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12월18일 방북,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대화한 내용을 자신이 유출했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15일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했다. 정보기관의 수장이 다른 것도 아니고 ‘정보누설’을 이유로 물러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셈이다.

일단 김 원장의 해명은 이렇다. “방북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소위 ‘북풍공작’이 제기됐고,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국정원 쪽의 입장은 이렇다. “원장 방북 사실이 이미 언론에 공개됐고, 방북결과도 일상적인 것이어서 국가기밀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 한겨레 1월16일자 3면.
만약 국가기밀이고 국기문란이라면 이를 보도한 중앙일보는 어떻게 되나

김 원장과 국정원의 이런 해명과 입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작성했다’는 김 원장의 해명은 결국 문제의 문건이 언론보도를 전제로 작성됐다는 말인데, 김 원장은 15일 기자회견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문건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과 비보도는 공존이 어려운 말이다.

오늘자(16일) 아침신문이 김 원장의 ‘행태’에 강도 높은 비난을 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신문의 보도와 사설을 인용한다.

“사건의 배경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국정원의 자체 조사 결과는 믿기가 어렵다. 김 원장 개인의 섣부른 판단에 의한 ‘실수’였는지, 국정원 전체의 ‘조직적 범죄’였는지 규명해야 한다. 검찰의 수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한겨레 1월16일자 3면 <국정원장이 ‘언론정보원’ … 기밀유출 처벌 가능성> 가운데 일부 인용)

▲ 조선일보 1월16일자 사설.
“이렇게 보안의식이 허술하고, 공과 사를 구분할 줄 모르고, 아직도 뭐가 잘못인지 모를 만큼 책임감이 희박한 사람이 어떻게 국가정보기관의 장으로 발탁됐고, 남북정상회담 등 중대한 업무를 맡았는지, 기가 막힌다 … 그런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만큼 사임으로 모든 게 끝날 수 없다. 보고서 유출 행위에 대해 최대한 사법적 조치를 강구해야 하는 것은 물론, 진정한 유출 동기 및 그 동안의 직무에서 다른 허점이 없었는지도 철저히 밝혀야 한다.” (한국일보 1월16일자 사설 가운데 일부 인용)

인수위 이동관 대변인 “국기 문란행위” … 그럼 중앙일보는 동조자?

대다수 언론이 김만복 국정원장의 ‘행태’에 방점을 찍으면서 정보기관의 수장이 어떻게 국가기밀을 유출할 수 있느냐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이동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국가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해서는 안되고 있어서도 안되는 국기 문란 행위를 저지른 것”이라고 비난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중앙일보다. 김만복-김양건 대화록은 중앙일보의 특종으로 세상에 알려진 사건인데, 만약 김 원장의 문건유출이 국가정보 누설에 따른 국기문란 행위라면 이를 ‘특종보도’한 중앙일보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국가정보를 누설한 자에게 ‘동조한 세력’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국가의 ‘기밀정보’를 누설한 ‘공범’이 되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김 원장의 ‘의도’에 철저히 말려든 ‘피해자’가 되는 것일까.

▲ 동아일보 1월16일자 사설.
관련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오늘자(16일) 사설을 좀 유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동아는 “그의 행동은 특정 신문과 거래를 해서라도 위기를 모면해 보려 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규정했고 조선은 “누가 봐도 김 원장이 언론을 이용해 면담록을 일부러 공개되게 만들어 이 당선자에게 아부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이 이런 유치한 언론 플레이로 구명운동을 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 중앙일보 1월16일자 6면.
‘국가기밀 아니다’에 방점 찍은 중앙일보 … 입장 공식적으로 표명

‘특정 신문과의 거래’ ‘유치한 언론플레이’라는 표현이 주목을 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중앙일보는 김 원장과 거래를 한 것이 되고, 유치한 언론플레이에 ‘놀아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중앙일보의 오늘자(16일) 지면이 보수경쟁지인 동아 조선과는 약간 궤를 달리하는 양상이다. 대다수 신문이 국정원의 자체조사 결과에 대한 의문점에 방점을 찍었지만 중앙은 6면 <“단순환담 … 국가기밀 아니다”>에서 국정원의 자체조사 결과에 무게중심을 뒀다.

세간의 시선을 의식해선인지 같은 면 하단에 중앙일보의 공식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중앙은 <기밀 표시 전혀 안 해 … 명시적 비보도 약속 없어>(6면)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언론계 일부에서 보도와 관련한 책임론을 무분별하게 거론하는 데 대해선 명백히 사실 관계를 오도하는 것인 만큼 본지는 대화록의 입수와 보도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밝히기로 결정했다”면서 △해당 자료가 국익을 해칠 수 있는 국가 기밀 자료가 아니라고 판단해 보도했고 △국정원 측은 비보도를 전제했다고 주장하지만 문서 입수 과정에서 명시적인 비보도 약속은 없었다고 밝혔다.

▲ 중앙일보 1월16일자 6면.
‘특정 신문과의 거래’는 물론이고 ‘유치한 언론플레이’에 당한 게 아니라는 항변이다. 오늘자(16일) 아침신문 가운데 유독 동아와 조선이 사설에서 이처럼 강한 표현(?)을 쓰면서 은근히 중앙일보를 비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중앙일보의 ‘심정’이 어떨까. 그게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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