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아카데미 상의 결과가 드러났다. 아카데미가 선택한 작품상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모았던 피터 패러리 감독의 <그린 북>이다. 또한 이 영화에서 돈 셜리 역을 맡았던 마허살랴 알리에게 2017년 <문 라이트>에 이어 두 번째 남우조연상을 안겼으며, 각본상까지 거머쥐며 3관왕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지난 1월에 열린 7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 코미디 부문 작품상을 수상하며 수상 가능성을 점칠 수 있었던 <그린 북>. 하지만 올해 <블랙 팬서>, <로마> 등 인종 차별과 사회적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여러 편 노미네이트 된 가운데 다수의 매체와 평론가들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의 수상을 점쳤기에 <그린 북>의 수상을 '이변'으로 보기도 한다.

참가자들 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고 하거나 박수를 치지 않는 등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 <그린 북>의 수상, 거기엔 그저 이변을 넘어 논란이 되는 지점 또한 담겨 있다.

사실 왜곡인가, 영화적 상상력인가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1956년 버스에 흑인과 백인 좌석이 구분돼 있고 흑인은 뒷문을 이용해서만 버스를 타야하던 시절, 26세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런 차별에 반기를 들었고 '버스 보이콧운동'이 벌어졌다. 그해 5월 미 연방법원은 '버스에서의 인종 분리는 불법이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로부터 6년여, 하지만 세상은 법의 판결을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특히나 미국 남부는 여전히 해가 저물어 흑인이 돌아다니는 것이 불법이라 여겨지는 지역이 있을 정도로, 1962년 미국 사회는 아직까지도 인종 차별이라는 구습에 젖어 있었다.

바로 그 시절 입담과 주먹 하나로 살아가던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는 자신이 일하던 클럽이 그의 주먹 해프닝으로 영업 정지를 먹는 바람에 당장의 호구지책이 급한 처지가 된다. 그런 그에게 들어온 임시 일자리,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의 남부 순회공연에 운전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까짓 운전쯤이야 하고 찾아간 면접장, 뜻밖에도 그를 고용한 사람은 '흑인'이었다. 토니에게 흑인이라니 청천벽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자신의 집에 전기를 고치러 온 흑인 기사가 잠시 사용했던 컵을 쓰레기통에 버릴 정도로 '인종 차별적 편견'이 심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흑인의, 그것도 인종 차별이 심한 남부 순회공연 동안 그를 에스코트할 운전기사를 해야 하다니. 하지만 아내와 두 아이, 그리고 매달 내야 하는 집세 등 목구멍이 포도청인 처지가 그에게 기꺼이 그 일을 맡긴다.

당연히 순탄하지 않은 여행, 흑인을 차별하는 남부를 무사히 여행하는 지침서 '그린 북'은 필수다. 그를 고용한 사람은 돈 셜리지만, 흑인을 위해 편안한 안식처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아 때로는 운전사인 그가 더 좋은 호텔에 머물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어가며 그는 맡은 바 임무를 넘어, 그리고 흑과 백의 편견을 넘어 돈과의 진실한 우정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토니 발레롱가의 시점에서 그려진 이 남부 순회공연 그 시작이 된 건 바로 토니 발레롱가의 아들 닉 발레롱가의 시나리오이다. 자신의 아버지와 돈 셜리가 이 여행을 계기로 인종 차별의 벽을 허물고 평생의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는 이 이야기, 하지만 돈 셜리의 유족들은 이의를 제기했다.

자메이카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 음악 재능을 드러낸 돈 셜리. 그는 이미 10대 때 보스턴 팝스와 런던 필하모닉과 함께 협연을 했으며, 1961년 발표한 '워터보이'로 빌보드 차트에 오를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음악을 섭렵했던 음악가이다. 유족들은 <그린 북>이 그리고 있는, 백인들에게는 어릿광대이며 그렇다고 흑인들 사회에도 융합하지 못하는 고독한 천재라던가, 게이로 표현되는 등 확인되지 않는 사생활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엔딩 크레딧 자막에 표기된 돈과 토니의 50여 년간의 우정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발하며 영화적 감동의 기반이 된 '사실'에 문제제기를 했다.

