씨. 김씨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거꾸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권을 바꾸어야 하는데 이런 상태로 야당이 분열되어 있으면 다음에도 희망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야당들이 알아서 해주기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무 것도 안하잖아요. 그래서 국민들의 뜻이 뭔지 보여주러 나온 겁니다.” 김씨의 말입니다. 김씨는 동네 주민 9명을 모아 이곳 우금치에 몰려나왔습니다.

‘노사모의 기적’ 다시 꿈꾸는 국민의 명령

분명 이번 민란은 ‘바람’을 탔습니다. 하지만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과연 ‘가능할까요.’

민란군도 사실은 결과를 확신하고 있는 분들과 반신반의 하는 분들로 갈려 있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있기에 실패하더라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대답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가능하다고 확신하는 분들은 ‘노사모의 기적’을 다시 떠올리고 있는 듯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10만 노사모가 만들었다고 이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임재원(35)씨는 “노사모도 처음에는 효과과 없었는데 10만명 정도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며 “(야권단일화를)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 국민의 명령 회원들이 13일 저녁 충남 공주시 우금치 유적지에서 횃불을 들고 민란콘서트에 참가하고 있다. ⓒ이승완
국민의 명령이 극복해야 할 과제

하지만 이 분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도 있어 보입니다. 지금까지 ‘국민의 명령’이 이렇게 단기간에 세를 불리게 된 데에는 문성근씨의 노력과 노사모 회원들의 동참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국민의 명령이 ‘제 2의 노사모’로 전락한다면 그 한계는 뚜렷해질 겁니다. 국민의 명령은 ‘야권 단일화’를 실현시키기 위한 민란이지 유훈정치를 반복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니까요. 더 외연을 넓혀야 합니다.

가능성은 충분히 엿보였습니다. 이 날 전국 각지에서 천 여명의 민란군이 모였습니다. “고등학생도 알 것 다 안다”며 스스로 돈을 내고 찾아 온 청소년 유원진(17·하남시)군, 친정 어머니 병시중 들다 잠깐 짬을 내 찾아 온 40대 주부, 아이들 동화 줄거리 구상하다 횃불을 들러 나온 30대 동화 작가, 참여연대같은 시민단체 회원들까지…. 구성이 다양했습니다. 민란이 다양한 세대와 계층에까지 널리 퍼져있구나 느껴지게 하는 구성이었습니다. ‘제2의 노사모’란 우려는 일단은 기우처럼 보였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사실 공주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도 나와 있었습니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행사로 열린다면 선거법 위반이기 때문에 감시하러 나온 것이죠. 행사를 주욱 지켜본 이 선관위 관계자도 제게 “제가 보기에도 어떤 특정 인물을 내세우려고 나온 분들은 아닌 것 같다”고 그러더군요.

‘묻지마 반엠비 연대’에 대한 회의적 시선도 분명히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야당이 무조건 연합하는 것은 오히려 정당정치를 후퇴시킨다는 비판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거든요. 이에 대해 민란군 조직자 신정웅(38)씨는 “(‘국민의 명령’은) 후보를 한 사람으로 내어 국민이 원하는 정책을 실현하자는 것이지 야권통합정당을 만들라는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습니다. 판단은 여러분이 직접 해보십시오.

“국민 55%가 야권 단일 후보에게 찍는다”

사람도 모일만큼 모였습니다. 그리고 구성원의 외연도 다양합니다. 이제 이들은 충분히 준비가 돼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이들의 명령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지난 11일 저녁 문성근씨는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에서 창원 시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 야권 단일 정당에 표를 주겠다는 국민이 55%고 한나라당 유력 대선 후보는 30%로 나오고 있습니다. 잘해야 5% 정도의 격차가 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왜 이런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 걸까요? 국민들은 감동 받을 준비가 돼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국민의 명령’이 벌이고 있는 민란의 움직임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국민의 명령은 5만 회원을 돌파하는 그 시점부터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앞에서 매주 토요일 ‘야권 단일화’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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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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