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이종석표 ‘어른 연하남’ 세계가 열렸다 <로맨스는 별책부록> (1월 26~27일 방송)

tvN 주말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드라마 속 이종석은 늘 키다리 아저씨였다. 대개 키다리 아저씨는 여자 주인공보다 나이도 많고 돈도 많고 빽도 많아서 여자를 보호할 만한 무기들이 많은 캐릭터였다. 그러나 이종석은 나이도 어리고 학생 신분인데다 가진 것 없이도 여자 주인공을 보호하는 키다리 아저씨였다. 특히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여주보다 한참 어린 고등학생 역할이었지만, 속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이용해 여주를 지켜주고 진실을 밝히는 역할이었다.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도 이종석이 연기하는 차은호는 아는 누나를 사랑하는 키다리 아저씨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비주얼과 스펙은 전형적으로 인기 많은 차도남이다. 잘나가는 편집장 겸 스타 작가 겸 교수 겸 인기 팟캐스트 진행자에, 잘생겼고 인기도 많지만 사랑은 믿지 않는 스타일. 여자 친구 있느냐는 제자들의 물음에 “응 있어 내일 모레 상견례할 거야”라는 거짓말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던지고, “나도 잘생긴 거 알아”라는 자뻑 대사도 뻔뻔하게 내뱉는다.

학생들에게는 쿨하고 시크하게 말하지만 단이(이나영) 누나에게는 화난 순간에도 보조석 문 열어주고 안전벨트까지 채워주는 배려심을 보인다. 결혼식 날 도망친 ‘아는 누나’ 단이를 무작정 끌고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대신, 공항 가서 아무 티켓이나 끊어서 도망갈까 라고 위로하는 등 누나의 마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센스도 겸비했다.

tvN 주말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무엇보다 자신의 선의를 생색내지 않는 모습이 이종석표 키다리 아저씨의 특장점이다. 남몰래 누나 남편에게 돈까지 빌려주면서 생색은커녕 내색도 안하는 어른스러움, 자신의 출판사에 신입사원으로 취직한 단이를 위해 옷까지 선물하는 따뜻한 마음. 혹여라도 단이가 부담을 느낄까봐 “보기엔 멀쩡한데 하자 있는 옷”이라고 거짓말하고 단이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몰래 계산을 하는 눈치까지 있다.

키다리 아저씨도 많고 연하남도 많지만, 그 둘을 합친 캐릭터는 흔치 않다. 이종석은 그간 해 온 작품에서 자신만의 멜로남 캐릭터를 확고히 다졌다. 모성애를 자극하는 연하남이 아니라 본인이 모성애를 장착한 어른 같은 연하남이다. 누나들을 꼭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바라보는 그 눈빛은 그 어떤 연하남들에게서도 보지 못한 눈빛들이다. 이런 이종석을 군 입대 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로맨스는 별책부록>이다.

이 주의 Worst: 꼭 시한부까지 만들어야 속이 시원했냐! <왜그래 풍상씨> (1월 30일 방송)

KBS2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

네 명의 동생들을 위해 아내와 자식까지 내팽개치고 희생하는 장남 이풍상(유준상). 마치 80년대 가장을 보는 듯한 진부한 설정이었지만 주말극을 장악했던 문영남 작가의 월드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아버지 혹은 가장, 장남상이었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용인할 수 있는 설정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우울증, 딸의 탈선, 동생들의 사고행진도 모자라 시한부 선고라니. 이풍상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친 듯하다. 게다가 정상(전혜빈)의 남편이자 이풍상의 주치의 강열한(최성재)은 가족의 간 이식만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마치 동생들 중에서 기증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을 하듯이 말이다.

이풍상은 늘 동생들 뒷바라지만 하느라 아내와 딸을 외면했고, 아내는 그 때문에 우울증 약까지 복용하고 이혼 선언에 가출까지 감행했다. 그런데도 이풍상은 “난 이혼 생각해 본 적 없어. 며칠 뒤면 풀어져”라며 아내의 가출을 사소하게 여겼다. “좀 삐져서 며칠 있다고 오라고 한 겁니다”라고 장인어른께도 별 문제 아니라고 치부하는 태도를 보였다. 딸을 절도범으로 오해한 상황에서도 아내와 딸에게 사과하기는커녕 “내일 (정상이) 결혼식인데 집에 가서 자자”면서 딸에 대한 사과보다 여동생 결혼을 더 우선시하는 면모를 보였다. 동생들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남자가 아내의 일은 ‘알아서 돌아오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을 갖고 있는 태도가 시청자들의 답답함과 분노를 동시에 유발시킨다.

KBS2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

과연 이풍상의 간암 선고 소식을 듣고 어떤 동생은 돈을 보태고 어떤 동생을 간을 기증하고 어떤 동생은 간호를 한다고 치자. 그렇게 동생들이 개과천선했다고 해서 시청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까. 궁지로 몰아넣으며 억지로 쥐어짜듯이 만들어진 쾌감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채 김빠진 사이다가 된다.

마치 문영남 작가의 작품에서 막장 코드만 골라내 이풍상 캐릭터에 응축시킨 느낌이다. 꼭 주인공을 궁지로 몰아넣고 죽음의 위기를 겪어야 정신 차리는 동생들 캐릭터를, 과연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시한부 선고를 계기로 동생들이 정신 차리고 아내가 돌아올지 몰라도, 시청자들은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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