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도 영화제 초청 공연 때 배우들이 워낙 냉랭한 표정으로 앉아 있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네요.

대종상 1부에 소녀시대가 공연을 했는데, 어찌나 배우들의 표정이 썰렁하든지 보는 내가 다 민망하더군요. 거의 소녀시대 굴욕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모두가 아이돌이나 걸그룹을 좋아하란 법은 없습니다. 싫어하거나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축하공연을 온 사람들입니다. 예의상이라도 환영해주는 모양새를 취해주는 것이 좋았습니다.

2PM의 공연 때는 소녀시대보다는 조금 나은 분위기였지만 기본적으로 썰렁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소녀시대 공연이 끝난 후 사회자가 배우들이 너무 차가워보인다는 말을 했고, 무대 위에서 공연만 한 소녀시대와는 달리 무대 아래로 내려가 퍼포먼스를 한 것이 그나마 2PM 공연의 분위기를 좋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자가 그렇게 지적할 정도로 배우들의 태도는 지나치게 딱딱해보였습니다. 과도한 긴장이나 엄숙한 분위기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어쨌든 시청자 입장에선 결코 좋은 광경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안 좋은 광경일 뿐만 아니라 영화계 전체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난번에 이런 일이 있었을 때, 대중은 배우들이 지나치게 거만하다고 비난했었습니다.

난 거만함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외부에서 온 손님이며 열심히 공연하는 사람을 그렇게 박대하는 것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보는 사람 민망하고, 공연하는 가수도 민망할 테고, 그 자리에 있는 영화계 인사들의 이미지도 깎아먹는 이런 광경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배우들이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을 배려하고 호응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을 겁니다.

- 주최측에게도 문제가 있다 -

주최측에게도 문제는 있습니다. 이런 행사에 아이돌은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영화계 인사들의 연령대가 전반적으로 높은데 아이돌의 노래에 즐거워하는 것은 어색할 겁니다.

청중의 연령대를 떠나서, 아이돌의 라이브 실력 자체가 이런 행사의 흥을 돋워주지를 못합니다. 이런 행사엔 보다 보편적 호소력을 가진 음악과, 라이브 실력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형 가수가 제격입니다. 아니면 영화음악으로 공연을 하든지요.

아무리 한국이 아이돌 공화국이라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영화시상식에서까지 아이돌 공연만 봐야 하는 건 정말 민망한 일입니다. 영화는 나름대로 대중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분야의 최고 창작자들과 장인들을 모아놓고 아이돌 공연을 즐기라는 건 무리인 측면이 있습니다.

10대의 괴성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이미 아이돌은 황제의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럼 그것으로 된 겁니다. 모든 종류의 행사를 아이돌이 독점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음부터는 아이돌이 아닌 보다 성숙한 음악성과 보편적 호소력을 가진 아티스트가 공연을 하고, 영화계 인사들이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풍경이 연출되면 좋겠네요.


- 수치스런 장면 -

한 마디만 더 덧붙이자면, 대종상 시작을 외국 노래로 하는 것도 참으로 민망한 광경이었습니다. 아니, 우리나라엔 음악이 없습니까? 우리 영화음악은 음악이 아닙니까? 우리가 뭐가 부족해서 한국 대중문화계를 결산하는 행사를 외국 음악으로 시작해야 합니까? 수치스런 일입니다.

언젠가는 연말 가요제가 미국 팝송으로 시작해서 충격을 주더니, 이번엔 대종상이 그러는군요. 이런 악습은 이제 끝내야 합니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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