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일상이 반복되던 군부대에 양 어깨에 별을 잔뜩 달고 계신 장군님께서 사무실을 벗어나 갑자기 산책을 하시겠다며 유난을 떠십니다. 장병들이 잘 생활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겠다며 급작스럽게 부대 곳곳을 친히 둘러보기로 하신 것이죠. 그런데 영내를 유유히 산책하시던 그분께서 갑자기 뜬금없이 옆 부대에선 예쁜 화원이 생겨서 장병들의 심신 함양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데 우리가 무엇이 부족해서 그런 것도 없냐며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하시고 사무실로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어마어마한 장비들이 투입되고 장병들은 난데없는 땅을 뒤엎으며 화원을 만들기 위한 예정에 없던 생고생을 시작하죠. 그렇게 만들어진 화원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과연 그 완성도를 장담할 수 있을까요?

이런 우스꽝스러운 코미디와 MBC의 김재철 신임사장이 Mnet의 슈퍼스타K의 시즌2를 보며 우리는 왜 그런 것을 못 만드냐는 말 한마디가 만든 새로운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이라는 참사가 과연 무엇이 다를까요? 보는 내내 그 헐거움과 어설픔에 어처구니가 없었고, 이를 위해 투입된 규모와 동원된 화려한 출연진의 면면에 한숨이 나오더군요. 도대체 이 프로그램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요?

처음부터 거창하게 자랑했던 과거 MBC의 스타발굴 프로그램의 나열은 우린 사장님이 뭐라고 하셔서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란 자격지심을 스스로 고백한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잘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고, 지금 한국 가요계를 지탱하고 있는 우수한 가수들을 무수히 배출했던 그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왜 지금은 명맥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스스로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한계를 자인하며 폐지시키고, 외면해놓은 과거의 유산들을 자랑스레 꺼내놓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어요.

뭐 그렇다 칩시다. 그럼 이 프로그램이 뽑고자 하는 최후의 일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나요? 그들만의 고유한 자랑이라는 멘토 시스템을 전면에 내세우며 관록의 가수, 작곡자들을 섭외한 것을 뽐내고 있지만 이들이 밝히는 자신들의 기준과 성향은 저마다 제각각입니다. 멘토 이외의 전문가들 역시도 바라는 바를 말하고 있지만 이 역시도 심하게 엇갈리죠. 게다가 프로그램이 올바른 성공의 예시로 내세우는 이들은 하나같이 오랜 기간 동안 소속사에서 훈련을 거듭한 뒤에 데뷔한 아이돌들입니다. 이래서야 오디션을 통해 아이돌 연습생을 뽑겠다는 것인지, 개성 넘치는 프로 가수를 선별하겠다는 것인지, 혹은 멘토가 원하는 재능들을 발견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요. 2PM을 비롯한 아이돌 그룹들은 왜 거기서 축하 공연을 하고 있는 건가요?

선별과정은 또 어떻구요. 아직 최종 오디션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이고, 이전 한 번의 오디션조차 3주조차도 안 된 짧은 시간이 지났을 뿐입니다. 누가 어떻게 뽑힐지, 그가 어떤 사정을 가진 이들인지, 누가 어떤 멘토와 어울리는 재능을 가졌는지 찬찬히 검토할 시간도 여유도 부족하죠. 그야말로 실시간으로 촬영되고 방송되는 급박한 일정 속에서 혹 어느 누가 미처 사전에 걸러내지 못한 과거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 애초의 기대했던 재능과는 다른 부분이 발견되어 담당 멘토와 충돌을 일으킬 위험도 다분합니다. 그 짧은 시간동안 과연 그들이 대중 앞에 서서 무대를 꾸밀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으로 밀어붙이는 것들 투성이에요.

이런 위험천만한, 아무도 보장할 수 없고 누구도 책임지지 못할 불안 불안한 곡예에서 결국 그로 인해 발생할 상처와 아픔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가수의 꿈을 가지고 도전할 사람들입니다. 위대한 탄생은 소중한, 하지만 결코 달성하기 쉽지 않기에 더더욱 애절한 이들의 꿈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갑자기 뉴스에서 호출되어 예능 마이크를 잡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박혜진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5인의 멘토와 같은 그야말로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쟁쟁한 이들. 3억원이라는 사상 최고액의 상금과 화려한 설비들은 그냥 그 허술함을 가리기 위한 얄팍한 포장지일 뿐입니다. 공영방송이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다니. 사장님 한 명 잘못 선출된 것뿐인데, 정말 여러 사람이 괴상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이건 짜증이 아니라 화가 날 지경이네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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