돈 셜리의 유가족들이 문제제기한 '사실'으로 인해 흠집이 난 <그린 북>. 감독은 유족과의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함에 사과를 하면서 그럼에도 자신이 '흑인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백인'이 아니며, 이 영화가 그런 돈벌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점진적 변화를 위한 작품이라고 영화적 가치를 항변했다.

결국 아카데미는 피터 패럴리 감독의 '세상의 변화를 향한'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아마도 그건 <그린 북>이 그린, 차별을 넘어 화합해 가는 과정이 오늘날 다민족 사회 미국에 있어 가장 '모범답안'이라 생각해서가 아닐까.

차별의 다양한 층위, 그 해결을 향한 모색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영화의 배경은 흑과 백의 인종적 갈등이 여전한 미국 사회이지만, 거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토니라는 인물이다. 그는 백인이다. 하지만 그는 클럽에서 일하며, 그도 마땅치 않을 때는 먹기 시합이라도 해서 벌이를 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가장이다. 이탈리아 이민계, 말투는 그가 머무는 거리의 세계를 반영하듯 거칠고 단절적이며, 오랫동안 떨어져 지낼 아내의 간청으로 편지를 써보지만 맞춤법은 젬병이다.

말이 백인이지, 백인 사회 내 계층에서 최하위층에 속하는 그는 자신이 가진 결핍을 백인 남성이라는 허울로 포장하여 흑인에 대한 사회적 적개심으로 자신을 무장한다. 영화 속 토니라는 인물로 표현된 하층 백인 남성이 가지는 차별적 시선은 결국 자기방어 기제로부터 출발한다. 즉 한 사회의 계층적 스펙트럼에서 결코 고지를 점할 수 없는 이가 그 차별적 분노를 또 다른 편견과 차별을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유럽과 미국 등 백인 중심 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차별적 움직임과 궤를 같이하는 심리적 기제이다.

이러한 토니와 천재 뮤지션이지만 사회적으로는 고립된 흑인 돈 셜리의 만남을 통해, <그린 북>은 흑과 백으로만 규정지을 수 없는 우리 사회 속 다양한 차별과 구분의 층위를 드러낸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젠더갈등을 겪고 있지만 사실은 그 성적인 구분의 스펙트럼만큼 한 젠더 내의 스펙트럼이 폭넓게 존재하고 있다는 학문적 조사처럼, 사회적으로 우리는 구획을 나누지만 구획의 층위는 실제 사회 내에서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영화는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토니와 돈 셜리를 통해 접근해 들어가는 차별의 해법은 흑과 백, 그 이상 다양한 민족과 계층의 용광로라 할 수 있는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고민에 대한 접근이기도 하다.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제 아무리 자신을 고용한 사람이며, 많은 이의 박수를 받는 이라 하더라도 '흑인'이라는 자신이 구분지어 놓은 편견에서 쉬이 나가지 못했던 토니. 심지어 그가 음악 외의 학문에서도 조예가 깊은, 심지어 자신을 고용할 만큼의 부까지 가진 우리로 치면 '양반입네' 하는 듯한 행세가 못마땅했던 토니. 그랬던 그가 우연히 듣게 된 돈 셜리의 연주에서 마음이 움직여진다. 그리고 굳이 남부를 여행하면서 연주를 하지 않아도 될 그가 여전히 강고한 흑과 백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형식적인 보디가드의 경계를 넘어선다.

돈 셜리도 다르지 않다. 백인, 자신을 경원시하는 세계의 사람이라고만 밀쳐 두었던 토니에 대해, 쉬지 않고 떠들어 대는 그의 너스레와 자신의 정체성 등으로 인한 위기의 순간 의협심인지 정의감인지 모호하지만 그의 의지가 되어주는 토니의 모습에 어느덧 돈 셜리의 경계도 흐트러진다. 그리고 그 흐트러진 경계는 위험한 순회 여행의 든든한 동반자를 넘어 우정의 세계로 두 사람을 인도한다. 흑인과 백인,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배운 자와 덜 배운 자, 이 다양한 층위의 모순들이 위태로운 음악의 여정 속에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인정으로 승화되어 간다. 그리고 그 승화된 우정의 해법에 아카데미가 작품상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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