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이 개막했다. '역사'적인가? 확실히 '역동'적이긴 하다. 평소 40여 분 정도 걸리던 출근 시간은 절반으로 단축됐다. 홀수 차량만 '자율적'으로 나다니는 도로에서 버스는 굳이 전용차선이 아니더라도 쾌속했다. 분에 넘치는 쾌적함을 만끽했다. 하지만 차장 밖 도로는 확실히 뭔가 불길해 보였다.

한국사회는 지금 '국가'라는 스타를 향해 전 국민이 거대한 '팬덤'을 형성한 모양새다. 물론, 이것을 '팬덤'에 비유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남는다. 그 발발과 기원에 관해서도 많은 고민은 필요할 테다. 하지만 시민들이 정치를 놀이처럼 즐긴다는 뜻의 '폴리테인먼트(politainment)'라는 개념이 성립한다면, 지금의 상황은 시민이 국가(격)를 즐기는 '스테잇테인먼트(statentertainment)' 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일찍 도착하여, 조금 여유 있게 신문을 살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유 있게 볼 필요가 없는 날이었다. 오늘(10일)자 조중동은 결정적으로 같았다. 하나의 논조였고, 합본한다 해도 무방했다.

▲ G20 정상회의가 개막하는 2010년 11월 11일자 조중동 1면 비교

물론, 아주 사소한 차이는 있다. 중아일보는 갤럭시S가 너무 뛰어나 '스티브 잡스가 분을 참지 못해 갤럭시S를 내동댕이쳤다'는 칼럼을 실었다. 동아일보는 여전히 종편 선정 기준에 '총자산증가율' 항목이 있는 것은 문제라는 사설을 썼다. 조선일보는 1등 신문의 위세를 보여주듯 단독으로 오바마 대통령 인터뷰를 했다.

그 정도뿐이다. 사소한 문제 너머의 헤드라인(headline)은, 지면배치는 완전히 같았다. 신문에 있어 1면 헤드라인(headline)은 결정적 문제이다. 추상성을 배제하고 구체성을 표출해야 한다. 개념적으로 그렇고, 실제적으로도 그러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기사의 특징 또는 정파성을 간명하게 표현하는 캐치프레이즈와 같다.

그런데 오늘자 조중동은 똑같은 배열과 판박이의 사진을 '공유'했다. 결정적 존재감을 포기한 것이다. 주요국 정상들이 입국하는 사진을 같은 프레임으로 편집했다. '세계의 시선이 한국을 보고 있다'는 문장을 변용하여 '서브타이틀(subtitle)'을 쓴 것 마저 같았다.

행여,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조선일보가 일러준 대로 "한국이 세계 경제의 주역이 된 것,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물론, 조선일보도 <뉴욕타임스>에게 건네 들은 얘기다. 세계의 주역이 된 날인데 이정도 일치단결을 보여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과연, 그럴까? 처음은 아니다. 비록, 선진국은 아니었더라도 한국은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종종 국제적 무대의 중심에 서곤 했다. 최근에는 2005년 11월 18일 부산에서 열렸던 13차 아펙 정상회의가 있었다. 그 때 조중동은 어땠는지 찾아봤다. 최소한의 지금의 행위가 일관성은 있는 것이라면, 아펙 때도 지금과 유사해야 한다.

▲ 아펙 정상회의가 개막했던 2005년 11월 18일 조선일보 1면
물론, 아펙과 G20을 비교하는 것이 타당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흔히 G20의 대단함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계량적 수치를 동원한다. G20은 전 세계 GDP의 90%, 교역량은 80%에 담당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서 아펙은, 전세계 GDP는 60%, 교역량은 50%를 담당 한다. 단순 수치비교로 아펙은 딱 G20의 2/3 수준인 셈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지금 수준의 60% 비중 정도는 해줬어야 한다.

그런데 맙소사. 그런데 아펙 정상회의가 개막했던 2005년 11월 18일 아침 조중동 가운데 단 한 곳도 아펙을 헤드라인으로 뽑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북인권'을 다뤘다. 중앙일보는 '교사가 수업시간을 단축'했다는 것을, 동아일보는 '국정원이 중앙언론사 20여 곳을 도청했다'는 걸 헤드라인으로 다뤘다. 2005년 11월 18일을 오늘에 대입하면, 조선일보는 '국가인권위 파행사태'를 다룬 셈이고, 조선일보는 '학생인권 조례'를, 동아일보는 '청와대 대포폰 파문'을 G20보다 우선시 한 셈이다. 대입을 하면서도 뭔가 불경스럽다.

▲ 아펙 정상회의가 개막했던 2005년 11월 18일 중앙일보 1면&기사제목 캡쳐

▲ 아펙 정상회의가 개막했던 2005년 11월 18일 동아일보 1면&기사제목 캡쳐
G20의 본질이 무엇인지, G20 관련 보도의 성격이 무엇인지 2005년 11월 18일과 오늘을 비교하면 명확하다. 조중동에게 G20은 정권의 치적을 부각해주는 장이다. 영민하게 움직이고 있긴 한데 너무 진부하고 상투적인 수법의 '아부'라서 수가 뻔하다. 그래서 같은 것이다.

어제(9일)는 조중동이 사할을 걸고 있는 종편 채널 도입이 본격적인 스타트를 끊었다. 조중동은 G20과 종편 당첨을 인과 관계로 놓았다. 정권에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이 G20을 지배한다. 무례한 선전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대략적 행위 동기는 읽힌다. 앞서, 시민이 국가(격)를 즐기는 '스테잇테인먼트(statentertainment)'의 상황이라고 했다. 정정한다. 언론이 국가를 아니 정권을 추종하는 이중의 부역적 상황이다. 가당찮게도 여기에 국민이 동원되고 있다.

반 저널리즘적이라는 평가조차 너무 고상하다. 언론이라면, 최소한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 이건 언론이 아니다. G20 보도는 기사가 아니다. 하청 허가를 기다리는 용역 업체들의 값싼 로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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