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육우당의 죽음

육우당이라는 이름의 스무살 청년이 있었습니다. 글쓰기를 참 좋아하는 어린 시인이었던 그는 동성애자였습니다.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였지요. 곱슬머리에 작은 체구의 외모를 가진 이 어린 청년은 2002년 동성애자인권연대라는 이름의 단체에 발을 들였습니다. 성 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 비록 어리지만 열심히 활동했다고 합니다.

2003년 4월. 이 청년은 스스로 목을 매었습니다. 자신이 활동하던 단체의 사무실에 혼자 남아 불을 끈 채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주검이 발견되었을 때는 보랏빛 물감으로 온 몸을 색칠한 것처럼 창백했다고 합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동성애자를 두고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로 심판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지 20여일만의 일이었습니다. 육우당이 남긴 유서에는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수많은 성적 소수자들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반성경적이고 반인륜적인지…”

그로부터 7년. 유서 속에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 하늘로 가버린 청년 육우당은 동성애자들 사이에서만 기억될 뿐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잊혀졌습니다.

▲ 일간지에 실린 동성애 비난 광고
차별금지법 막으려는 기독교

기독교계는 다시 한 번 동성애자들을 마녀사냥 하듯 비난하고 있습니다. 게이들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오해로 가득찬 광고가 일간지에 버젓이 실리고 있습니다. SBS 주말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게이들이 다른 인물들처럼 평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로 벌을 받아야 할 동성애자들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달 15일. 저는 이 광고를 내고 있는 분들을 만나보았습니다. 바성연 집행위원 이요나 목사(갈보리 채플 교회)입니다. 생각보다는 친절하고 따뜻한 느낌의 목사였습니다. 이들은 왜 이런 광고를 내고 있는 걸까요.

그는 “동성애는 죄의 영역인데 <인생은 아름다워>가 동성애자의 삶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동성애자의 삶은 아름답지 않은데 드라마에서 미화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동성애자로 살아봤기에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40여 년간 동성애자로 살던 이 목사는 이성애자로 전환했다고 합니다.

지금 법무부는 (성적 지향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안의 입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법이 만들어지면 우리 사회 여러 분야의 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자그마한 법적 장치가 마련됩니다. 하지만 이 목사는 차별금지법안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차별금지법안이 통과하면 교회에서 ‘동성애가 옳지 않다’는 설교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차별금지법을 오해하거나 완전히 곡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자라고 해서 이 사회에서 차별받는 일이 없게 하자’는 취지에서 만드는 것이지 ‘동성애가 옳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을 처벌하려고 만드는 법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요나 목사처럼 동성애자였던 분이 성정체성 때문에 차별받아 목사가 되지 못하게 하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만드는 법입니다.

조국 교수(서울대 법학과)는 “동성애가 옳지 않다고 설교하는 로마 교황이 서구 사회의 ‘차별 금지법’으로 처벌받지 않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더군요. 하지만 이 목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을 위한 법을, 자신을 공격하기 위한 법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법무부는 매우 난감해 하고 있습니다. 아직 초안도 만들어지지 않은 법안을 두고 기독교계에서는 당장이라도 법이 만들어질 것처럼 연일 광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기독교계에게 법의 취지를 자세히 설명해봤지만 소용없었다더군요.

기독교계에서는 연일 법무부 홈페이지에 차별금지법 입법을 반대하는 청원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사회적 논의조차도 불가능하게 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 이요나 목사(갈보리 채플 교회) ⓒ허재현
동성애자들을 그만 괴롭히자

여러분은 기독교계의 이런 움직임을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이요나 목사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신념을 갖고 목회 활동 열심히 하십시오. 목사님의 신념을 존중하고 옳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차별금지법은 목사님의 목회 활동에 아무런 제한을 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동성애자로 살겠다’고 하는 분들은 차별받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좀 더 넒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어떨까요. 온갖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동성애자로 살겠다고 하시는 분들을 우리가 굳이 일간지에 끄집어 내어 비난하고 차별을 조장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취재를 위해 동성애자들의 인터넷 카페들을 두루 들러보았습니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밝고 유쾌하게 지내고 있었지만 한 켠에서는 여전히 수 많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상담글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차별금지법의 입법이 이번에도 좌초하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숨조차도 쉬기 힘들 정도로 힘들어 하는 또 다른 동성애자가 비관하고 목숨을 끊을 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이제 이들을 그만 힘들게 했으면 합니다.

지금 기독교계와 동성애자 사회에서는 소리 없는 총성이 울리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의 입법을 두고 양 쪽은 전면전 상태입니다. 이제 이 법의 입법을 결정해야 할 국회에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성적 소수자를 포함한 차별금지법 입법에 찬성이지만 민주당은 딱히 입장이 없는 상태입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성적 지향을 포함한) 차별금지법 입법을 반대하는 교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정당이 진정으로 민주주의의 원칙을 잘 이해하고 있는 지 지켜봐야겠습니다.

하늘에 있는 육우당. 그리고 온갖 차별과 멸시를 견디지 못한 채 소리없이 죽어간 수 많은동성애자들은 지금의 우리 모습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을까요.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