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밤 오늘을 즐겨라(아래 오즐)가 정말 엉뚱하고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아이돌과의 육상경기 그리고 여자 축구대표팀과의 시합 등 스포츠 예능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미션이었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와 오즐 멤버를 비롯한 국내 아이돌 36명이 더해서 총 42명이 각각 500m씩 계주로 마라톤 겨루기를 한 것이다. 이봉주 선수는 은퇴 후 일 년의 휴식 동안 체중이 불어 분명 달리기에는 부담스러운 체력상태였고, 오즐팀은 총 6개조로 나누었지만 잘 뛰는 멤버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경기 결과는 막판 스퍼트에 성공한 오즐팀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21.1kn를 한결같은 모습으로 달려준 이봉주 선수의 여전함에 감동을 얻을 수 있었다. 오즐이 스포츠 예능으로 전화한 후에 분명 전과 다르게 보는 재미가 늘어났지만 흔한 웃긴 장면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십대의 충무로 멤버들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스포츠에 신현준은 블랙홀의 케릭터까지 얻어걸려 밉상과 케릭터 사이의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결국 공형진과 승리가 중도 하차하고 그 자리를 김성주와 슈퍼주니어 이특이 대신하게 됐다. 이제 시작이긴 탓에 뭐라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최근 물오른 김성주와 워낙 예능 잘하는 이특이기 때문에 전보다는 분명 나은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성주의 투입으로 은근히 진행 욕심을 가졌을 정형돈과 김현철은 잠시 꿈을 접어야 한다. 정준호, 신현준의 이름값과 나이가 그들보다 앞서지만 예능에서는 아직 초보인 때문에 개그맨 둘이 충분히 품을 만한 꿈이었지만 아쉽게 됐다.

메인은커녕 계속된 스포츠 예능에 오히려 존재감이 축소되고 있어 이제는 입만으로 어찌해볼 생각은 포기해야 할 상황이 됐다. 그런 상황 변화를 역시나 이들은 금세 알아차렸다. 정형돈은 마라톤 전에 천안운동장에서 아이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정준호가 국회의원 상황극을 하자 곧바로 보좌관으로 끼어들어 분위기를 잘 살렸지만 김현철과 정형돈 둘 모두 저질 체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맡은 구간에서는 깜짝 놀랄 정도로 성실하고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신현준이 오르막은 여자 아이돌에게 맡기고 자신은 편한 내리막을 택하고도 이봉주에게 역전당한 것과는 달리 이들은 이제 오즐에서는 몸을 아끼지 말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 주 김현철이 골키퍼로 미친 존재감을 보였던 것처럼 스포츠 예능으로 전환한 오즐에서 최선의 자질이자 기본이 되는 것은 진정성인 탓이다. 그런 면에서 역시나 개그맨들의 동물적인 감각은 놀랄 만했다.

그런데 이봉주 한 명과 오즐 멤버를 비롯한 아이돌 총 42명이 대결한 하프 마라톤 경기는 분명 대단한 이벤트였고, 처음에 아이돌과 육상경기를 한데 이어서 육상의 꽃 마라톤까지 이어간 제작진의 심화발전단계도 다 좋았지만 문제점도 없지 않았다. 분명 스포츠 오즐은 전보다 재미있고, 의미와 감동도 주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는 와중에 멤버들의 존재감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특히 마라톤의 경우 일인당 겨우 500미터 한 구간만 달리는 것이어서 그런 문제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오즐의 변화가 대단히 만족스럽고 멤버들의 존재감이 다소 줄어든다고 해서 불편함은 없지만 그래서는 향후 스포츠 소재가 고갈되거나 해서 다른 콘셉트를 소화해내려고 할 때에 어려움을 겪게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예컨대 무한도전이 해도 프로레슬링 초반은 지루한 점이 많았다. 그나마 정준하, 정형돈이 레슬링에 특화된 모습을 보여서 그럭저럭 분위기를 잡아갔지만 뭐든 안해보던 것을 할 때는 무엇보다 멤버들의 존재감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라톤에서 그래도 오즐 고정멤버들은 게스트 주자들과 달리 달리기를 끝낸 후 동일한 미니버스에 타서 중간중간 분량을 배당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중계하느라 줄곧 화면에 잡힌 김성주 외에 마라톤을 통해서는 오즐 고정멤버들의 존재감은 실감하기 어려웠다. 굳이 있다면 경기 전 정준호의 상황극 정도인데, 앞으로도 계속 축구도 하고 이런저런 비인기 종목을 골라 오즐의 도전기를 쓸 것으로 보이는데 본 경기 들어가기 전에 멤버들의 활용방안에 대해서 단단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번 준비 없이 무작정 시합만 할 것이 아니라 특정 종목을 정해서 장기 프로젝트를 하나 정도는 조금씩 진행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 방식대로라면 남자의 자격 마라톤이나, 무한도전 WM7같은 재미와 감동을 주긴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의 오즐은 자체적으로 축구건 마라톤이건 해결하지 못하고 자신들보다 훨씬 더 잘하는 외부 동력에 의존하고 있다. 어차피 스포츠 오즐로 간다면 무엇보다 멤버들 자신이 스포츠 정신으로 무장해야 하고, 그것을 단련시키기에는 장기 프로젝트만한 것이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어쨌든 스포츠 오즐은 전보다 훨씬 좋다. 시청하는 시간이 비로소 즐거워졌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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