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은 악천후를 만나면 대박이 난다. 지난겨울 혹한기 대비캠프 때에도 갑자기 내린 폭설로 예정에 앞당겨 베이스 캠프를 떠나야 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런 악천후의 기습은 불운이라 여긴다. 그렇지만 방송분량을 따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그날 방송을 보며 감탄과 감동을 선사받은 시청자라면 모두 아는 일이다. 폭설을 일부로 찍으러 간 것도 아니고, 1박2일이 다큐도 아니지만 우연찮게 만난 폭설은 1박2일에게 다큐를 강요했고, 그 즐거운 강요에 1박2일은 어느 다큐 못지않은 멋진 영상을 각 가정에 배달할 수 있었다.

이번 강호동과 이만기가 20년만의 모래판 재대결을 벌이게 된 것도 그렇다. 만재도를 나올 때 자막으로 뭔가 사악한 여운을 남겼던 1박2일 제작진은 그 음모를 그리 오래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계획은 가기도 전에 악천후로 인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얘기는 이미 한 주 전의 것이니 길게 얘기할 바는 되지 못한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제안된 강호동과 이만기의 재대결은 오랜만에 1박2일에 시청률 폭탄을 제대로 안겨주었다.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새옹지마란 그래서 아직도 유효한 삶의 보이지 않는 원칙이라고 1박2일은 번번이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예정에도 없이 벌어진 강호동과 이만기의 재대결은 아닌 게 아니라 현역이 아니라도 이제는 썰렁해진 씨름판에서도 보지 못할 빅 이벤트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자연 시청자의 관심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동안 MC몽 때문에 무거웠던 것은 비단 제작진과 출연자 뿐만은 아니다. 시청자 역시도 이런저런 이유로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이번 강호동과 이만기의 재대결이 시청률 폭발을 일으킨 데는 비단 이벤트성 때문은 아니다. 철없고 개념 없는 일부 그러나 불행하게 현재 한국에는 반드시 존재하는 분란 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조작설로 재미 보고픈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런 따위 관심 줄 필요도 없는 아주 중요한 것을 이 대결에서 1박2일은 보여주었다.

승부가 어떻게 됐건 간에 승부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위해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강호동은 그 큰 곰만 한 덩치가 스스로의 감격에 겨워 눈물을 찔끔거렸다. 그런 후배를 보며 이만기 역시도 크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가슴에 적잖은 물기가 서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 강호동이 씨름에 처음 입문할 중학2년 때 소년의 눈에 비친 대통령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 우상과 결국 언젠가 싸워서 이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 승리가 결코 자기 속 우상을 지우는 일이 되지는 않는 법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년이 훌쩍 지나서 그도 그의 우상도 어느덧 중년의 사내가 되어 있다. 너무 세월이 흘러 이제는 서로의 땀에 미끄러지면서도 어떻게든 이겨볼라고 용을 쓰는 일을 하기에는 어색한 나이들이 됐다. 사실 그들의 숙명적 재대결은 이처럼 즉흥적으로 하기보다는 아주 철저한 준비와 홍보를 통해서 대대적인 이벤트로 했어야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방송을 위해서 어쩌다가 얼떨결에 재대결이 이뤄졌지만 어쩌면 이벤트로써의 대결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 돼버렸다.

그것은 승부라는 작은 목표가 아닌 인간이라는 아주 커다랗고 더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것이었다. 어린 소년에게 우상이었던 청년도 이제 늙었고, 그 소년도 더는 소년이 아니다. 이 단편소설의 플롯과 너무도 닮은 1박2일의 씨름 대결은 그렇게 조금 세상을 산 사람에게는 회한을, 이제 한창 힘이 넘치는 젊은이에게는 겸손을 가르친 아주 따뜻한 내용을 담아냈다. 그것을 보지 못하고 승부조작이니 뭐니 열폭하는 이는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유리되는 불행한 사람일 따름이다.

매사의 1박2일은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1박2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평소에 하지 않던, 그럴 것이라 전혀 생각지 못한 강호동의 애 같은 모습에서 한국대중은 이제 선배를, 자기 추억을 어떻게 소중히 대해야 하는 것인지를 배워야 할 것이다. 살기 바쁘다고, 성공해야 한다고, 낡은 사고라고 뒷전에 물려두었던 작고 사소하지만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것. 정을 1박2일은 시청자에게 전해주었다. 막장의 대세에 함몰된 한국 드라마가 외면하고 있는 드라마의 기본인데 예능에서 대신 주었다. 참 잘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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