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말 개봉한 ‘아메리칸 갱스터’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발전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평가를 제기해본다. 물론 형사와 암흑가 두목이 쫓고 쫓기는 캥스터 무비의 전형을 따르고 있어 영화적 재미도 선사하고 있다. ‘서로의 세계를 건 운명적 대결!’로 읽힐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핵심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발전 양상이다.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 포스터.
1968년 뉴욕 암흑가의 두목 범피가 죽음을 맞이하자 심복이었던 프랭크 루카스(덴젤 워싱턴)는 마약 유통과정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켜 단숨에 막대한 부와 명예를 거머쥔다. 이러한 혁신적 변화는 영화상에서 진보로 표현되며 동종 업계를 불안에 떨게 한다. 프랭크 루카스가 법망에 걸려들어 단죄를 받게 된 까닭도 결국 동종 업계의 질서를 파괴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난다.

영화 후반부, 형사 리치 로버츠(러셀 크로우)는 프랭크에게 “너는 미국에서 하나의 상징이 됐다. 성공한 흑인 사업가. 네 존재는 진보를 상징하고 그것은 안정적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라고 정의했다.

프랭크가 도입한 혁신적인 마약 유통과정을 살펴보기에 앞서 두목 범피가 죽음을 맞기 전 프랭크와 나눴던 대화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두목 범피는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소규모 영세 상인이 위기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주인이 가게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점원이 대신하고 있다며 미국 자본주의가 문제 있다는 말을 꺼낸다. 범피가 죽음을 맞는 곳은 공교롭게 대형마트다. 범피는 낡은 유통방식을 상징하며 이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다. 프랭크는 범피가 문제 삼는 유통방식을 오히려 확대해낸다.

프랭크는 베트남전의 군인을 이용해 태국의 마약 생산자와 직거래를 성사시킨다. 그 전까지 마약의 유통과정에 경찰이라는 중간 상인이 존재했던 것으로 영화상에 나타난다. 즉 경찰이 압수한 마약을 마약상이 넘겨받아 이를 희석해 수요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프랭크는 이러한 중간 과정을 없애고 생산자와 직거래를 튼다. 프랭크가 직거래를 통해 비교할 수 없는 고품질의 ‘블루매직’이라는 상품을 생산, 저가에 유통시킨다. 당연히 마약 시장은 프랭크에게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프랭크가 이뤄낸 마약 유통과정의 혁신은 영화상에서 진보로 표현된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유통 과정의 단순화이다. 영화상에서 프랭크는 진보의 대가로 법의 단죄를 받게 되지만 이러한 유통 과정의 변화는 현재에선 아주 일반화된 틀을 갖추고 있다. 현재에서는 진보가 아니라 대세라는 얘기다.

대한민국 도심의 풍경을 구성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대형마트다. 주로 대기업이 거느리고 있는 회사가 주류를 이룬다. 대형마트는 상품 유통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 상품 생산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마트, 홈플러스라는 상표가 달린 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형마트도 변화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유통이 더욱 단순화되고 있으며 대형마트로의 집중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에서 범피의 말을 떠올려 본다.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대형마트의 성장 속에 뒤로 밀려나가는 것은 무엇일까’하는 생각도 떠올려본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 주변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 얼마나 버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구멍가게를 찾아보기 더욱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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