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스나이더가 애니메이션을!?

<가디언의 전설>의 감독이 잭 스나이더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렇게 놀란 사람은 저뿐이었을까요? 설사 저 혼자 그랬다 하더라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300>과 <왓치맨>에서 꽤 무겁고 어두운 연출에 이어, 심지어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결말을 선보이기도 했던 잭 스나이더가 애니메이션을 연출한다니 이건 뭔가 어색한 조합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이건 다분히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 대한 저의 선입견에 기인한 섣부른 예측이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역시 무리는 아니었다고 항변하고 싶습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구분하자면 재패니메이션에 비해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은 가족 관객을 타겟으로 함이 확실하니까요. 그러니 잭 스나이더가 <가디언의 전설>이란 애니메이션을 연출했다고 했을 때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총 15권으로 이뤄진 판타지 소설 중 초반부 세 권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가디언의 전설>은 인간의 세계와 다를 바 없는 올빼미의 그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의인화를 했다는 얘깁니다. 소렌은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가디언의 전설에 푹 빠져 여동생과 함께 역할놀이까지 하는 천진난만한 어린 올빼미입니다. 반면 형인 클러드는 이제 머리가 좀 굵었다고 "그딴 게 세상에 어디 있냐?"는 식으로 냉소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던 하루는 둘이 부모님 몰래 비행연습에 나섰다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탓에 땅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웬 올빼미 두 마리에게 납치당한 소렌과 클러드는 순수 혈통을 앞세워 전쟁을 일으키려는 메탈비크의 소굴로 가게 됩니다. 거기서 둘은 역시 납치되어 온 다른 올빼미들과 함께 강제적으로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자원으로 사용될 위기에 놓입니다.

이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소렌은 다른 올빼미와 함께 어찌저찌하여 탈출을 하고, 전설 속에 등장하는 가디언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올빼미 세계의 평화를 지키고자 함이었죠. 그러나 형인 클러드는 자신의 존재감을 알아주는 듯한 메탈비크의 일당들에게 포섭되어 동생을 버리고 전쟁에 나서려고 하는데...

사실 도입부만 보면 <가디언의 전설>도 여지없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넘지 못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동물을 의인화한 것이나 전설을 동경하며 성장하는 어린 올빼미 그리고 선악구도까지. 종국에는 정의가 승리하고 마냥 어린 줄 알았던 소렌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게 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죠. 실제로도 <가디언의 전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말이 아닌 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방식을 고수할 것이냐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을 정의한다면, 역시 이것은 잭 스나이더가 연출을 맡은 작품다웠습니다.

원작부터가 단순한 판타지는 아니라고 하듯이 <가디언의 전설>은 간단하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틀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전쟁을 일으키고자 치밀한 준비를 하고 순수 혈통을 고집하는 메탈비크 일당들은 나치 독일을 연상시킵니다. 이처럼 <가디언의 전설>의 그것은 판타지에 근거하고 있지만 마냥 쉽게 즐기거나 지나칠 수만은 없는 기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물론 할리우드의 여타 애니메이션도 단순히 관람의 재미만을 선사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안에 무엇이 서려있는지의 차이점에서 <가디언의 전설>은 차별화를 이룹니다. 좀 더 쉽게 말씀드리자면 잭 스나이더의 전작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조금은 어둡고 무겁다는 것입니다. (결말부만 봐도 그렇습니다)

미국에서 개봉 직후에 평가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고 흥행에서마저 주춤하면서 많은 우려를 가졌던 데 비해, 직접 관람한 <가디언의 전설>이 의외로 맘에 들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상 외로 <가디언의 전설>은 내러티브와 연출의 측면에서 절묘한 애니메이션입니다. 가족관객을 대상으로 하여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성인관객들마저 우울함에 못 이겨 혀를 내두를 작품도 아니란 의미입니다. 어떻게 보면 어중간한 노선을 택한 것도 같지만 일단 저는 보는 내내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견고한 중립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가디언의 전설>의 비주얼을 보더라도 이 애니메이션의 정체성은 확고합니다. 대표적으로 위 사진에 등장하는 장면이 그러한데, 저는 오우삼 이후로 슬로우 모션의 표현기법을 가장 적절하게 사용하는 이가 잭 스나이더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진부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적재적소에 들어간 슬로우 모션만큼 회화적인 의미에서 영화를 미적으로 돋보이게 만드는 수단도 없습니다. 잭 스나이더는 그의 전작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디언의 전설>에서도 슬로우 모션을 적극 활용하면서 화면에 비장미마저 선사합니다. 저는 이것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고작(?) 올빼미가 그처럼 멋있게 보이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빗방울까지 가미시킨 연출을 보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이 또한 잭 스나이더의 작품답게 하나의 이야기로서는 부족한 부분이 쉽게 눈에 띕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가디언의 전설>은 총 15권의 원작에서 세 권을 영상화한 것인데, 이것을 두 시간도 안 되는 시간 내에 함축하려다 보니 이야기가 굉장히 단선적입니다. 물론 보는 입장에서는 지루함을 덜어준다는 측면에 있어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갈등을 만들고 그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이 어떤 긴장감을 선사하지 못할 정도로 급하게 흘러간다는 점과, 캐릭터의 심리를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설득력이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분명 약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리하자면 <가디언의 전설>은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이전보다 조금 밝아지긴 했지만 극단적인 타협은 배제한, 장단점을 두루 갖춘 잭 스나이더의 작품이 확실합니다. 저는 픽사의 작품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가디언의 전설>을 성인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적어도 우려했던 바에 비해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어린이들 혹은 가족들이 함께 관람하기에는 약간 무리가 뒤따른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배급사도 이걸 간파했는지 우리말 더빙의 상영이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예 우리말 더빙을 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네요. 성인도 더빙으로 보는데 -_-;)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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