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일보 조용수 무죄’ 기사는 2단.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 회고록 발간 기사는 3단.

오늘자(17일) 조선일보가 ‘선보인’ 편집이다. 물론 전자는 사회면(10면)에 후자는 사람들(30면) ‘소식’란에 실리는 차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조선일보는 전자보다는 후자 쪽에 방점을 실었다는 점이다.

상식적인 내용의 판결내용 그리고 47년만의 무죄

▲ 조선일보 1월17일자 10면.
법원이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북한을 찬양했다는 누명을 쓰고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당한지 47년 만의 일인 데다가, 이번 판결이 2005년 12월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재심을 권고한 사건 가운데 첫 판결이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번 재심에서 조용수 사장과 함께 기소돼 징역 5년이 선고됐던 양실근씨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조선일보가 이 사안을 10면에 2단으로 다룬 것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조선일보가 민족일보 조용수 무죄를 다룬 것 자체가 이례적인 사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찬양과 국가보안법에 대해 조선일보가 그동안 보인 태도를 상기하자.

하지만 같은 날 30면에 실린 조선일보 기사는 크기와 편집에서도 ‘짜증’과 ‘불편함’을 느끼게 하지만 무엇보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분노’마저 자아낸다.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이 조선일보와 함께 해온 55년의 세월을 정리한 회고록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김영사 간행)를 소개하고 있는 이 기사는 한국현대사와 언론사에 대한 조선일보식 해설과 세계관을 다시 한번 극명하게 보여줬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회복할 수 없는 정도의 중증인데, 일부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 권력의 탄압에 맞서 정면 대결 벌였다”

“방 명예회장이 권력의 탄압에 맞서 때론 정면 대결을 벌이고 때론 신문사의 존립을 고민하면서 갈등하는 모습들도 이 책에는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1964년 정부가 언론자유를 옥죄는 언론윤리위법을 시행하려 하자 조선일보는 ‘옥쇄’를 각오하고 여기에 반대의사를 표명한 뒤 권력의 노골적인 탄압에 시달리게 된다. 1973년에는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지만 유신의 서슬 아래 모든 언론이 침묵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우휘 주필이 한밤중에 발행인도 모르게 윤전기를 세우고 이 사건을 규탄하는 사설을 실은 뒤 사표를 남기고 잠적해 버린 ‘대형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 조선일보 1월17일자 30면.
조선일보가 역대 정권과 어떻게 ‘유착관계’를 맺으면서 압축적 성장을 해왔는지는 이미 언론보도를 비롯해 언론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도 ‘증명’된 바 있다. “권력의 탄압에 맞서 때론 정면 대결을 벌이고 때론 신문사의 존립을 고민하면서 갈등하는 모습들도 이 책에는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조선일보와 방우영 명예회장의 입장일 뿐이라는 말이다.

이 기사를 보면서 짜증과 불편함을 느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조선일보 사고에나 실을 법한 기사를 자시 지면을 이용해 ‘대대적으로’ 내보내는 행태에 ‘짜증’이 났고, 하필이면(?)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이 47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소식이 실린 날, 방우영 명예회장의 회고록 발간 소식을 접했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한국언론사에 있어 대척점에 서 있을 법한 두 인물이 같은 날짜 조선일보 지면에 ‘조선일보식’으로 실려 있다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 “권력의 탄압에 맞서 때론 정면 대결을 벌이고 때론 신문사의 존립을 고민하면서 갈등하는 모습”은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에게 어울리는 표현이 아니다.

지난날 조선일보의 과오에 대해 사과부터 하는 게 순리다

▲ 한겨레 1월17일자 1면.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재심에서 재판부는 “중립화 통일론, 남북 학생회담 지지 등 당시 민족일보가 보도한 기사들이 북한을 찬양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 “전제 기사 내용을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해 신문사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밝혔다.

지금 보면 상식적인 수준의 평이한 내용이지만 당시에는 한 신문사 사장의 목숨을 강제로 앗아갈 만큼 ‘위험한 발언’이었다. 민족일보 폐간과 조용수 사장 사형이 ‘사법살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박정희 정권 시절 대표적 언론탄압으로 그리고 한국 언론의 암흑시기로 기억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해야 되는 것은 한국 언론의 암흑시기라는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조선일보가 급성장을 해왔다는 점이다.

“방 명예회장은 1975년 조선일보 기자 30여 명이 회사를 떠나야 했던 ‘3·6사태’의 전말을 상세히 밝히면서 ‘이 일은 여전히 내 마음의 멍에로 남아 있다’고 썼다.”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회고록 기사 가운데 일부다. 조선일보 기자 30여 명이 회사를 떠나야 했던 ‘사태’에 대해 마음의 멍에가 남아 있는 방 회장이 그동안 조선일보 보도로 인해 피해를 겪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마음의 멍에로 남아 있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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