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트래블러>가 <꽃보다 청춘>과 다른 이유! (2월 21일 방송)

“완벽히 예측 가능한 것은 여행도, 인생도 재미없는 법이지”라는 류준열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JTBC <트래블러>의 정체성을 정확히 보여주는 한 마디였다. 쿠바의 유명 관광지보다 류준열이 쿠바에서 만난 사람들, 그가 3시간 가까이 찾아 헤맨 숙소 후보들이 더 흥미로웠다. 고작 하루 묵을 숙소를 그렇게 오래 찾아 헤맬 줄은, 길거리에서 쿠바 소년과 축구를 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예측할 수 없는 그림들이었다.

JTBC 예능프로그램 <트래블러>

<트래블러> 첫 회는 인위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첫 숙소만 한국에서 예약하고 그 이후엔 계획하지 않은, 정말 ‘쌩리얼’ 배낭여행이었다. 덕분에 두 번째 숙소는 류준열이 3시간 동안 발품 팔아 직접 구하고, 교통수단은 길 가다가 마음에 드는 올드카를 보고 혹시 택시냐고 물어본 뒤 가격을 흥정하고, 무려 2시간을 기다려 와이파이 카드를 구매했다. 그래, 이게 진짜 배낭여행이지.

tvN <꽃보다 청춘> 역시 ‘쌩리얼’ 느낌이었지만 뭔가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이 강했다면, <트래블러>는 모든 걸 류준열에게 맡기는 방향이었다. 제작진과의 사전 미팅,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모습 같은, <꽃보다 청춘> 첫 회에서 으레 나오는 장면들도 전혀 없었다. 정말 배낭 하나 매고 쿠바에 도착한 류준열의 모습이 오프닝이었다. 그래서 제작진이 만든 프로그램에 류준열을 섭외한 게 아니라, 류준열의 실제 배낭여행을 제작진이 동행하는 듯했다.

류준열은 처음부터 제작진과 소통하거나 협상하는 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쿠바 택시 부자(父子)와 가격 협상을 하거나 대화를 이어나갔다. 제작진이 개입하면서 제작진과 출연자의 밀당조차 예능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시대, <트래블러>는 정말 담백하고 정직하게 출연자의 여행 발자취를 조용히 소리 없이 따라갔다. 첫 숙소의 수동 엘리베이터만큼이나 아날로그식 다큐멘터리형 예능이었다.

JTBC 예능프로그램 <트래블러>

<꽃보다 청춘> 시리즈는 제작진이 짜놓은 판에서 출연자들이 마음껏 자유를 누렸다면, <트래블러>는 아예 그런 판조차 없었다. 오로지 류준열의 발과 입에 의해 움직였다. 화면은 류준열의 발에 맡기고, 스토리는 류준열의 입에 맡겼다. “본능에 맡겼던” 류준열의 걸음을 그대로 담아낸 결과 “얻어 걸린” 그림들이 많았다.

버스킹 무대를 보다가 의도치 않게 바가지 팁을 내거나, 박물관인 줄 알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경찰서였다든가, 여행지를 걷다가 느닷없이 쿠바 꼬마 아이와 축구를 한다든가. 그러다가 전(前) 엑소 팬클럽 쿠바지부 회장을 만나기도 했다. 류준열이 엑소 수호의 친구라는 사실을 알고는 “우와 대박!”이라 외치는 쿠바인들. 의도했다면 절대 나오지 않았을 그림이다.

제작진은 그런 류준열의 작은 실수나 해프닝, 돌발행동을 가만히 두고 본다. 만약 내레이션도 제작진이나 제3자가 했다면 류준열에 대해 평가하고 캐릭터를 억지로 만들려고 했을 텐데, 내레이션조차 류준열이 맡았다. 그저 류준열이 하는 대로, 모든 것을 그대로 내버려둔다. 그게 <트래블러>의 가장 큰 매력이자 <꽃보다 청춘>과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이 주의 Worst: 필터링 없는 인터넷 게시판 같은 <연애DNA 연구소 X> (2월 20일 방송)

전남친을 소환해서 의뢰인의 연애 문제점을 분석한다. 물론 전여친과 전남친 모두 얼굴 공개. 그중 한 명은 연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여자친구가 SNS로부터 스폰서 제의를 받았음에도 왜 SNS을 끊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문제점을 폭로했다. 과연 이것은 연애 상담 프로그램인가, 아니면 자극적인 인터넷 게시판을 영상으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한가.

