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먼저 울컥, 비릿한 핏덩어리가 미끌리더니 뒤이어 뱀처럼 얽힌 살색 빛깔 인간들, 짓이겨지고 터지는 토마토들, 찢긴 휴지 조각들, 떠는 성기들, 분출하는 활화산들, 우글거리는 혓바닥들, 더럽혀진 걸레들, 붉은 꽃다발, 거미 떼, 낙지 촉수에 붙은 빨판들, 끈적임들, 뭉개진 입꼬리들, 헤픈 웃음과 자지러지는 비명들…….

홍승희 작가의 <붉은 선>을 읽을 때의 내 내면 풍경이다. <붉은 선>의 언어들이 내가 꽁꽁 닫아 둔 ‘섹슈얼리티 창고’를 활짝 열어젖혔기 때문이었다.

<붉은 선>은 운동단체 ‘효녀연합’의 홍 자매로도 알려진 홍승희 씨가 자신의 섹슈얼리티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화장실에서 초조하게 임신테스트기를 바라보던 어느 날 오후, 두 개의 붉은 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해 자신의 낙태, 섹스, 자위, 오르가슴, 강간, 성 노동, 동성애,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 등의 경험을 치열하게 쓴 내용이다. 말하자면 온몸으로 쓴 책이다.

온몸으로 썼기에 독자 역시 온몸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다. 내 몸이 선 자리에 따라 달리 읽히기 때문이다. 이해하기보다 몸을 관통하는 읽기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홍승희 『붉은 선: 나의 섹슈얼리티 기록』 표지사진 (글항아리, 2017)

나는 이 책을 세 번, 아니 세 몸으로 읽었다. 2년 전 오래 만난 연인과 이별을 가늠하던 몸으로 처음, 클럽을 다니면서 내 섹슈얼리티 경계를 방황할 때의 몸으로 그다음, 그리고 내 섹슈얼리티 경험들을 글로 쓸 때의 몸으로 읽었다. 읽을 때마다 같은 문장이라도 공명의 밀도가 달랐다. 심지어 눈을 비비고 ‘이런 내용이 있었나?’라며 새로 보인 문장들도 있었다. 내 섹슈얼리티 창고가 조금씩 묵은 때를 털어낸 덕분이었다.

쾌락은 쾌락 그 이상이다. 저자가 “한 여성이 한번 오르가슴을 느끼게 된다면, 다시는 이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 오르가슴은 두려움보다 강하고, 기존 질서보다 생생한 현재의 감각이다. 강간 서사와 섹스의 습관을 무너뜨릴 만큼의 거대한 힘이다”라고 썼듯이, 주체성을 경험하는 강력한 감각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자극적인 성 경험 이상이다. 여성의 주체성을 말하는,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목소리이다.

섹슈얼리티는 노동과 계급, 인종과 금기가 얽힌 정치적 문제다. 홍 씨가 “조직에서 나는 치마 혹은 짧은 바지를 입거나 화장을 하면 운동의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 혁명가일 때 나는 여자의 옷을 벗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조직 분위기와 같은 듯 다르게, 여성성은 집회에서든 어떤 이슈에서든 부각되고 활용됐다”라고 밝힌 부분, “여자의 권력은 물리적 힘이 아니라 ‘얼마나 힘이 센 남자친구가 있는가, 혹은 얼마나 힘이 센 남자의 여자친구와 가까운가’로 결정됐다. 이미 그 시절에도 남자의 권력은 자신의 물리적 힘이었지만 여자의 권력은 남자를 통한 권력, 곧 섹슈얼리티와 연결되었다”라고 지적한 부분들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남성들도 깊이 고민할 대목이 많다. 삽입과 사정 중심의 섹스 문화에서 발기 강박에 시달리고, 여성을 보호하거나 깊게 관계 맺어서는 안 된다는 남성 역할에 갇혀 고유성을 잃어버린 섹슈얼리티 창고를 직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픈 것은 여성만이 아니었다며 “우리는, 나는 어쩌면 진통제를 맞았기 때문에 아프지 않았던 게 아닐까. 허무하고 무의미한 삶의 고통을 이겨내려고 의미와 역할의 진통제를 맞으며 꾸역꾸역 살아왔던 거다. 너도 사실 아픈데 진통제를 맞고 있어서 마비된 게 아닌가”라고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정관수술을 치른 파트너의 인터뷰도 귀 기울일 지점이다. “제 경험을 듣고 많은 남성이 피임을 자기 문제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남자 친구들과 피임 얘기를 나눈 적은 없거든요. 섹스 얘기는 많이 했는데…”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중세 수도원에서 일어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이야기다.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을 읽었다는 것. 알고 보니 범인은 인간이 구원은 오직 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교리를 무시하게 될까봐, 웃음에도 진리가 있다는 내용의 <시학> 2권 페이지마다 독을 바른 것으로 밝혀진다. 그래서 침을 묻혀가며 책장을 넘겨 읽은 이들이 죽게 된 것이었다. 이후 화마로 수도원 장서관이 소실돼 현대에는 비극을 다루는 <시학> 1권만이 전해지게 됐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이 쾌락을 알려고 할 때마다 세상은 걸레, 창녀, 더러움, 천박이라는 낙인을 발랐다. 여성은 오직 정조관념을 지켜 결혼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가부장제의 강령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여성이 고통으로 신음했고, 섹슈얼리티는 여성이 소외된 반쪽짜리로만 존재해 왔다. 이 소외는 사회, 경제, 정치 영역까지 이어졌다. 결국 남성의 섹슈얼리티 역시 온전할 수 없었다.

<붉은 선>은 그 잃어버린 반쪽을 되살려 줄 책이다. 페이지마다 쾌락과 해방의 언어를 묻혀 놨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몸도 이 책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 <붉은 선>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당신의 섹슈얼리티 창고에는 볕이 들고 새로운 감각들이 꽃필 것이다, 나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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