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언론의 관계는 불편하다. 권력, 자본에 대한 비판의 시선을 놓지 않는 언론일수록 불편한 관계는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자본을 쥔 채 ‘광고’라는 이름으로 언론을 길들이려는 기업 앞에 언론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뉜다. 광고를 받으면서 순응하거나, 아니면 이를 거부하면서 힘겨운 ‘밥벌이의 힘듦’을 스스로 감내하거나. 삼성은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2007년 10월 이후 삼성에 비판적 논조를 보인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대한 광고를 중단했다. 언론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삼성이 광고를 중단한 이 시기동안 두 신문에 속한 구성원들이 얼마나 팍팍한 삶을 경험했는지 쉽게 목도했을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때로는 ‘광고’라는 수단을 거치지 않더라도, 그 기업이 가진 힘과 권력만으로도 언론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우스워지는 지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 서울 여의도 MBC사옥 ⓒ미디어스
최근 MBC 뉴스 시스템에 올라온 취재 정보 뿐 아니라 당일 방송될 뉴스 내용과 편집 순서가 담긴 큐시트 등 내부 정보들이 MBC 직원에 의해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조정실 오 아무개씨에게 흘러간 사실이 확인됐다. IP주소가 삼성으로 돼 있는 컴퓨터에서 MBC 보도국 뉴스 시스템에 장기간 접속한 사실도 확인됐다.

삼성은 이번 일과 관련해 ‘유감’을 표하면서도 “회사 차원이 아닌 개인적인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과연 이 말을 믿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싶다. 그 동안 삼성이 MBC 보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이 이미 드러난 마당에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뉴스 정보 시스템을 봤다는 삼성 쪽의 주장을 믿는 이들은 거의 없지 않을까.

삼성이 MBC보도에 ‘관여’한 사례들

삼성SDS 관련, 삼성전자 간부 기사 수정 요구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민주언론실천위원회가 지난해 10월 발행한 노보에 따르면,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이 불법이라고 판결났던 8월14일, 삼성전자 간부가 <뉴스데스크> 톱기사 내용을 미리 파악해 MBC간부에게 직접 전화를 해 기사 수정을 요구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뉴스데스크>가 나가는 밤 9시가 되기도 전에 삼성은 뉴스의 톱기사 내용을 미리 파악해 기사의 수정을 요구했으며, 당시 삼성의 한 임원은 ‘MBC 모 기자에 따르면…’이라고 방송도 되기 전에 기사 내용을 파악했다.

삼성 노조 설립 관련, 삼성 홍보팀 취재 기자에게 전화

지난 7월, MBC의 김 아무개 기자는 삼성SDS의 한 직원이 노조 설립을 시도하는 사내 메일을 동료들에게 돌렸다가 회사에 의해 삭제된 사안을 취재했다. 기자는 <뉴스데스크>에 보도할 목적으로 삼성 직원을 단독으로 만나 인터뷰했고, 삼성 쪽의 반론과 민주노총의 입장까지 취재했다. 그러나 담당 부장과 담당 데스크는 <뉴스데스크> 용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고, 결국 기사는 <뉴스투데이>를 통해 보도됐다.

이 과정에서 삼성그룹 홍보팀 이 아무개 상무는 취재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 기사) 안했으면 좋겠다. SDS건은 하면 안 될텐데. 하더라도 좀 살살 해 달라. 담당 부장에게 기사 좀 쓰지 말라고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이 아무개 상무는 담당 부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잘 봐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 ⓒ연합뉴스
이 뿐이 아니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근로자 가운데 백혈병 환자가 발생했다는 MBC보도와 관련해서도 삼성은 적절하지 못한 방법으로 취재 기자에게 대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MBC 취재 기자가 삼성테크윈과 관련한 K9 자주포 납품 비리 혐의에 대한 확인을 들어가자 삼성테크윈 간부는 MBC를 방문해 담당 부장을 직접 찾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삼성이 MBC보도에 대한 불편함을 감추지 않고, 지나칠 정도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결과, 삼성을 향한 MBC보도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삼성 관련 기사가 방송 이전에 삼성 쪽에 노출 되는 일이 몇 차례 발생한 뒤, MBC 내부에서는 “뉴스가 유독 삼성 기사에 너그러운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 때 MBC는 삼성 쇄신안 등 삼성 관련 보도가 ‘뛰어나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올 해 들어 “이건희 보도가 삼성 사내 방송을 보는 것 같았다” “보도에서 삼성의 어두운 그림자는 거의 언급이 없었다”는 내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삼성’이라는 거대한 기업이 지속적으로 MBC보도에 대한 불편함을 내비치면서, 기자들 스스로 자신의 보도를 되짚어 보는 자기 검열도 늘었다고 한다. 어쩌면 삼성은 지속적으로 MBC보도에 관여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이미 이뤘는지도 모른다.

언론의 비판을 달가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언론의 비판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기업 뿐 아니라 정부, 정치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지만, 과거 정권에 비해 유독 MBC에 대한 노골적인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는 정부조차도 그 비판을 피하기 위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언론사 내부의 정보를 캐지는 않는다. 언론사의 당일 뉴스 내용을 비롯한 핵심 정보들이 고스란히 유출된 이번 사안에 대해 ‘또 하나의 가족’을 자부하고 있는 삼성이 그저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기에는 사안의 중요성이 너무나 크다.

과거, 삼성이 반도체, 양문형 냉장고 등 핵심 기술이 외부로 유출되었을 때 펄쩍 뛰던 모습이 생각난다. 지금, MBC노조를 비롯한 MBC구성원들이 이번 MBC 정보 유출 사안에 대해 펄쩍 뛰고 있음에도 느긋한 태도로 관망하고 있는 삼성의 현재 모습과 오버랩된다. 이런 상황에 대해, MBC노조는 4일 발행한 특보를 통해 “참을 수 없는 ‘삼성’의 뻔뻔함”이라고 표현했다. “참을 수 없는 삼성의 뻔뻔함”이라는 이 한 마디에 공감하는 언론인이 얼마나 많을까. 단, <중앙일보>는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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