MBN <연애DNA 연구소 X>는 의뢰인의 연애스타일을 분석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명목 아래, 일반인의 연애담을 돈으로 평가하고 소비하는 자극적인 프로그램이다. 의뢰인의 진짜 지인 5명과 제로맨 2명을 배치한 뒤 그들이 의뢰인의 연애담을 이야기한다. 의뢰인은 진짜 지인을 찾아야 연애지원금을 받을 수 있고, 제로맨을 찾으면 연애지원금은 0원이 된다. 심지어 지인 중에는 전남친도 있었다. 이날 방송에서는 무려 여섯 명 중 세 명이 전남친이었다.

MBN 예능프로그램 <연애DNA 연구소 X>

굳이 100일 전남친, 700일 전남친, 10년째 짝사랑남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야만 의뢰인의 연애 DNA를 분석할 수 있을까. 의뢰인에게는 다소 불편한 만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연애DNA 연구소 X>는 연애 상담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전남친 소환’ 카드를 차별점으로 내세운 모양이다. 심지어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몇 만원 수준이었던 연애지원금은 100만 원에 육박했고, 그 액수에 맞춰 에피소드의 수위도 세졌다. 그렇게 의뢰인의 상처는 돈과 물물교환되었다.

패널들은 의뢰인의 현재 연애도 아니고 과거 연애를 안주 삼아 잘근잘근 씹어댄다. 그것도 당사자를 면전에 대고. 패널들에게 의뢰인의 연애 경험담은 연애DNA를 분석하기 위한 자료가 아니라 얼마짜리 가치가 있는 토크인지 가격을 매기는 수단에 불과했다. 즉, 토크의 가치를 돈으로 매기는 태도가 가장 큰 문제였다.

1라운드에서 토크 키워드 중 하나는 벚꽃 엔딩이었고 연애 지원금은 9천 원이었다. 신봉선은 이에 대해 “9천원인 거 보니까 야한 얘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의뢰인의 전 연애를 너무 가볍게 자극적으로 소비하려는 태도가 단적으로 드러난 발언이다. 의뢰인한테 거짓말하고 몰래 클럽 갔다 온 남자친구한테 아침에 해장국 끓여줬더니 그걸 의뢰인이 보는 앞에서 싱크대에 버린 에피소드가 나왔다. 붐은 “클럽 사건은 70만 원 가치가 있다”면서 이 에피소드의 결말을 빨리 얘기해달라고 재촉했다. 연애담을 돈 액수로 따지는 패널들의 태도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패널들의 역할은 연애 스타일 분석이 아니라 의뢰인의 토크를 더욱 예능스럽게(라고 쓰고 자극적으로) 풀어낼 수 있도록 부추기는 바람잡이 역할, 딱 그 정도였다.

MBN 예능프로그램 <연애DNA 연구소 X>

심지어 연애 스타일 분석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에피소드라도 그것이 자극적이라면 모두 눈에 불을 켜고 귀를 기울였다. ‘100일 전남친’은 “아윤이가 SNS를 통해 스폰서 제의가 심심치 않게 들어왔는데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왜 SNS를 못 끊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스폰서를 제의한 몰상식한 남자들 탓이 아니라 의뢰인의 탓을 했다.

문제는 ‘전남친’뿐만이 아니었다. 스폰서 얘기를 듣고 패널 중 누구도 의뢰인에게 괜찮았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어쨌든 제로맨을 피해야 된다”고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만 가르쳐줄 뿐이었다. 여기서 핵심적으로 짚어야 할 것은 스폰서 제의를 받은 의뢰인의 상처인데, 패널들은 “의뢰인의 연애 문제점은 SNS 중독”이라면서 엉뚱한 것에 원인을 돌렸다.

당사자에게는 굉장히 민감하고 예민한 부분일 수 있는데 이걸 타인의 입을 통해 방송에서 폭로되는 게 도덕적으로, 상식적으로 맞는 건지 아직도 의문이다. 이미 상식의 선을 넘은 <연애DNA 연구소 X>가 아무 필터링 없이 뱉어내는 인터넷 게시판과 다를 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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