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박근혜 정부 2인자'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자유한국당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황 전 총리는 문재인 정부를 "무덤에 있어야 할 386 운동권"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세력의 2인자'였던 과거는 잊은 듯하다.

29일 오전 한국당 당사에서 황교안 전 총리가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황 전 총리는 출마 선언에서 문재인 정부를 강도높게 비난했다. 황 전 총리는 "지금 이 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됐느냐. 도전은 멈췄고, 꿈은 사라졌다. 민생은 무너지고 각박한 현실 속에 공동체 정신은 실종됐다"며 "이 모든 고통과 불안의 뿌리에 문재인 정권의 폭정이 있다"고 비난했다.

황교안 전 총리는 "무덤에 있어야 할 386 운동권 철학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정을 좌우하고 있다"며 "철지난 좌파 경제실험 소득주도성장이 이 정권의 도그마가 됐다"고 말했다. 황 전 총리는 "이 정권과 손을 잡은 강성귀족노조가 노동개혁을 가로막고,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하청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소득을 탈취하면서, 정말로 보호받아야 할 서민들의 삶은 나락에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황교안 전 총리는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라며 "세계에서 가자 젊고 역동적이었던 대한민국이 '낡고 무기력한 나라'로 무너져가는 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황 전 총리는 "저는 과거로 퇴행하고 있는 위기의 대한민국을 반드시 되살려 내겠다"며 "이 정권의 경제 폭정을 막아내고, 국민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도약과 번영의 미래로 힘차게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9월 박근혜 전 대통령(오른쪽)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 (연합뉴스)

그러나 황교안 전 총리는 문재인 정부를 '무덤에 있어야 할 386 운동권'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자신에게 제기되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황 전 총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2인자'였다.

현재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후 직권남용, 뇌물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돼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2인자였던 황 전 총리는 버젓이 한국당 당권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운동권을 무덤에 있어야 한다고 비난하기 전에 자신의 과거 역시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친박 세력은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았다. 당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던 인사들은 역사의 뒤안길, 황 전 총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덤으로 들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황교안 전 총리는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5일 황 전 총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범이란 의혹이 있다"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난 정부에서 마지막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 국가적 시련으로 인해 국민들이 심려를 가지게 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지난 정부에서 함께 일한 모든 것을 적폐라는 이름으로 몰아가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황교안 전 총리는 북한 문제에서도 강경기조를 꺼내들었다. 황 전 총리는 "작년에 남북 정상이 세 번이나 만났고, 미북정상회담도 열렸지만, 지금까지도 북핵 폐기는 제자리 걸음"이라며 "김정은을 칭송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세력들이 당당하게 광화문 광장을 점령하고, 80년대 주체사상에 빠졌던 사람들이 청와대와 정부,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황교안 전 총리는 "과연 이 정권이 추구하는 통일과 국민 대다수가 생각하는 통일이 같은 것인지, 걱정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며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는 평화로운 한반도로 나아갈 수 없다. 북한의 독재와 인권탄압을 놓아두고 진정한 한반도의 새 시대를 열 수 없다"고 말했다.

황교안 전 총리는 "저는 국민의 삶과 안전을 지키는 길에서 단 한 발자국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며 "비굴하고 불안한 평화가 아닌 당당하고 지속가능한 평화로 국민 여러분과 함께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와 김정은 독재정권의 인권탄압 등은 동포인 한국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해결해야 할 국제적 과제다. 그런데 황교안 전 총리와 같은 강경한 주장만으로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한국의 우방인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내부에서 국경장벽 예산을 두고 장기 셧다운이 벌어지는 등 어수선하다. 그러면서도 북한과의 회담을 준비하는 움직임은 지속적으로 포착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은 북한과의 우의를 과시하고 있고, 일본은 한국과 초계기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이처럼 외교 관계에서 유연성 있는 대처가 필요한 상황에서, 황교안 전 총리의 주장처럼 외교와 대북관계를 제자리 걸음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황교안 전 총리의 주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대북제재 국면으로 회귀하자는 말로 풀이된다. 그러나 한국당 집권 시절 북한은 한국을 향해 도발을 반복했다. 핵실험을 강행하고 동해상에 수차례 미사일을 발사했다. 황 전 총리는 국민의 삶과 안전을 지키는 길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감수하는 삶인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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