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G20 홍보 포스터 10여 장에 낙서한 혐의로 모 대학 강사 박모 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박 씨는 대학생 박모 씨와 함께 지난달 31일 오전 1시30분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주변에 붙어 있던 G20 홍보 포스터 10여 장에 검은색 스프레이로 쥐 그림을 그렸다
빠르다. 정신없다. 몰아친다. 요 며칠 세상 돌아가는 꼴이 그렇다.

11월 첫날 국회에서 '청와대 대포폰 사용'과 '영부인 로비 몸통설'이 터졌다. MB는 진노했고 화들짝 놀란 청와대는 즉각 여당에 지휘권을 발동했다. 여당의 총공세에 야당은 극단적 대치 지형을 갖췄다. 청와대의 전략은 철저히 이중적이다. 대포폰 사용 논란에는 가능한 침묵한 채 '영부인 로비 몸통설'에만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 사이 검찰은 사정을 몰아쳐 가고 있다. 매일 새로운 수사를 벌이고 있어 직전에 누가 수사를 받고 있었던지 잊을 지경이다. 한화그룹, 태광그룹, C&그룹의 비자금 수사에 이어 청목회를 띄웠다. 1년 넘게 중수부를 놀렸던 검찰은 그간 밀린 일을 한 번에 하려는 것인지 거침이 없다. 사정의 범위가 걷잡을 수 없이 넓어지면서 당연지사 앞에 것들에 대한 관심은 묻히고, 새로 밝혀지는 것들에 대해서는 시들해지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양새이다.

행정 조직들은 G20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검경은 G20 포스터에 낙서를 한 이에게 영장을 청구했다. 서대문 구청은 G20 기간 중에 쓰레기를 수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공무원들은 오늘도 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서 애꿎은 거리를 쓸고, 닦고 또 쓸고 있다. 국민을 조여야만 G20이 성공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행정의 풍경이 단박에 수십 년을 거스른 것은 분명해 보인다.

MB가 빠질 리 없다. G20 전에 한미FTA 협상을 타결 짓겠노라며 나섰다. 본래 협상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상대 앞에선 느긋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MB의 협상은 그렇지 않다. 시한까지 못 박아 버리는 배포를 지녔다. MB의 배포를 미국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염려스러울 뿐이다. 미국은 '자동차' 부문에서 대폭적인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G20 전에 협상을 타결 짓기 위해 양보 말고 다른 묘안을 생각해 둔 것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이런 배포에 언론은 미국 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한 것이야 말로 FTA 협상이 타결될 징후라고 화답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곧 죽어도 헌재 판결 전에 종편 일정을 진행하겠다고 덤비고 있다. 사업자들조차 각종 절차와 기준이 미흡하다는 볼멘소리를 하고 있지만, 연내에 끝내겠다는 속도감만 작렬되고 있다. 언론 3단체가 천안함 어뢰에 '조개 껍데기'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밝혀내자 국방부는 하루 만에 그걸 떼어냈다. '자 이제 증거가 없어졌으니 됐냐'고 되물을 기세다.

면역이 생기는 걸까. 비극적인 속도감을 사람들은 희극적 처방으로 맞서고 있다. 대포폰 논란과 관련하여 이례적으로 며칠을 침묵하던 청와대는 단지, '차명폰'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행정에 사용했으니 '행정폰' 이기도 하다는 설명이 추가됐다. 청와대의 눈물겨운 말장난에 한 네티즌은 "그렇다면 앞으로 범죄자들이 쓰는 대포폰은 '업무폰'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우스운 그래서 왠지 서글픈 제안이다.

G20은 더욱 싸늘하고 차갑다. G20 홍보 포스터에 '쥐'를 그렸단 이유로 영장이 청구되었다는 사실은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몇몇 법률가들이 "도대체 그 영장을 지휘한 '검새'스러운 검사가 누구냐"고 수소문하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 쥐를 패러디하고 있다. 영장을 청구한 검경의 진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설익은 충성심으로 포스터 홍보만 톡톡히 시켜준, 괜한 긁어 부스럼만 만든 꼴이 됐다.

G20 기간 중에 쓰레기를 내놓지 말자던 서대문 구청의 못 말리는 G20 사랑은 서울시청에 의해 간신히 제어되었다. 서울시가 서대문구를 향해 G20 기간에도 쓰레기를 수거하라고 타일렀다. 네티즌들은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서울 G20 정상회의 기간 중 음식물 쓰레기 배출을 자제해주십시오'라던 서대문 구청을 문구를 패러디하여, '세계인이 우릴 지켜보니 ㅇㅇ를 하지 맙시다'는 문장을 만드는 놀이를 하고 있다. ㅇㅇ를 채우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배꼽 빠지게 웃으면서도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 것인지를 생각하면 차라리 '정신줄'을 놓고 지내는 편이 낫지 싶다.

화난다. 어이없다. 그래서 차라리 웃어야 한다. 요 며칠 세상 돌아가는 꼴이 그렇다. 앞으로 종합편성채널이 생겨 1개일지 3개일지 하여간 몇 개일지는 모르지만 수구언론이 운영하는 방송사가 더 생기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다면 그땐 또 얼마나 웃긴 일이, 웃어야 할 일이 많아지게 될까. 써야 할 기사가 많아서가 아니다. 사방 천지서 번뜩이는 속도들, 그저 웃음으로 승화할 수 밖에 없는 속도들 정말 비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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