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다. 한동안 대만에서 소녀시대를 성상납과 연관시키는 비방방송을 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었다. 이것은 심각한 혐한류의 문제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사화됐다.

특히 요즘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는 소녀시대에 성상납이라는 키워드가 연결된 것은 네티즌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이런 걸 보고 ‘섹시한’ 기사라고 한다. 너무나 자극적이어서 누구라도 클릭을 안 하고는 못 배기게 하는 소재들 말이다.

최근 들은 소식으로는, 한 매체에서 이와 관련된 기획을 준비하다가 접었다고 한다. 통역까지 대동해서 문제의 프로그램을 봤지만 국내에 알려진 것만큼 심각한 내용이 아니었고, 현지 사정을 알아보니 혐한류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니어서 접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깜’이 안 되는 소재였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무서운 이야기인 것은 우리 자신의 문제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난 그 대만 방송을 본 적이 없다. 따라서 그 방송이 심각한 내용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큰 틀에서 봤을 때 혐한류 자체가 별로 크지 않은 상황이고, 이럴 땐 그렇게 자극적인 내용을 부각시키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히 판단할 수 있다.

혐한류가 별로 크지 않다는 것은 한류의 인기가 증명한다. 혐한류가 아주 컸다면 한류가 죽었어야 한다. 현실에선 정 반대이니, 혐한류가 우리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그날의 댓글 순위에 오르내릴 만큼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번에 취재에 들어갔다가 기획을 접었다는 그 매체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문제의 방송내용 자체도 관점에 따라 달리 볼 여지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아주 많은 우리 언론들은 대만 방송사가 소녀시대와 성상납을 연결시켰다며 이것을 대단히 심각한 사례로, 혐한류가 도를 넘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한국 우롱 절정’이라는 카피까지 터졌다. ‘대만이 한국을 우롱했다고?’ 당연히 우리 네티즌은 흥분했다.

- 매체의 증오장사와 네티즌의 분노 -

소녀시대와 성상납을 연결해서 대단히 중대한 사건인 것처럼 보도한 많은 매체들의 진정한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미녀들의 수다>의 베라 사례를 생각해보자. 한때 베라가 유럽에서 한국을 비하하는 책을 냈다는 기사들로 인터넷이 떠들썩했었다.

그때 아주 많은 매체들이 베라가 한국을 비하했다는 소식을 확정적으로 전했다. 물론 기사내용은 애매했지만, 기사의 인상을 결정짓는 제목 카피가 사건을 확정적으로 느끼게 했다. 당연히 네티즌은 베라에게 분노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그 어느 매체에서도 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저 베라가 한국을 비하했다고들 하니까, 너도나도 기사를 낸 것이다. 대단히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카피와 함께. 이때 그 매체들의 진정한 관심사가 무엇이었을까?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기사 장사’다. 민족감정을 건드리는 기사는 대단히 폭발력이 큰 것이어서, 야한 기사 이상으로 장사가 잘 된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민족감정관련 기사가 노출 화보보다 오히려 더 섹시하고 선정적이다.

우리 매체들은 오직 이런 섹시함에만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베라 사례뿐만이 아니라, 이병헌의 헐리웃 영화가 개봉됐을 때도 그랬다. 당시 일본의 한 개인이 유감 표명 비슷하게 한 것을 한국 매체가 대단한 이병헌 폄하인 양 보도해서 네티즌의 분노를 유도했었다. 김연아가 세계1위를 할 때도 일본인들이 김연아를 모욕하는 듯한 기사들을 내보내 증오를 생산한다. 조금만 유심히 기사들을 살펴보면 이런 사례는 언제나 찾아볼 수 있다.

혐한류 관련 보도들도 그렇다. 매체들의 진정한 관심사가 한류의 미래일까 아니면 혐한류 보도의 섹시함일까? 단연 후자로 보인다. 이번엔 특히 소녀시대와 성상납이 연결되니 후끈 달아올랐던 것 같다.

- 혐한류 민감증이 혐한류 키운다 -

혐한류 보도들은 당연히 네티즌의 민족감정을 자극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기사 장사는 잘 된다. 그런데 우리 네티즌이 상대국에 대해 악플을 쏘아대면 당연히 상대국의 민족감정도 고조된다. 그러면 상대국에서 한류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의 입지가 강화된다. 그에 따라 혐한류가 커지며 한류는 죽는다.

즉 한류를 걱정한다며 혐한류 기사를 내는 언론이 사실은 한류를 죽일 수 있는 것이다.

대중은 언제든지 배타적 민족감정에 휩싸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은 언제나 대중의 열기를 잠재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 언론이 오히려 대중의 증오를 부추기는 ‘떡밥’을 난사하고 대중이 거기에 당연하다는 듯이 분노로 화답하는 사회는 무서울 수밖에 없다.

진정 한류를 걱정한다면 혐한류에 예민해져선 안 된다. 혐한류는 한류의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한류가 메이저라면 혐한류는 마이너로서 언제나 함께 가게 되어있다. 이쪽에서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순간 혐한류가 메이저로 큰다.

물론 혐한류를 걱정할 필요는 있는데, 그건 상대국을 공격하는 형태가 아니라 우리 내부를 반성하는 형태여야 한다.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고 공격적인 언론과 네티즌들의 문제라든가, 만연한 인종차별, 그 외 우리 대중문화계의 후진적 행태를 개선하는 데에 에너지가 집중돼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혐한류 관리법이다.

문화를 수입하는 쪽에서 경계하는 건 당연하다. 문화를 수출하는 쪽이 무조건 보다 관대해져야 한다. 서로 상대국을 공격해봐야 보내는 쪽만 손해를 볼 뿐이다. 지금 당장은 한류 열풍의 시대이고 혐한류는 문제 되지 않는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한국문화의 득세를 반가워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고 동남아에서도 한국에 대한 악감정이 차차 생길 것이기 때문에(안 생기는 게 이상하다), 혐한류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그런 흐름에 대한 최선의 대처가 바로 이쪽에서 보다 관대한 입장을 취해 민족주의적 적대구도를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문화산업의 경쟁력과 상대국에 대한 배려를 높인다면 혐한류가 한류를 잡아먹는 일은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 진정한 한류의 적, 혐한류의 위험은 우리 내부에 있는 것 같다. 증오, 분노, 차별과 그것을 이용하는 상업주의. 그것이 무섭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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